재미와 행복 / 강유선
어릴 때는 마냥 재밌는 게 행복한 건줄 알았다. 그러나 살다보니 꼭 이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사실 스물네 살, 스물다섯 살, 이때까지만 해도 행복이 뭔지 잘 모르고 살았다. 그냥 내가 잘되면 좋겠지 이런 정도의 생각으로만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살아갔다. 그러다가 내리막길에서 자전거를 타다가 딴 데 보느라 브레이크를 못 잡아 아스팔트 바닥의 튀어나온 부분에 걸려 심하게 떨어졌다. 사방 데가 멍들고 살갗이 벗겨지고 난리였다. 그런데 상처는 아물어가는데도 땅바닥에 충격 받은 어깨가 계속 아팠다. 지압원부터 정형외과, 한의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근육 사이에 염증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6개월 간 약침치료를 받았다.
원인을 찾는 데만 한 3개월가량 걸린 것 같다. 누구는 어깨가 빠진 것 같다고 해서 스트레칭 치료 받는 데 한두 달 썼고 물리치료 받는다고 또 몇 주 허송세월 보냈고 하고 있는 일을 줄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직장에서도 성과가 잘 안 나왔다. 따뜻한 햇볕이 내려쬐는 어느 봄날이었다. ‘나는 누구고 여기서 뭘 하는지, 직장생활 30년 할 것, 진짜 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며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결국엔 퇴사를 하게 됐다. 일단은 글 쓰고 그림 그릴 때 행복하니 이런 걸 할 수 있는 직업을 갖자며 앞길을 헤쳐 나갔다.
그러다 진짜 칼같이 퇴근하고 집에 와서 독서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시집도 많이 읽고 필사도 하며 노랫말 같은 운문을 쓸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운율을 살리기에는 내 음감이 너무 역부족이었다. 마침 회사에서 사연 쓰는 게 있었는데 여차저차해서 냈다가 어쩌다 저작권을 팔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 어려서부터 경험담을 재밌게 잘 써 문집에 잘 실렸었지. 이제는 동화나 시나리오를 써보자.’라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주말에 도서관에 가서 여러 시나리오를 봐 봤다. 잔인하거나 수위가 높아 힘들 것 같았다.
장르를 아동문학으로 정하고 습작에 매진했다. 정말 재밌었다. ‘그림으로도 표현했으면 더 좋았을 걸’하는 것도 있었지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어 신났다. 내가 오래토록 바라던 순간이었다. 정신적인 고요함이 있고 무엇을 만들어내든 이야기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참 몹시 행복했다. 여기서 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낯선 지역에 가 한 달씩 살며 색다른 시선으로 또 하나의 창작물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 잘 되게 해주는 걸 좋아하는데 정서적으로 아픈 아이들을 글로 치유해주며 건강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예전에는 무조건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라고만 생각하며 지냈는데 요즘에는 하루하루 내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다보면 선물 같은 하루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게 됐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릴 적 봤던 디즈니 만화 캐릭터들의 우스꽝스러운 대화에 배꼽 빠져라 웃지 않는다. 돈도 더 벌고 내가 하는 일이 더욱 형통하고 누군가 나 덕분에 심신이 더욱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기쁠 것 같다. 그래도 ENTJ라 외향적이지만 다소 내향적이라서 번잡하고 시끄러운 건 싫지만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생이 될 수만 있다면 이또한 아주 신명나는 일이라고 본다.
남 힘든 걸 못 지나치는 성격이라 작은 부분이라도 섬세하게 챙기는 편인데 이런 내 자신이 좀 피곤하긴 하지만 매번 내가 재미난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람은 쉽게 안 바뀐다고 하니 계속 이럴 확률도 높긴 한데 이번 기회로 좀 더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칭찬해줘야겠다. 가끔 나도 잔정이 많은 게 피곤할 때가 많다. 하지만 글을 쓰며 나를 더 돌아보게 됐고 격려해줘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먹어졌다. 재미라는 주제를 올려주신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첫댓글 우와. 우연한 계기가 선생님을 이 길로 이끌었네요. 늘 응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으러 퇴사까지 하다니 보통 사람은 아닌데요. 용기가 대단합니다.
용기 있는 분이라 생각했는데, 글 읽어 보니 진짜 그러시네요. 꼭 성공하실 것 같습니다.
응원할게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
하는 일이 의미있으면서 재밌으면 직업으로는 최상이지요.
응원합니다.
대단하세요!
부지런하고 즐겁게 사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부럽습니다. 하하하
축복하며 응원합니다.
항상 열정이 넘치시는 선생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