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간을 달린 기차는 모스크바시간
5시 36분에 나를 노보시비르스크에 데려다 주었다.
여기는 모스크바보다 세 시간 빠르니 여기 시간으로는 오전 8시 36분이다.
서쪽으로 가면 그만큼 장수한다는 것이고
동쪽으로 가면 그만큼 수명이 짧아진다.
나는 오늘 한 시간 도둑맞은 셈이다.
맨날 무채색만 보다가 연두빛을 보니
눈이 확 깨인다.
노보시비르스크 기차역이다.
영하 21도 라는데 맨날 30도를 오르내리는데서 있다가 여기를 오니 추위를 덜 느끼는것 같다.
인간의 몸은 간사하리만치 적응을 잘한다.
여기에 있는 국영백화점이다.
현대소비문화의 메카인 백화점이라고 하기엔 외관이 너무 단조롭다.
여기 건축가들 저 건물 설계하고 설계비 받았을까?
아님 그냥 너무 화려한 건물을 설계하면 붉은 광장의 성바실리 성당의 경우와 같이 죽음을 당하기 때문이었을까?
어제 기차칸에서 내 옆에 예쁜 소녀들이 탔다.
호기심 많을 나이이니 혼자 탄 동양인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나에게 최대한 그림작업에 방해를 하지 않으면서 저희들끼리 노닥거리며 내 그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기차의 이별.
친정다니러온 딸네 시집에 보내는걸까.
늙은 어머니의 표정이 못내 아쉽다.
아버지는 저 만치 혼자 가고 있는데
그렇지만 아버지는 가슴으로 운다.
그러더니 나에게 서투른 영어로 말을 부친다.
I am a boy.
you are a girl.
수준의 대화였다.
그렇지만 자기가 한 말을 상대방이 알아 듣는다는것이 신기하고
스스로 대견했는지 자주 자주 말을 시켰다.
잠시 기차가 쉬는틈을 타서 2,3분 밖을 나갔더니 저 지경이 되었다.
얼굴에 추위가 묻어있다.
여기는 0시 50분 완행열차가 출발하는
대전도 아니고,
이별의 부산정거장도 아닌 시베리아의 한복판인것을 잊고 있었다.
급기야는 그 소녀 어머니가 소녀들의 성화에 못이겨 나에게로 왔다.
자기 딸래미가 애지중지하는 곰인형이 있는데 그것을 한번 그려보면 어떻겠냐고 내 의사를 물었다.
sure.
무료한 기차칸에서 할일도 없는데 국위선양이나 한번 해야겠다.
아까 엄마의 물음에 내가 대한민국에서 왔다는것을 밝혔었다.
다른 나라에서는 당신 어디서 왔느냐고 물으면 그냥 Korea라고만 대답했는데
여기서는 Korea보다 south에
더 액센트를 준다.
평생 볼 눈 여기서 다본다.
내가 머물고 있는 노보시비르스크는 러시아에서 서너번째로 큰 도시이며 시베리아의 최대의 도시이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 기차역, 가장 큰 도서관, 가장 큰 발레극장이 있다.
더구나 근교에는 러시아의 실리콘 밸리인 아카쳄고로독이라는 학술도시가 있는데 세계수준의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덕연구단지를 만들때 여기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그림을 달라고는 안했지만 답이야 뻔한것.
한 5분 그리고 나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 싸인을 하고
이 그림을 너에게 준다고 했다.
내가 축구를 잘해 국위를 선양시키겠나?
노래와 춤을 잘춰서 소년시대를 만들겠나?
이렇게라도 민간외교를 해야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말아먹은 대한민국의 위신을 조금이라도 끌어 올리지.
그림을 받고나서의 반응은 상상 그대로 였다.
저런 발랄함이 풋풋하게 다가왔다.
역시
난 할배?
확실하다.
소녀들 엄마가 볼펜을 하나 주었다.
학교가면 흔하고 흔한게 필기도구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으니까.
특히 그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서 벤또에 싸온 러시아 가정음식을 줘서 먹을 수 있었는데 식당에서 맛보지 못한 좋은 기회였다.
그들은 밤 11시 옴스크에서 내렸다.
특히 그림을 받은 곰 인형주인은 몇번이나 뒤돌아보며 오래동안 손을 흔들었다.
good luck!
우리나라에서 아줌마들 자기 친구들 한테 자랑하려고 입는 밍크코트를
여기서는 거리에서 입은 사람을
자주 본다.
여기서도 작은돈은 아닌듯 하나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일것이다.
한번사면 1년에 여섯달을
평생 입는다는데
이해가 간다.
사람사는곳 어디나 똑같다.
오늘을 여기서 지내고 내일은 여기 시간으로 밤 12시에 기차를 타니
오늘은 느긋하게 보드카 한잔 해야겠다.
안주는 소세지와 감자를 버물린것과 보르쉬 스프,
그리고 오징어 커틀릿.
한 잔하러
오실려우?
첫댓글 국제 신사는 러시아에서도 어김없이 인정을 받으시는군요
보드카 한잔하러 가려고 했는데 연차를 다 소진하여 러시아로는 못 갈 것 같네요
사진상으로 봐서는 교수님의 건강상태는 좋은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장기간 여행길 특히 추운지역에서 여행을 하다 보면 상당히 힘들 것 같은데 건강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크로키는 열심히 다운 받도 있읍니다
VERY GOOD.
러시아~
온통 白雪에 멈춘듯 보이나
그 속에 사람사는 진한 아름다움과 소녀의 미소가 예쁩니다.
여행중에 그림, 선물을주고 받고, 음식도 나눠먹으면서 국위선양도 하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어요.
지금 그 도시는 음울하거나 사람이 거리에 안 보이거나 하는게 아니고 좀 활발해 보입니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큰도시이고, 기차역이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즐거운 여행 잘하시고 추위에 건강 유의하십시요.
우리나라에서는 기차 여행하면 고작 4-5시간인데?
23시간을 기차를 타셨네요??
기차 원없이 타시고 오시겠어요.
밖에 풍경도 예쁘고,러시아 미인소녀들도
보셔서 지루하시지는 않으셨겠어요.
교수님 아무쪼록 건강관리 잘 하셔서 멋진여행
잘 마루리 하세요.
웅원의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열차밖은 시베리아 열차안은 열대... 아이들과의 소중한 추억이 멋지네요~ 수염과 털을 이쁘게 깎으셔셔 여행객 같지가 않아요. 보드카 많이 즐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