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동 몽돌
바깥에서 거제의 명소로는 해금강과 외도를 꼽지 싶다. 해금강을 찾은 지는 하도 오래라 아슴푸레하다. 외도도 그렇다. 통영에서 유람선을 타고 가기도 했고 거제 어딘가 포구에서도 그쪽으로 가는 유람선을 탔던 기억이 난다. 거제 머물면서 앞으로 해금강이나 외도는 굳이 유람선을 타고 찾아갈 생각은 없다. 거기가 아니라도 거제 구석구석 내 발자국을 남길 곳이 많아서다.
그동안 연초와 가까운 거제 동부와 북부는 웬만큼 둘러봤다. 대중교통으로 거제에서 남부나 서부로 나가려면 고현 터미널에서 그곳으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야했다. 오월 하순 화요일 퇴근 후 곧바로 고현으로 나갔다. 거제 남부 해금강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올봄 거제로 건너와서는 아직 걸음하지 않은 곳이다. 시내버스는 사곡을 둘러 거제면으로 갔다.
거제에서 행정구역 명칭이 좀 헷갈렸다. 고현에서 신현이 생겨났다. 예전 현이 있던 자리가 고현이고 그보다 더 새로운 곳이 신현이다. 지금 거제의 행정의 중심으로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들어선 지역이다. 고현만에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있다. 인구도 가장 밀집되고 상가도 많다 바깥과 통하는 시외버스터미널도 거기 있다. 그 곁에 옥포와 장승포가 제법 큰 시가지다.
거제면은 고현과 신현 이전 거제의 행정 중심 역할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계룡산을 병풍처럼 두른 남향이었다. 비록 시내버스로 지나쳤지만 처음 가본 곳이었다. 워낙 큰 섬이다보니 거제면이 그런 시절도 있을 법했다. 조선시대 각 고을에서 유교 통치 이념의 상징적 공간이고 공립학교에 해당하는 향교도 그곳에 위치했고 면사무소 곁에는 거제현 관아 건물이 남아 있었다.
시내버스는 거제면에서 동부면으로 달려갔다. 지금 거제 동부는 옥포나 장목이어여 하는데 거제면에 가보니 그곳이 동부가 됨을 알게 되었다. 고현 기준이라면 동부는 방향이 맞지 않다. 남부라고 해야 한다. 동부와 바로 인접한 해금강에 남부면이 바로 붙어 있었다. 모두 거제면을 기준으로 지명을 붙이다 보니 동부면과 남부면이 거제면에서 동남향인 왼쪽과 앞쪽에 위치했다.
복병산과 노자산이 우뚝한 골짜기로 드니 청소년수련원과 자연휴양림이 나왔다. 학동고개를 넘으니 바다가 드러났다. 타고 간 버스는 해금강 근처 도장포까지 가는 듯했으나 종점까지 가질 않고 학동삼거리에서 내렸다. 청년기에 한 번 다녀간 어렴풋한 기억이 떠오른 바닷가였다. 흑진주 몽돌이 넓게 깔린 해수욕장이었다. 해변엔 평일 오후였지만 외지 관광객이 몇몇 보였다.
원호를 크게 그린 해변은 밀려온 파도가 거품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연이어 부서진 파도에 마모된 수많은 자갈돌은 동글동글해져 켜켜이 깔려 있었다. 흑진주몽돌이었다, 파도가 부서진 곳에서도 자그락거렸지만 발자국을 뗄 때마다 발바닥은 지압 효과를 느끼면서 자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더위와 함께 곧 해수욕장이 개장 되면 많은 피서객이 찾을 몽돌해수욕장이었다.
연안 바닷물은 무척 맑았다. 왼편 산자락에 가린 곳은 얼마 전 들린 구조라였다. 그 앞 바다에 한 점으로 뜬 외도가 보였다. 바람의 언덕으로 넘어가는 도장포는 오른편 학 날개에 해당했다. 몽돌 밭이 끝난 어디쯤 동백나무 숲이 있을 텐데 횟집과 모텔 앞을 거쳐 지나야해 가 보질 못했다. 학동 포구를 에워싼 노자산 숲에는 천연기념물 팔색조가 새끼를 키우고 있으려나.
시간 여유가 있으면 망치에서 구조라로 걸어 지세포로도 가보고 싶었다. 도장포를 거처 바람의 언덕을 넘어 해금강 근처로도 서너 시간이면 될 듯했다. 해가 길어지고 있긴 했으나 낯선 지형지물에 날이 어둡도록 발품을 팔기는 무리였다. 고현이나 장승포로 복귀하는 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았다. 나는 아까 타고 왔던 55번이 고현으로 가는 길목을 지켜 그 버스가 오길 기다렸다.19.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