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가을 문학기행
무주로 가는 길
미리내/황광국
2013년 11월 2일
교육원 앞에는 아침 아직 8시가 채 못되어 우리들의 여행을 책임질 ‘아름다운 관광버스’가 도착해 있다. 친절한 기사님의 따뜻한 커피 한잔을 받아들고 즐거운 여행길이 시작된다. 마침 은경창회장이 첫 번째로 도착해서 여행을 준비하고 전북문인협회장이신 정군수 교수님에 이어 오늘의 동행 하나 둘 모여들고 있다. 출발시간은 8시 반이다. 그때까지 다 모이지 않아 8시 45분에야 오늘의 여행지 무주를 향하여 출발했다. 10시까지 무주에 도착해야 하는 촉박한 시간에 오늘 하루 함께 할 25명의 문우들을 태우고 관광버스는 문학기행의 여정에 들어섰다.
노랑 빨강 색색으로 물든 가을 길을 떨리는 낙엽에 스며드는 바람 사이로 우리는 기대에 찬 가슴안고 달려서 간다. 애환서린 이 길을 옛날에도 달렸었건만 무참히도 세월 저편으로 흘러서 가고 낙엽은 또다시 지고 있다. 저 멀리 아랫동네에 젖어가는 낮은 연기는 옛날을 더욱 새롭게 불러들이는데 시냇물 해맑은 백로는 먼 산의 향수를 그리며 유유히 아침을 즐기고 있다. 자연의 기운이 겨울을 알리고 사시를 순환하며 서리는 조화의 향기에 취해 간다.
09:06 : 버스는 전주를 벗어나 소양을 경유하여 무주로 가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우리나라 동서를 관통하며 호남과 영남을 잇는 교류와 발전의 숨결 트이는 겨레의 고동소리에 시원한 흐름 거침이 없다. 기운차게 산을 똟고 물을 건너 달리는 시멘트의 길에 나타나는 터널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강 건너 바람건너 계곡을 가로질러 다가서는 어둡고 긴 터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아무리 어둠이 깊어도 끌고 가노라면 머지않아 밝음이 다가선다는 철칙, 희망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비탈을 가르는 저 골짜기로 공중에 흐르는 색색의 기운이 지상에 힘을 실어주며 연이어지는 터널을 벗어나 가을의 향기에 만산의 기운이 운집하고 있다. 지상에서 공중에 띠우는 소스 그것은 자연의 합일이 아니겠는가. 무주로 가는 고산준령에 더욱 붉어지는 물결, 무주(茂朱)라는 그 이름답게 붉은 산하가 점점이 펼쳐진다. 온 통 붉어지는 기운, 홍해황엽으로 물들어가는 적상산을 향하여 가을도 막바지를 향하여 쉼 없이 달려서 간다.
오늘 같은 귀한 날에 문사(文士) 함께 하는 기행은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수려한 산천에 같이 가는 사람 들 좋으니 더한 아름다움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여정의 1번, 그것은 마음이 흐르는 동행이려니 그랬으므로 산천도 사람도 모두 아름답다. 넘치는 감성에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의 가을 나들이, 마음이 열리면 세상이 아름답고 만사가 즐거움으로 비춰진다. 불붙는 가을의 졍열 만큼이나 시의 가슴에 불타는 그 향기 짙어가고 있다.
안개 낀 저 아래 단풍 속으로 짙어가는 향취, 져 가고 있으므로 더욱 절묘한 색색의 감정에 드리우는 만산의 기운이 익어가는 플라타나스의 향기에 십년 전 가을에도 그랬던 것처럼 십년 후의 가을도 오늘같이 사색을 물들이며 세월을 이어가고 있을 터이다. 연이어 다가서는 터널을 통과하며 짧아도 긴 여행길에 가장 소중한 시간이 찰라 찰라 우리들 사이를 스친다. 우주는 우리들이 서 있는 이 시간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그 회오리의 중심에서 다시는 불러올 수 없는 이 시간을 아름다움으로 꾸며서 가야 한다. 우리가 짊어진 굴레이자 소명이기도 하다.
10:00 정확히 도착한 시간, 붉은 열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적상의 웅자 오색의 시네마에 깊이깊이 빠져들며 여심의 한 가닥 길에 묻어두고 무주의 광장에 내린다.
역사의 숨결 적상산(赤裳山)
붉은 치마를 두른 것처럼 화려한 이름의 산이다. 가을 풍광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단풍이 아름답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산이라고 하니 가히 알만한 가을을 물들이는 산이다. 이 산에 조선의 역사를 기록한 왕조실록을 보관한 적상산사고가 있고 적산산성, 안국사 등 각급 문화재와 국가 사적을 비롯하여 근래에 건설한 양수발전소의 동력이 되는 산정의 호수 적상호가 자리하고 있는 역사와 수려한 자연이 어우러진 천혜의 산이다.
구불구불 가파른 길을 관광버스는 거북이 걸음을 하며 가다가 내려오는 차가 있으면 쉬었다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여정이다. 그러니 차 내에서 가무는 금기사항이다. 물론 다른 코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자칫 화를 부를 수 있는 험난한 구간이니 더욱 그러하다.
얼마를 오르니 산정호수가 시야에 들어오며 화려한 경관이 펼쳐진다. 인근 주차장에 정차하고 거기서부터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소형차량이야 산정까지 계속 운행해도 무방하지만 대형버스는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오늘의 안내자 게이꼬의 해설이다.
적상산 사고 ; 조금 오르니 산기슭에 적상산 사고가 나타나고 거기 잠깐 들려 조선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조선시대 그대로의 모형으로 지어졌다고는 하나 현대적인 풍취가 돋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층으로 된 사고다. 원래는 저 아래 있었지만 적상호 댐을 건설하면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산 정상으로 가는 안국사 역시 그 때문에 이주했다고 한다.
이층으로 된 장중한 건물 아래층은 통풍을 위하여 원목이 육중한 기둥만 서있고 2층에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이 전시되어 있다. 만져볼 수도 속을 들여다 볼 수도 없으니 보고 느끼는 데는 실록원본이나 별 차이가 있을 수 없을 터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일한 왕조실록이다. 조선시대 왕조의 역사뿐만 아니라 생활상까지 가감 없이 실존 그대로 기록된 유일무이한 인류의 자산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것만 등재된 것은 다른 나라의 실록의 내용은 대부분 실정자의 입맛에 맞게 가감되었기 때문이라는 해설사의 이야기다. 조선 태조대왕부터 마지막 27대 순종임금까지의 실록이다. 다른 왕들은 실록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15대 임금인 광해군과 10대 연산군만이 일기라는 제목으로 기록되고 있다. 반정으로 쫒겨나 군(君)이라는 왕자의 위치로 강등된 폭정의 왕으로 기록되고 있다지만 그 나름대로 훌륭한 왕의 일면도 있지 않았던가. 조선의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던 연산왕, 명청 세력다툼의 혼란기에 적정한 외교력을 발휘하여 위기에 나라를 평온하게 했던 현명한 광해왕도 다른 왕 들 못지않았을 터, 노산군으로 강등되었던 단종처럼 복위 시켰으면 어떠했을까? 하지만 뭐 그게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대왕의 자리로 매김 해 줄 필요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무엇이 있으랴. 뭐 호칭이 문제이겠는가. 달라질 것은 없다. 왕권을 행사했으면 충분하지. 우리는 광해군을 훌륭한 임금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아니한가. 골육상쟁과 사화로 얼룩지고 군신에 휘둘린 허약한 왕들도 많지 않았던가. 다만 정쟁에 휩쓸려 변을 당한 희생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추존(追尊)이 이미 가버린 그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마지막 임금 고종과 순종의 실록은 별도로 전시되고 있다. 일제의 영향을 받아 진실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실록으로서 가치성을 그만큼 상실하고 있음이다. 그래도 모두다 우리의 소중한 역사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조선시대 같으면 일반인이 절대로 볼 수없는 그 자리에 서 역사를 통찰 할 수 있으니 축복받은 오늘의 관광이다. 밖으로 나서니 깨끗한 황적색 뜰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다음 행선지 안국사를 향하여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국사를 돌아오며 : 거친 숨 몰아쉬며 얼마를 오르니 정상에 적상산 안국사라는 일주문이 운무 속에 장중함으로 다가선다. 옛날에는 저 아래 적상호에 있었건만 댐건설의 여파에 산을 넘어 존치하고 있다.
높고 높은 극락전을 참배하고 선원각이었던 천불전에 들렸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이층누각에 일천의 부처님, 거기 자기와 닮은 얼굴이 있다는데 그것은 각자 보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지 아니할까. 어쨌거나 거기 들려 3배를 올렸으니 3천배는 한 셈이 된다. 그러나 숫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유유히 흐르는 마음의 행로가 어디로 가는가가 중요한 문제 아닌가.
국가를 안락하게 하리라는 안국사, 깊은 안개에 싸여가고 산을 울리는 독경소리에 추녀 끝의 풍경소리 바람을 날린다, 성보박물관에 동양 각국의 보살 부처가 숨쉬고 유물들이 오는 객을 맞는다. 문화의 소용돌이가 고요를 넘는다.
갈 길이 바쁜 우리는 다시 나와야 한다. 오던 길을 돌아 나온다. 늦어가는 오후의 붉은 단풍길에 낙엽이 우수수 비처럼 쏟아지고 있다. 마구내리는 낙엽의 소리, 빗소리인가 낙엽의 소리인가 구분이 안가는 우수수한 어두워가는 하산길이다. 맴도는 낙엽,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을 터라 공중을 가르며 지상에 내리며 춤을 춘다. 가을이 함께 추락하며 소슬한 바람결에 비에 젖어 밟혀가도 그것이 그들의 숙명이며 가치이다.
붉게 타들어가는 적상호의 단풍, 물 마른 호숫가에 둘러선 홍 황 록으로 점철되는 가을빛의 파노라마 만추의 극치를 연출한다. 절묘한 하모니, 색색의 향연, 저처럼 현란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 비오는 날의 수채화, 만산에 번져가는 저 색감 좀 봐 !
첫댓글 월천카페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언제나 활활 타오르고 있어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가을 문학기행을 다녀오셔서 올려주신 무주가는길 그날을 생생하게 떠올리면서 가을 단풍보다 붉게 물든 미리내님의 열정의 글 잘 감상하고 돌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