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코리아 보드게임즈에서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Starcraft Board Game, 이하 SBG)'의 공식 한글판을 발매하였다.
비록 가격은 껑충 뛰었으나, 수많은 카드와 룰북의 깔끔한 한글화는 SBG의 보급에 큰 힘을 실어줄 것이다. 필자 역시 이
한글화의 덕을 본 사람이다. 필자는 '아그리콜라 (Agricola)'나 TCG처럼 텍스트가 많이 들어간 게임을 좋아한다. 게임의
장치를 가장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인 텍스트는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여 게임의 다양성을 높여준다. 보드게임긱의 랭킹
1위를 차지하고 있는 '푸에르토 리코 (Puerto Rico)'도 엄밀히 말하면 각각의 건물에 텍스트가 있어 건물의 다양성이
전략의 다양성으로 이어진 게임이다.
이
처럼 텍스트는 게엠의 다양미를 보장해주지만, 언어라는 접근하기 어려운 벽이 생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영어 정도면 읽을 수
있지 않느냐?'라고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략 생각하기도 바쁜데 영어 버벅이며 읽을 시간이 어디있는가? 그리고 영어가
아닌 텍스트가 많은 것이 보드게임이다. (당장 '아그리콜라'만 하더라도 독어다. 한글판 어서 나오기를!) 한글화 역시 쉽지 않은
작업이라 귀찮아 넘어가기 일수이다. (정확히는 필자만 귀찮아한다. 보드게임 정말 좋아하는 분은 열심히 하신다.) 필자는
텍스트가 많은 게임은 좋아하지만 한글화는 귀찮아한다. 그래서 '푸에르토 리코'는 한글판을 샀고, '아그리콜라'는 한글판을
기다리고 있으며, SBG는 한글판이 나오면 사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러나! 한글판이 생각보다 높은 가격대로 나오고, 한글판이
발매될 때 쯤 지갑 사정에 문제가 생겨 결국 구입을 포기하였다.
<소비자가격 12만원, 다이브 다이스 할인가 10만원. 절대로 싼 게임은 아니다.>
그 후 2주 정도가 지나갔다. 아는 형님이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이 생겼다는 기쁜 소식. 그래서 필자는 프로텍터도 가져다 바치고 피겨랑 토큰을 정리해서 담을 공구함도 가져다 바쳐가며 게임을 같이 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밌다.
게
임을 처음 접했을 땐, 카드 외에는 분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80개의 유닛 피겨는 비닐 봉지에 그대로 담아져 있었고,
온갖 토큰들은 펀칭이 안 된 상황이었다. 유닛 봉지를 뜯어서 여섯 세력으로 구분하는 것도 상당한 일이었다. (SBG는 세
종족별로 두 개의 세력이 존재하여, 총 여섯 개의 세력 중 하나를 맡아서 게임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홉장의 토큰 보드는,
그야말로 '업무'였다. 세 명이서 아홉 장의 판을 펀칭하고 나니, '컴퍼넌트의 산'이 테이블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었다. 컴퍼넌트(구성물) 면에선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높은 가격대의 가치를 가진 게임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유닛 피겨만 세력별로 모으고, 각종 토큰 종류는 널부러 놓은 모습. 휴대폰에 붙은 NERV 마크는 저 날 좌우로 분리되어 고이 사망하셨다. 오른쪽은 제 맥북. 예쁘죠? 아, 중요한 건 SBG의 컴퍼넌트입니다.>
SBG
는 패키지 게임 'Starcraft (이하 '스타크')'와는 크게 다른 전투를 보여준다. '스타크'가 일정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빠른 전투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라면, SBG는 행성 간의 이동과 발전으로 느린 진행을 기반으로 한 게임이다. (이는 필자가
'스타크'를 거의 안 즐겨봤기 때문에 부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여기서 SBG가 느리다는 것은, '스타크'에 비해서 느리다는
것이지, 보드게임의 입장에서 보면 수많은 전략과 전술이 오가는 치열한 공방전이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지는 등 굉장한 박진감을
자랑한다. 사족이 늘었는데, '스타크'처럼 30분 가볍게 하고 끝낼 수 있는 게임을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기대를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다.
*이하의 글에서는 SBG에서만 사용되는 단어가 자주 나타난다. 그런데 필자는 SBG를 보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룰북이 없다. 그러므로 단어의 부정확한 사용이 있을 수 있다.
<이번에는 세력별 컴퍼넌트를 모두 한 봉지에 몰아 넣은 모습. 그래도 많다.>
SBG
는 라운드 단위로 진행된다. 각 라운드는 이번 라운드의 주요 행동을 설정하는 '계획 단계', 계획을 실행하는 '실행 단계',
실행 단계에서 나타난 변화를 정리하고 승자를 확인하는 '재편성 단계'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4~8라운드를 진행하면 게임이
끝나게 된다. 게임은 승점 지역을 점령하여 15점의 승점을 모아서 승리하는 '보통 승리', 각 세력별 특수 승리 조건을
만족하면 얻는 '특별 승리', 다른 세력을 모두 제거하여 혼자 남았을 때 가능한 '서바이벌 승리'가 있다. 또, '끝이
다가온다'카드가 두 장 이상 사용되면 게임이 즉시 끝나고, 이 때 승점이 높은 플레이어가 승리하는 '판정승'도 있다. 필자가
SBG를 많이 즐겨본 것은 아니지만, 보통/특별/판정 승리가 비슷한 비율로 일어나고, 다른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제거되어서 얻는
서바이벌 승리는 처음부터 서바이벌을 목적으로 룰을 변경하여 적용해야 볼 수 있을 것이다.
<가라 케리건! 너로 정했다! (사라 케리건은 보라색 저그)>
'
계획 단계'가 되면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세력의 '명령 토큰'을 뒤집어서 네 개 배치한다. 각 행성마다 하나씩의 명령 토큰
공간이 있어 해당 행성에서 어떤 일을 하려면 반드시 그 행성에 명령 토큰을 놓아야만 한다. 한 행성에 여러 개의 명령 토큰을
사용할 수 있고, 여러 행성에 나눠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 세력이 토큰 하나씩 번갈아가며 배치하며, 이렇게 배치된 명령
토큰은 쌓이고 쌓여서 '명령 스택'을 형성한다. 명령 토큰들은 실행 단계에서 사용되게 된다. SBG에서 칭찬하고 싶은
첫번째 시스템은 명령 토큰 시스템이다. 각 세력은 한 라운드에 네 개의 명령 토큰만 사용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아무리
많아도 명령 토큰은 네 개만 사용할 수 있다. 가진 땅이 아무리 많아도 명령 토큰은 네 개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게임을
효율적으로 진행하려면 네 개의 명령 토큰으로 적절한 국정(!)운영이 가능한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 '적절한 규모'라는
것이 참 모호한 것이어서, 여러명이서 게임을 하다보면 전선이 뒤엉키고 본진이 털리는 등 업치락 뒤치락 재밌는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HCUOS 행성에 명령 토큰이 쌓인 모습. 과연 파란 테란(짐 레이너)은 녹색 저그(오버마인드)를 쫓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미지 출처 : 다이브 다이스
'
실행 단계'가 되면 플레이어는 돌아가면서 명령 토큰을 하나씩 앞면으로 보여주고, 명령 토큰의 내용을 실행한다. 이때, 명령
스택의 가장 위에 있는 토큰만 실행할 수 있다. 계획 단계에서 토큰을 어떻게 놓느냐에 따라 자신의 토큰을 실행할 기회가 늦게 올
수 도 있다. 토큰을 먼저 놓으면 실행은 더 늦게 하고, 어떤 순서로 배치하고 어떤 순서로 실행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양상이
달라지는 시스템이 정말 훌륭한다. 명령 토큰은 '이동', '연구', '건설과 생산'의 세 종류가 있다. '이동' 명령은
유닛(들)이 행성에서 행성으로, 혹은 행성 내의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한다. 이때 적대 세력의 유닛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면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 '연구' 명령은 이벤트 카드와 전투 카드를 받고, 기술 카드를 구입하여 새로운 전투 카드 덱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기술 카드 구입을 망설이다가 기술력 차이로 크게 패배한 필자로선 연구를 우습게 보지 말라고 말하고싶다. '건설과
생산'명령은 유닛/일꾼/수송선을 구입하고, 생산/보조 건물을 건설하고, 기지를 세울 수 있다. 세력을 넓히는 데 가장 중요한
명령이라 할 수 있다.
SBG
는 자신의 수입(미네랄,가스 채굴량)을 잘 파악하여 효율적으로 지출(유닛 생산, 건물과 기지 건설)하는 경제 게임이면서,
유닛관의 전투가 자주 일어나는 전쟁 게임이기도 하다. (전쟁 게임 마니아들이 보시면 'SBG는 전쟁이 아니야!라고 하시겠지만)
전쟁 게임이나 전투가 존재하는 게임은 그 승패 판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나의 전투는 여러개의 대결로
나뉘게 된다. 이 대결은 실제 전쟁에서 병사 몇몇이 뒤엉켜 싸우는 모습들을 생각하면 된다. SBG는 '전투 카드'라 불리우는
카드를 각 대결에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저글링'의 전투카드를 저글링이 선두에 선 대결에 사용하면 공격력과
체력이 제대로 적용되지만, 저글링이 아닌 유닛이 선두인 대결에 사용하면 공격력과 체력이 바보가 되는 방식이다. 때문에 자신의
전선에서 싸우는 유닛에 따라 알맞는 전투 카드를 손에 잡으려면 연구 명령 등을 통해 전투 카드를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TCG에서 자신의 덱의 키카드를 잡기 위해 각종 드로우 효과를 주는 카드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짐 레이너 세력과 테사다 세력의 전투. 테사다 세력은 네 개의 전투에 여섯 장의 전투 카드를 사용하였다. 일반 전투 카드 위에 전투 지원 카드를 내려놓으면 하나의 대결에 두 장의 전투 카드를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미지 출처 : 다이브 다이스
'
재편성 단계'에선 이번 라운드에 일어난 일들을 확인하고 정리한다. 각 플레이어는 자신의 세력이 잃거나 새롭게 점령한 지역의 자원
카드를 반납하거나 받고, 일터로 보낸 일꾼을 회수하며, 승점을 얻으며, 게임에서 승리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실행 단계에서
연구 명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얻은 이벤트 카드를 사용는 것도 이 재편성 단계이다. 이벤트 단계는 1기, 2기, 3기로
구분된다. 처음에는 1기 카드만 받으나 게임이 진해되면 2기, 3기의 카드를 받을 수 있다. 뒤로 갈수록 카드의 위력은
강력해진다. 또, 3기 카드 중 '끝이 다가온다' 카드가 두 장 이상 사용되면 게임이 즉시 끝나므로, 이벤트 카드는 게임의 시계
역할도 한다.
<점수 트랙 오른쪽에 쌓여있는 것이 이벤트 카드 더미이다. 가장 위에 노란색 1기 카드가 보이므로, 게임의 초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계
획하고, 실행하고, 정리한다. 이렇게 게임을 반복하면 된다. 게임이 너무 단순하다고? 천만에. 보드게임혼을 불태우는 마니아들도,
'스타크'의 이름만 믿고 이 게임을 해본 사람도 재밌게 즐길 요소가 충분하다. 한정된 자원, 한정된 액션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것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들키지 않으며 사용하는 것은 굉장한 지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180개의 피겨가 전장을 오가며 싸우는
모습은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보드게임화 과정에서 잘려진 요소는 많으나, SBG는 '스타크'의
여러 요소를 잘 살려냈다. 그러면서 게임 자체의 재미도 부족하지 않다. 원작의 유명함에 편승하려는 게임이 아닌, 원작 못지 않은
작품이다.
달콤한 말을 많이 했다. 분명 장점이 많은 게임이다. 필자는 SBG가 보드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많이 보급되길 바란다. 하지만 난관이 여럿 있다. 게
임의 난이도는 보드게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겐 약간 높을 수 있다. 텍스트라는 가장 큰 벽은 없어졌지만, 보드게임을 전혀 안
하던 사람이 바로 하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해당 게임을 잘 아는 사람이 한 명은 있어야 게임이 잘 돌아가는 것이 보드게임의
일반적인 법칙임을 생각하면 더더욱 걱정이다. 규모 역시 만만치 않다. 게임의 부피와 무게는 쉽게 '가지고 다닐' 것이 못
된다. 'SBG하자. 가져와~'라는 대화를 나누어도, 가져가는 입장에서는 상당한 짐이 되는 것이 SBG의 부피이다. 무엇보다
12만원이라는 가격은 SBG 구매를 막는 가장 큰 벽이다. 12만원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게임을 해보지 않은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줄지는 미지수다. 5만원짜리 휴대용 게임 패키지도 돈이 아깝다고 어둠의 루트로 게임을 하는 한국에선 더더욱
걱정이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많지 않겠지만, 스타크래프트를 전혀 모르는 사람은 이 게임을 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스타크'를 해본 사람은 클로킹, 스플래시 데미지를 대강이나마 이해하고 각각의 유닛이 지상과 공중을 공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금방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크'를 안 해본 사람은 일단 각 유닛의 이름부터가 어렵고, 어느 피겨가 어느
유닛인지도 알아보기 쉽지 않다. 왜 미네랄과 가스를 캐고, 왜 건물을 짓고, 왜 유닛을 생산하는지 모든 것이 의문일 것이다.
'스타크'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SBG를 어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스타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진 속의 유닛 이름을 모두 외우는 게 과연 쉬울까?> 이미지 출처 : 다이브 다이스
끝
으로 한 마디. SBG는 할 때마다 행성의 배치가 바뀐다. 또, 그리 많은 라운드가 진행되지 않으므로 다양한 테크트리를 어설프게
타지 않고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다. 한 번 하고도 곧바로 다시 하고 싶은 맘이 든다는 점에선 최고의 게임이라 하고 싶다. 전장의
안개는 없지만, 불확실함은 많다. 그리고 확실한 것은
<SBG 소개 동영상을 따라해보고 싶어서 그만 저질러버렸습니다>
게임 방법만 가볍게 설명하고 끝내려던 글이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습니다. 딱딱하고 재미없는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보드게임 시장은 마니아 위주로 흘러갑니다. 코리아 보드게임즈의 보드게임 한글화 작업이 한국 보드게임 문화를 더욱 넓게 퍼뜨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나올 여러 한글판 게임도 기대합니다.
첫댓글 하고 싶은 겜 중 하나인데..누구 이거 구입한 사람 없을려나?? 누가 건대에 가지고 온다면 냉큼 가겠는데..^^;;
건대는 장소가 협소해서 제가 못 가져오게 할겁니다^^;
어제 홍대에서 돌아가던 그거구만..플레이 시간이 4시간이라며?
플레이어 수, 숙련도, 각 플레이어의 전략에 따라 천차 만별이랍니다. 1:1은 40분 정도 걸리더군요.
아.. 복잡한 전략게임 너무 좋아요.. 배우긴 어렵겠지만.. 모형도 맘에 들고. 배치하는것만으로 푸짐하니 뿌듯한 느낌ㅋ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몇십분...!
언제 해볼 수 있을려나;;
이거 배우려면 힘들 텐데;ㅁ;
푸하 구입하였으나.... 아직 펀칭도 안함 ㅋㅋㅋ 언제한번 돌려야 하는데 ㅋ
한 시간 잡고 펀칭 시작하세요-ㅁ-ㅋ
니코야~ 수고 많았어~ ;ㅁ; 리뷰는 내가 써야되는데.. 요즘 내 갠적인 일땜시 리뷰작성하다가 중간부터 진도가 안나간다;;
ㅠ_ㅠ; 내거 참고하구 써~
와와와와와와!!!!!!!!!! 유닛 나름 리얼하다!!! ㅠ0ㅠ 저 뒤에 리버 어쩔거야. 귀여워. ㅠ_ㅠ
캬캬 귀엽지
후................... 정말.. 지르고 싶으나... 너무 어려움... 카탄만으로도 한동안 열심히 설명서 읽고 겨우 한판 돌려본.. 지금은 술술 외웠지만. 문제는 이제 동내애들도 잘 알아서 독점뜨면 그놈 다굴... 쩝
모노폴리의 힘이죠^^ 스타는 꽤 어려운 게임에 속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