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58〉
■ 고향길 (신경림, 1936~)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여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윗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네.
내 좋아하던 고무신 집 딸아이가
수틀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 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 달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만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 보며
길 잘못 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1981년 <한국문학> 11월호, 1985년 시집 <달넘세> (창작과 비평사)
*긴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니, 청명한 하늘 가을이 더욱 깊고 푸르러지는 요즘입니다. 고요한 시골 동네이던 여기도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마을 입구에 걸렸고, 집집마다 웃음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아이들이 신나서 뛰어다니는 등 오랜만에 활기찬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 세대들 대부분은 이제, 어릴 적의 옛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아이들의 고향’인 집에서 애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어르신이 되었습니다. 하긴 고향에 가도 우리를 반겨 줄 부모님은 지금 계시지 않겠습니다만.
이 詩는 고향을 찾아가지만 안주할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는 자신의 모습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여기서의 화자인 ‘나’는 성공을 꿈꾸며 고향을 떠났으나,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는 젊은이로 보여집니다.
그리운 고향을 찾아가는 나에게는, 현재의 비루한 자신의 처지로 인해 기쁨과 설렘 대신 아는 사람들을 피할 수밖에 없는 고향길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장길도 거부하고 어릴 적 좋아하던 애와의 추억도 떨친 채, 초저녁 낮달에나 마음을 기댈 수 있을 따름이고요. 그리고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초라한 자신이 눈에 띄지 않도록, 남들 모르게 빨리 벗어나고 싶고 고향을 등지며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군요.
이 詩를 읽으면서 1970년대 이후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로 농촌을 떠났던 우리네 고향 어느 젊은이의 안타까운 처지를 다시 보는 듯하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