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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실 우리말 스크랩 소설 속 새말 ② ‘바탕화면’과 ‘배경화면’
흐르는 물 추천 1 조회 109 13.06.05 08:5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탕화면’과 ‘배경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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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엘피판의 선율이 그리워진다면, 그것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누군가를 기다리던 설렘이며, 빨간색 공중전화기, 그 앞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들고 몇 번이나 머뭇거리던 망설임이다.
그런 설렘과 망설임을 뒤로 하고, 지금 컴퓨터의 ‘바탕화면’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엘피판 대신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클릭하여 음악을 듣고, 다른 노래를 듣고 싶을 땐 그저 또 한 번의 클릭이 필요할 뿐이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책꽂이를 뒤지지 않고도 한 번의 클릭으로 원하는 책을 찾아 읽고, 며칠의 기다림 없이도 한 번의 클릭으로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 모든 일들이 ‘바탕화면’ 덕이다. XT, AT286, 386, 486 그리고 펜티엄, 컴퓨터의 진화와 함께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윈도Windows나’ ‘맥Mac OS’의 작업 공간인 ‘그’는, 아날로그 문화가 디지털 문화로 바뀌는 전환 선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바탕화면’이 문학 작품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인터넷 창을 닫았다. 바탕화면 속에서 딸아이를 안은 아내가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있었다. 《김경욱, 고독을 빌려 드립니다》
핸드폰으로 찍어 놓았던 그녀의 뒷모습을 컴퓨터의 바탕화면에 깔아 놓았지만, 컴퓨터로 옮겨 놓은 사진의 해상도는 핸드폰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형편이 없었다. 《장정일, 구월의 이틀》

 

우리가 흔히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에서 예쁜 그림이나 가족사진으로 꾸미는 것은 ‘wallpaper’, 즉 ‘배경화면’이다. 말하자면 위 소설 작품에 나오는 ‘바탕화면’의 정확한 표현은 ‘배경화면’인 것이다. 실제로 ‘배경화면’은 ‘바탕화면’보다 더 먼저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학 작품 속에서는 그 용례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아래에서 보듯, 신문 기사로는 쉽게 검색된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영화 포스터부터 시작해서 멋진 사진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 그림들을 자기 컴퓨터의 배경화면으로 깔고 싶을 때…… 《경향신문, 1996. 10. 14.》
평범한 스마트폰 초기 배경화면을 폰 꾸미기 앱을 통해 사용자 개성이 담기도록 다채롭게 바꿀 수 있다. 《한국일보, 2013. 4. 18.》

 

엄밀히 말해서, ‘배경화면’은 ‘바탕화면’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다. 가령 윈도나 맥 등을 운영 체제로 쓰고 있는 컴퓨터의 부팅이 끝났을 때 나타나는 첫 화면이 ‘바탕화면’이다. 윈도의 ‘바탕화면’은 사용자들이 마음대로 바꾸거나 꾸밀 수 있는 ‘배경화면’, 문서 작성, 그래픽 작업, 인터넷 접속 등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의 ‘아이콘’, 컴퓨터를 켜고 끌 수 있는 ‘시작 버튼’, 현재 어떤 작업이 진행 중인지를 보여주는 ‘작업 표시줄’, 작업하고 있는 일을 저장하거나 출력할 수 있는 ‘폴더’ 등으로 구성된 작업 공간혹은 ‘작업창’을 통으로 일컫는 말이다. ‘바탕화면’을 영어에서 ‘데스크톱desktop’이라고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데스크톱’은 ‘데스크톱 메타포desktop metaphor’ 즉, 책상 위의 환경을 그대로 컴퓨터 화면 속에 구현한 작업 공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나라에서 ‘바탕화면’이라는 뜻보다는 ‘데스크톱 컴퓨터’, 즉 ‘개인의 책상 위에 설치할 수 있는 작은 컴퓨터’라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그 소리들로 윈도를 읽는다. 아이콘이 없는 빈 바탕에서 마우스가 정지하면 바탕화면이라는 기계음이 반복된다. 《박금산, 귓속의 길》
컴퓨터를 켜고 바탕화면에 바로가기를 해 두었던 파일을 클릭했다. 한글 화면이 떠오르기 무섭게 흰 여백 위로 글자들이 쏟아졌다. 《권정현, 굿바이 명왕성》

 

‘바탕화면’은 ‘책상 위’라고 하는 3차원의 물리적 공간을 2차원의 평면 속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바탕화면desktop을 여는’ 것은 책상이 있는 어떤 공간 속으로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이며, ‘바탕화면wallpaper을 갈거나 바꾸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거나 꾸미는 일이다.

 

‘바탕화면’이나 ‘배경화면’ 모두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를 잡은 말이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나 중국 동포 사회에서 간행된 문헌에서는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아직 그들 사회에서는 ‘바탕화면’이나 ‘배경화면’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거나, 아니면 아직 우리가 알고 있지 못한 다른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방식의 빠르고 편리함이 몸에 밴 우리에게는 이제 아날로그 방식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오늘은 사랑하는 이에게 연필로 꾹꾹 눌러쓴 편지 한 통 보내는 여유를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글_이길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새어휘부 부장. 전북대학교 대학원 국어학 박사. 전북대 인문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 호남문화정보시스템 책임연구원 등을 지냈으며 논문으로는 <전이지대의 언어 변이 연구>, <전라방언의 중방언권 설정을 위한 인문지리학적 접근> 등이 있고, 저서로는 <언어와 대중매체>,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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