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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3주일 [너희의 남편에게 복종하라]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하나님은 모든 성령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을 친히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회중, 교회라는 환경 속에서만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또한 인도하신다.
특히 부부의 관계속에 있는 남편과 아내의 삶속에 함께 하셔서, 그들에게 법을 주시고, 순종케 하시므로 돌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법을 주시는 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이 있고, 영생이 있다.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관심]
그러므로, 개인의 가정은 규모는 작아도, 하나님의 계획과 다른 부차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사회에서는 가장 작은 규모의 것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구성하는 기초라는 중요성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관계는 먼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한다.
모든 성도간에는 상호복종이라는 하늘의 원칙을 주셨다.
이것은 단지 교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도 적용되어, 가정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가정에서도 인격적 관계가 성숙하고, 아름답게 되기 원하시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결과로 나타난 상호복종의 태도는 부부관계를 통해서도 동등하게 적용된다.
엡5:21-22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명확하게 단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복종한다는 의미는 내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이지만,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내어주는 것을 말한다.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남의 의지를 먼저 앞에 둔다는 것이다.
문맥상 자발적 복종이다.
형벌로 위협하면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운 성차별 문제 & 현대감성]
오늘날에는 성차별 문제가 대단히 큰 이슈다.
오늘날 하나님 말씀을 직접 대하는 우리에게도 어려운 문제다.
현대 사회에서 누군가에게 복종을 요구하면, 반발을 많이 산다.
그럼에도 인류사회에서는 처음부터 복종이 있어왔다.
어떤 집단이 있다면, 항상 필요 요소로서 존재해왔다.
복종이 있는 곳에는 항상 반발이라는 요소도 같이 있다.
그런데, 최근 몇십년간 우리 사회는 이 용어는 더욱 사용하기 어렵다.
복종이라는 말 자체가 대단히 고약스러운 종류의 것으로 인식된다.
현대 정서에서는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명령은 누구든지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쪽이 다 불편하다.
복종해야 하는 편은 자기가 부당하게 억눌리고, 손해볼 것을 예상하고 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이 명하는 복종은 우리가 일반사회에서 느끼는 그런 상황과는 다르다.
인간사회는 긴 역사기간동안 남성중심적인 형태로 존재해왔다.
우리가 인지할만한 역사가 몇만년이든, 몇천년이든, 거의 남성중심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고, 부르는 것은 여성인권이 강한 사회적 인식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차별이 있어보이는 성경말씀도 당장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이런 추세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인류사회에서 이런 요소는 별로 없었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편이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이 세상은 너무 달라졌다.
심지어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기능 자체도 뒤바뀌어, 경계도 모호해졌다.
남자의 일, 여자의 일 구획 자체가 상실된지 오래다.
오늘날 환경은 인간 역사 전체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인류 역사를 24시간으로 본다면, 지금은 23시59분 50초정도일 것이다.
인류 내내 그렇게 살았다.
지금은 사회적으로 마지막 몇초가 다른 성격의 삶을 살고 있다.
이전에 성에 대한 구별의 철학이 완전히 휩쓸려 나가고, 새로운 개념이 들어왔다.
오늘날 사람들은 성경을 무리하게 여기는 것 같다.
고대 사회에 적용된 것이 오늘날 적용될 수 있는가 분명한 의심을 갖고 대하고 있다.
나도 이런 것에 대해서, 많은 부분에서 동의한다.
이 상황에서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고 나간다면, 어려운 문제를 더 발생시킬 것이다.
성경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성경이 시대를 못이기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이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다만, 우리가 성경이 품은 뜻을 깊이 이해할 것이 선행된다.
하나님 마음의 원칙을 먼저 이해하고, 나에게 맞추어야 한다.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할 법]
하나님 말씀의 위력은 문자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뜻에 훨씬 깊은 뜻이 있다.
그 말씀에 진실하게 순종하고, 온전하게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진정한 위력이 나타난다.
부부간의 대인관계에서 성경의 원칙 하나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적용한다면, 그 사람의 행동이 반대쪽에서도 조화롭게 맞아야 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된 자들도 함께 맞추어 가야 한다.
한사람이 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이 없다면, 시스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핵심은 자기를 내어주는 마음이 연결되는 것에 있는 것이지, 복종 행위 자체가 신기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원칙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환경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 땅에는 이런 원칙이 이루어질 환경이 잘되어 있지 않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거기는 하나님을 반대하는 다른 요소들이 많이 있다.
환경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신실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살면서, 교회도 세상과 맞부딪힌다.
6일은 세상과 맞대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의 법칙이 많이 들어와 있다.
부부간의 삶의 형태, 자녀와의 삶의 형태는 세상사람과 거의 다를 것 없이 살 것이다.
우리 교회도 특히 이런 부분에서 고민하지 않았다.
세상사람과 똑같이 살면서, 왜 하나님의 복이 오지 않는가 생각한다.
세상의 법칙에 둘러싸여서, 새로운 사상이 도래하는 것은 당시의 요구에 근거한 이기적인 아이디어들이다.
이런 것들이 곳곳에 있다면, 하나님의 법이라도 환경 자체에 파묻혀 낯설게 되고, 역할을 할 수 없다.
아내들에게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면, 되게 섭섭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가 살 길이다.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 가정이 진정 복받는 길이다.
말씀의 핵심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복종이란 신분적 차등이 아니다]
복종은 신분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저항하게 되는 것은 세상에서 오는 아이디어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되는 것은 신분의 차이가 아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것도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복종이 아니다. 성질이 다르다.
남자와 여자는 둘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동등한 인격체다.
어떤 한쪽이 다른 쪽에 지배된다는 논리는 성경이 전혀 지지하고 있지 않다.
그런 것은 오히려 세상에서 온 방법이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다고 한다.
갈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구원을 받고, 똑같은 신적인 본성을 받았고, 신적인 원천을 받는다.
롬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똑같은 하늘의 영광이 확정되어, 갖고 있다.
겉모습으로는 사람의 인격의 높낮이를 절대 말해서도 안되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람의 역할, 기능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이를 두셨다.
하나님은 버림받은 것 자 같아도, 일일히 한 영혼 한 영혼을 찾아서 구원하신다.
그들에게 영적 특권들이 다 있다.
그런부분에서 그들은 다른 점이 없다. 영적 가치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능은 다르다.
교회에서도 회중위에 권세가 있도록 권세를 내어주셨다.
목자에게 권세를 부어, 리더로 두었고, 가정에서는 남편이 아내 위에 리더가 되도록 권세를 부어주셨다. 부모에게도 자녀 위에 있도록 권세를 주셨다.
종들에게도 복종하도록 주인에게 권세를 주셨다.
왜 권세를 한쪽에만 줄까.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사회의 제도, 정부, 가정, 교회는 잘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에, 질서가 필요하다.
그래서, 권세가 필요하다.
교회도, 가정도 다 아름답고, 성공적으로 유지되어야 하고, 존재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세가 필요하다.
우리가 속아서, 권세를 잃어버리니까, 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
권세가 무너지면, 다 파괴된다.
개인적으로 몇몇이 이익을 볼 수 있지만, 모두가 죽는다.
가정에서도 권세를 인정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창조의 질서에 속한 부부의 관계]
창조에는 하나님의 설계속에서 질서가 완벽한 방법으로 디자인되어 주어져 있다.
본문의 말씀도 사실 창조의 질서에 해당하는 말씀이다.
인간의 첫 스토리를 보면, 남편이 가장으로 인정되어 있다.
고전11:3`,11,12
3.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일단 누가 뭐라고 해도, 창조의 질서는 이렇게 되어 있다.
남편이 아내의 머리가 된다.
성경의 여러곳에 이런 말씀이 있다.
창조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고, 질서의 책임자는 하나님이시다.
권세는 누군가에게 부여되었지만, 권세가 유지되기 위해, 서로의 복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땅의 인간에게는 자기들의 의견이 자꾸 도입되어, 다른 방법을 모색해간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새삶을 부르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엡4:1,24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이런 부르심은 높은 부르심이다.
그가 책임지시고, 높은 곳으로 이끄시는 창조주의 부르심이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따라가지만, 사실 창조의 질서와 일치된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가 정하신 원래의 질서를 되찾도록 명하시는 것이다.
성령충만한 자들만, 환경의 영향을 극복하고, 오직 하나님의 원칙을 순전하게 따를 수 있다.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중요한 관계원칙은 상호복종이다.
원래 창조의 질서에 있어서, 피조물과 피조물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핵심원칙이던 상호복종을 지금 다시 명하신다.
그 원칙은 교회에 주셨고, 이제는 가정에게 본격적으로 주셨다.
[자발적 복종의 원리]
창조의 질서에 의해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한다.
이것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는 복종이다.
이것은 자발성을 의미한다.
엡5: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
강제적 명령이 아니라, 모든 아내에게 강력히 권하여 촉구하는 것이다.
특별한 제한없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명하고 있다.
명령이기도 하지만, 강제성이 없는 성격상 권면이다.
사람들이 자기가 갖고 있는 권리를 교회안에서 포기하고, 복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임명받은 권세에게 복종하는 것이다.
본문에서는 남편이 대상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기의 권리를 기꺼이 주어야 한다.
그렇다고, 남편이 아내를 막 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녀들을 부모에게 순종하도록 당연히 복종을 요구하는 것과는 다르다.
종들이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하는 것도 아니다.
종을 부리듯, 자녀를 대하듯 할 수 없다.
아내는 남편과 동등한 신분이다.
아내에게 남편이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당연하게 물떠와 하는 식은 할 수 없다.
명하는대로 순종할 것이라고 초점을 두고 있으면, 말씀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가정의 머리로서 남편의 우선적인 책임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제공하고, 섬기고, 아내의 행복에 복종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남편이 권세가 있다고, 기분에 따라, 마음대로 아내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맞지 않는 엉뚱한 생각이다.
본문의 말씀에 자기 남편이라고 한다.
원문은 친밀감을 당연하게 여기고 쓰는 말이다.
높이가 동등한 사람이 친밀함 속에서 복종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누구는 권세가 있고, 누구는 복종해야 하지만, 친밀감이 있고, 반드시 상호성이 있다.
고전7:3-4
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찌라
4.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자기 남편이라고 할 때, 남편은 아내의 것이다.
일방적으로 아내가 남편의 소유가 아니다.
자기 남편이라고 말함으로써, 남편도 자기 소유가 되었다고 하여, 반대 의견을 막는 것이다.
상호적으로 해야 한다. 혼자서 일방적으로 할 수 없다.
아내와 남편은 상호 소유되고 있는 존재들이고, 상호 복종이 요구되는 관계다.
그들은 서로에게 속하는데, 동등한 분량으로 속한다.
남편은 아내를 일방적으로 소유하지 않늗다. 남편이 더 우월하지 않다.
아내가 더 열등하지도 않다.
권세와 복종의 구분은 전적으로 기능의 부분이다.
이 기능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타락이 가져온 저주]
인류가 타락하면서, 저주가 이 땅에 들어왔다
원래 하나님이 갖고 계신 법을 깨버렸다.
저주로써 세상에 들어온 죄를 더욱 짓도록 하셨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와가 불순종했는데, 뱀의 유혹에 대해서, 아담과 상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그래서, 하와에게 저주를 내리시는 장면이 나온다.
그 내용중에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저주의 내용이다.
이렇게 인류가 심판을 받았고, 타락으로 인해 저주가 함께 들어왔다.
남편을 사모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다.
창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죄의 소원, 사모 같은 말이다. 남편의 자리를 욕심내는 것이다.
남편은 너를 다스린다.
우아한 통치가 아니라, 고약스러운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의 소원은 네게 있지만, 죄를 다스리라고 하셨다.
죄를 저항하여 싸우라는 말이 다스리라는 말이다.
여자는 남편의 자리를 탐낼 것이고, 동시에 남자는 여자가 자기의 자리를 탐내지 못하도록 짓밟는 것이다.
[질서의 회복을 위한 처방]
그런 이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 시대는 여자를 대단히 제한했다.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 하려고 한 것이다.
타락한 인류의 처지에 대해서 반응하고 있었다.
여자들의 사회참여를 대단히 제한하고, 가정에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것은 차별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여자는 남편의 자리를 탐하고, 남자는 여자를 짓누른다.
이것이 인류의 저주다.
처음에 여자가 온당한 복종의 의무를 왜곡했고, 남자도 자기의 권세를 왜곡시켰기 때문에, 여기서부터 성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인류 역사내내 여자는 해방을 하려고 했고, 남자는 짓누르려고 했다.
이것이 죄의 성질이다.
남자들이 여자를 짓밟는 부분은 역사내내 잔인하게 행해져 왔다.
20세기까지 이렇게 해왔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저주의 내용 자체다.
죄에 의해 타락하고, 무질서하게 된 관계, 완전한 망가짐 속에서 창조의 질서로 부르신 것이 신약교회의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조화가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
[상호적 복종]
상호적 복종으로 돌아가도록 부르시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하와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드셨고, 아담의 동반자가 되게 하셨다.
창2:22-23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이 하와를 처음 봤을 때, 뼈중의 뼈, 살중의 살이라 하였다.
자기를 복종할 사람에 대한 권세자의 태도, 결혼관계에서의 상호성을 하나님은 지금도 주장하시는 것이다.
남편의 기능적으로 머리됨을 바꾸지 않고, 회복하는 것은 신약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다.
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원래 남자는 가정을 수호하고, 봉사하는 자로 부르셨고, 여자는 남편을 돕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골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마땅하다는 말은 합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자의 복종하는 역할은 창조시에 하나님에 의해서 설계되었다.
인간이 타락했을 때, 저주를 선언하신 모습 속에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여기서 교회가 권세 필요 없다고 할 수 없다.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내 생각이 정의라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의 권세를 떠나,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가정도 내 생각으로 인도하면,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교회와 가정, 어떤 단체도 권세와 복종의 시스템 없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자꾸 세상의 철학이 들어온다.
여성인권 향상운동, 이상한 이념들도 다 들어온다.
그래서, 기능적 구별마저도 모호하게 한다.
[끊임없이 밀고 들어오는 세상 철학들]
이것은 사실 거시적으로 보면, 사단이 하나님의 세계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권세가 없으면, 우리를 보호할 자가 없다.
인간이 개인의 자유, 내 마음에 흐르는 생각을 주장하면, 거기서 균열이 시작되고, 파멸하게 된다.
[오직 사랑이 있어야 회복이 가능한 문제]
너희들은 다 망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사랑하듯, 사랑하라. 그러면 살리라.
엡5: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그래서, 서로 복종하라는 것이다.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너에게 그는 사랑이시다.
너를 구원하실 분은 사랑이시다.
너의 유일한 소망은 사랑이시다.
엡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나의 자세를 어떻게 구비해야 할까. 겸손, 온유, 오래참음,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라.
이 옷을 입어야 한다.
아무리 누가 와서, 능력이 많고, 은사가 많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랑이 없다면.
천사의 음성을 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없다.
복종과 사랑은 같은 것이다.
두 배우자가 이기심 없이 섬기는 기회다.
둘에게 요구되는 것은 소중한 돌봄과 헌신이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내 이익을 포기하고, 서로 복종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상대를 지배하고자 하는 수천년, 수만년 묵은 이기심을 제어해야 한다.
또, 평등이라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오는 세상생각을. 제어해야 한다.
하나님의 법에 충실함으로 원수에게 속지 말자.
하나님이 명하시는 것은 성령충만한 자에게 명하시는 것이다.
우리끼리는 할 수 있다. 세상사람과 섞여서는 할 수 없다.
말씀을 주시는 것은 성령충만한 자, 영원히 하늘에 갈 자들에게 축복하시는 것이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법칙이 잘 진행되기 원하시는 것이다.
믿는 자들끼리 헌신하라.
세상은 이렇게 좋아, 저렇게 좋아, 속임수가 있다.
속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하고, 우리를 살리는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으로 서로 복종하므로, 하나님이 이끄시는 행복을 얻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