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말씀에 날짜를 적지 않기로 합니다. 오늘 보내준 말씀은 하나님께서 ‘오늘 주시는 만나’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며칠 전 말씀을 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이미 지난 말씀입니다. 말씀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일 때 삶이 능력이 됩니다. 어제의 말씀은 ‘어제 내게 주신 만나’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날그날의 만나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오늘도 나는 주님을 나타내는 그릇으로 살아갑니다”
-오늘의 말씀-
고통을 기쁨으로 열어가는 믿음
11/14금(金)빌 1:12-3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빌 1:20)
성경은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주 안에서 기뻐하라’라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좌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고통은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축복이 됩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도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빌 3:1). 주님 안에 있으면 주님의 믿음으로 환경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
고통을 기쁨으로 열어가는 믿음입니다.
▣고통 속에 기쁨이 담겨 있다는 믿음입니다.
고난 속에는 기쁨과 축복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어떤 일에서도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나에게 들려오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이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빌 1:28). 성도의 고난은 하나님이 믿음의 성장을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은혜와 함께 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남겨진 고난을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즉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특권도 주셨습니다”(빌 1:29).
▣고통을 통해 삶의 목적을 발견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빌 1:18-20). 고난은 이 땅에 태어난 목적을 알게 합니다. 삶의 목적입니다. 환경을 붙들면 환경이 나빠지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나 죽으나 자신을 통해 그리스도만 나타난다고 합니다. 환경 지향적 존재에서 창조 지향적인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에스더는 바사왕국의 왕비가 되자 자신의 꿈을 이룬 줄 압니다. 그러나 하만이 유대인을 없앨 계획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왕비가 되게 하신 이유를 깨닫습니다. 에스더의 존재 목적은 믿음으로 유대인들을 구원하는 사명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사명을 깨달은 후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나갑니다.
▣고통은 영생을 여는 출입문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빌 1:21). 성도는 고난을 통해 천국을 찾고, 천국에 대한 확신이 강해집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일에 계속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 믿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비록 세상에서 실패해도 천국이 보이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과 불행, 고통과 기쁨은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슬픔은 기쁨의 반쯤 간 것이고, 미움은 사랑의 반쯤 간 것입니다. 기쁨과 고통은 공존합니다.
And...
고통 없는 즐거움은 쾌락입니다. 쾌락은 병든 기쁨입니다. 결국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우리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각이 무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영적 감각이 예민해집니다. 구원과 예배에 대한 감각이 굳어 있으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합니다. 고통은 은혜의 감각을 살려냅니다. 그래서 적당한 고통은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은혜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감각이 무뎌진 것은 영적 암에 걸린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기 전에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그 은혜로 고통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환란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CS 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합니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기쁨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 고통을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역설적인 기도는 폴 브랜드가 몸에 이상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해 심하게 손상된 손발을 잘라내야만 하는 나환자들을 보면서 인간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지 깨닫고 하늘에 올린 기도입니다. 때로는 전혀 필요 없다고 생각되거나 피하고 싶은 것들이 우리에게 아주 소중할 수 있습니다. 고통도 그런 것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사람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심오합니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버려진 나환자들의 친구가 되어,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나환자들의 병을 치료한 폴 브랜드의 이야기를 접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가졌는지, 얼마나 감사할 것이 많은지 알게 됩니다. 그토록 피하고 싶은 고통이야말로, 우리를 더 큰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경고음임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고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커다란 선물입니다.
고난이 축복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재정 훈련으로 인해 차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았지만 카 센타에 갈 수 없어 기도하며 시동을 걸었고, 건강에 이상이 있을 때 병원에 가는 것보다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서 낫고자 했습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해서 얻고, 하루하루를 주의 은혜로 살고자 몸부림쳤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도저히 하루하루를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 속에서 응답을 얻고자 열심히 예배를 드리고,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참으로 영적으로 예민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난이 사라지자 그런 간절함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좋으신 하나님은 그때와 동일한 고난은 아닐지라도 가끔 고난을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영적 감각이 예민해지도록 이끌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그 과정에 주님 가까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머물면 고통은 하나님 몫이 됩니다. 아파도 주님의 아픔이고, 힘듦도 주님의 힘듦입니다. 지금 고난의 짐을 지고 있다면 주님 안으로 피신하십시오.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언젠가 지금 고통의 시간 속에서 몸부림치며 주님을 찾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 것으로 만족할 수 없고,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도록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이미 우리를 향한 그분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의 고난도 하나님 섭리 안에 있기에 감사를 선포합니다. 열악한 환경에 대한 감사가 시작될 때 이미 환경은 정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며 주 안에서 고난을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언제나 선하십니다
https://youtu.be/xzmqc1RgQk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