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Mali)
아프리카 서부의 내륙국.
수도는 바마코, 화폐는 세파프랑이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며, 국민의 대다수가 이슬람교이다. 주로 농업에 기초한 개발도상의 혼합경제체제이며 가뭄·인플레이션·유가상승 등이 겹쳐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위국 수준이다.
수도는 바마코이다. 서쪽은 세네갈, 북서쪽은 모리타니, 북동쪽은 알제리, 남동쪽은 니제르 및 부르키나파소(옛 이름은 오트볼타), 남쪽은 코트디부아르(아이버리코스트), 남서쪽은 기니와 각각 접하여 있다. 면적 1,248,574㎢, 인구 19,107,706(2018 추계).
자연환경
말리의 지형은 일부 지역에 고원과 평원이 있을 뿐 대체로 평평하고 단조로운 편이다. 남부와 남서부의 고원은 높이 300~600m의 작은 언덕들이 연속해 있으며, 북부에 있는 타네즈루프트와 타우데니의 광대한 평원은 사하라 사막에 속해 있다. 남서부와 중남부는 나이저 강 상류 유역의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이저 강 전체 길이의 거의 1/3이 말리를 관류하면서 내륙 삼각주를 형성한다.
나이저 강 유역은 주기적 범람과 삼각주의 비옥한 충적토로 중요한 농경지대를 이루고 있다. 세네갈 강의 원류(源流)가 말리 서쪽 끝에서 시작된다.
말리는 수단 기후대, 사헬 기후대, 사하라 기후대의 세 기후대에 걸쳐 있다. 남부의 수단 기후대는 연간 강우량이 500~1,400㎜이며, 평균기온은 24~30℃이다. 북쪽으로 사하라 사막과 접해 있는 반건조지역인 사헬 기후대는 연평균강우량 200~500㎜, 평균기온 23~36℃이다.
북부는 사하라 기후대로 사실상 비가 내리지 않아 몹시 건조하며, 낮 기온이 47℃를 넘는 반면 밤에는 4℃까지 내려간다. 수단 지대는 초본식물이 지배적이며, 수목으로는 잡종 마호가니·케이폭·바오밥나무 등이 있다. 수목은 사헬 지대로 이어지는 북부로 갈수록 적어진다. 사헬 지대는 스텝대이며 바오밥, 이집트 종려나무(doum plam), 팔미라 야자나무 같은 가뭄에 잘 견디는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식생은 사하라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점차 사라진다. 말리에 사는 동물로는 사자·표범·하이에나·가젤·영양·기린·코끼리·악어·원숭이·뱀·조류 등이 있다.
전국토의 약 2%가 경작지이며, 1/4가량은 목초지나 방목지로 이용되고 있다. 철광석·보크사이트·금·니켈·구리·망간 등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으나,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상태이다.
역사
1927년 통북투(팀부투) 북부에서 발견된 아셀라르인이라고 불리는 인간의 유골과 바위에 그린 그림이나 조각을 비롯한 구석기·신석기 시대 유물은 말리 사하라 지역에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이며, 다른 지역에서도 선사시대 후기 문명의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AD 300년경 사하라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로가 나이저 강 만곡부와 모로코 및 알제리 남부를 연결했으며, 이를 통해 상아·고무·타조깃털·금·노예 등을 운송했다. 소닌케 족이 세운 가나 제국(4~11세기)은 이들 대상로가 시작하는 나이저 강과 세네갈 강 사이에 있었으며, 말링케족의 말리 제국(12~16세기)은 나이저 강 중·상류 지역에 있었는데 오늘날의 국명은 바로 이 제국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15세기에 팀북투-가오 지역의 송가이 제국은 동쪽으로 하우사 왕국에까지 세력을 떨쳐 말리 지역 대부분을 정복했다. 1591년 사디 왕조 6대 통치자였던 아흐마드 알 만수르가 이끄는 모로코 군대가 이 지역을 침략하여 2세기 동안 팀북투는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
그뒤 나이저 강 유역은 가오 지역의 부아레그 족, 마시나의 풀라니 족, 세구 왕국의 밤바라 족으로 나뉘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는 이 지역을 정복해 프랑스령 서아프리카의 일부로 만들었으며, 당시 프랑스령 수단으로 불렸던 이 지역은 1946년 프랑스 연방의 해외 영토가 되었다. 1958년 지금의 말리가 수단 공화국으로 선포되고 1년 후 세네갈과 연합하여 말리 연방을 형성했다.
정치적 격차로 인해 1960년 세네갈이 이 연방에서 탈퇴했으며 말리는 독립했다. 1968년 임시 군사정부가 민간정부를 몰아냈으며, 1974년 새 헌법이 채택되었으나 임시정부는 5년 더 통치할 의사를 밝혔다. 1968년 군사정부 출범과 함께 권력을 잡았던 무사 트라오레는 1979년 대통령에 선출되고, 1985년 재선되었다.
국민
말리의 인구는 197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왔다. 인구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 1.9%, 2000년 2.9%, 2010년 3.2%로 2000년대 이후 빠르게 증가해 2022년 기준 인구는 2,115만 8,994명에 이르렀다. 인구밀도는 16명/㎢이다. 인구는 분산 거주하여 60% 인구가 농촌지역에 살며, 약 1/10이 유목생활을 한다. 출생률과 사망률이 높은 편에 속하며, 이는 서아프리카 전체 비율과 비슷하다. 도시 거주인구는 약 40%이며, 인구의 절반가량이 15세 이하이다.
말리에는 이른바 흑과 백의 주민이 있다. 백인 가운데는 무어인으로 알려진 아랍-베르베르족만이 아니라 베르베르족의 유목집단인 투아레그족도 포함된다. 이들은 주로 말리 중부의 사헬 지대에 거주한다. 흑인 주민은 농경생활을 하는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며, 이들 가운데 가장 많은 밤바라족이 전체 인구의 1/3가량을 이루고 있다. 2번째로 많은 풀라니족(페울족)은 사헬과 마시나에서 유목생활을 하며, 농경민인 소닌케족(사라콜레족)은 가나 제국을 세웠던 부족의 후손으로 사헬 지대 서부에 살고 있다.
말리 제국의 전통을 지켜온 말링케족은 남서부에 거주하며, 송가이족은 젠네에서 안송고에 이르는 나이저 강 유역에 산다. 도곤족은 반디아가라 주변의 고원지대에 살고 있으며, 볼타어(語)를 쓰는 브와족(보보족)·세누포족·미니안카족은 동부와 남동부에 산다. 종교 구성은 국민의 90%는 이슬람교이며, 9%는 토착신앙, 1%는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에 중에서는 로마 가톨릭이 2/3, 개신교가 1/3으로 구성된다. 공용어인 프랑스어와 함께 인종별·지역별로 토착어 및 방언이 널리 쓰이며, 무어인은 아랍어를 사용한다.
경제
말리의 경제는 주로 농업에 기초한 개발도상의 혼합경제체제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초 가뭄·인플레이션·유가상승 등이 겹쳐 경제가 더욱 어려워졌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증가율을 간신히 따라가고 있으며, 1인당 GNP는 세계 최하위국 수준이다.
농업은 GNP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 인구의 4/5 이상이 이에 종사한다. 농업 생산은 주로 영세농업에 의존하며, 주기적으로 가뭄의 피해를 입는다. 197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그럭저럭 식량을 자급했으나 1980년대 중반에 휩쓸고 간 가뭄으로 대량의 식량원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주요작물은 기장·수수·옥수수·쌀 등이며, 환금작물로는 목화와 땅콩이 있다. 가축(염소·양·소)은 한때 프랑스어권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았으나 가뭄으로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어업은 하천에서 행해지고 어획물은 수출도 하며, 정부는 유럽개발기금의 도움을 받아 어로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광업은 금·대리석·석회석·고령토와 암염에 한정되어 있다. 공업은 GNP의 약 7%를 차지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5% 가량이 이에 종사한다. 제조업은 대개 규모가 작고 식품가공과 간단한 소비재 생산이 주종을 이룬다. 말리의 기업은 국영기업이 대부분이고 외국 정부들로부터 산업개발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으며, 에너지 개발사업은 거의 모두 외국 자본으로 이루어진다. 전력은 화력 및 수력 발전을 통해 생산한다.
주로 공공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업이 GNP의 약 1/3을 차지하며 전체 노동인구의 1/10이 이에 종사한다. 만성적 대외무역적자가 경제성장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으며, 말리 경제는 대외 원조기금(GNP의 거의 1/6을 차지함) 및 해외 근로자 송금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프랑스는 주요원조국이자 대표적 무역 상대국이다. 목화·면제품·동물 등을 수출하며, 기계류·운송장비·석유제품·건축자재·식료품 등은 주로 수입한다.
정치와 사회
1960년 독립과 함께 말리는 대통령을 국가원수이자 행정부 수반으로 하는 공화국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1968년 군사 정부가 들어서면서 헌법 시행을 중단하고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1974년에 개정된 헌법은 입법기관으로서 82명으로 구성되는 국민의회를 세웠는데, '말리 인민민주동맹'(Democratic Union of the Malian People/UDPM)이 합법적인 유일 정당인 만큼 국회의원 선거는 형식일 뿐이다.
대법원이 최고 사법 결정권을 갖는다.
학교에서는 초·중등교육을 포함하는 9년의 교육과정 동안 프랑스어로만 가르친다(실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는 해당연령의 1/4 정도에 불과함). 중등학교는 대개 3년 과정이며, 국립대학에서는 정부 요구에 부응하는 고등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산과 병원과 보건소를 비롯한 병원 및 의료시설의 확충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부족하여 적절한 건강관리가 어려우며, 기대 수명은 44세로 비교적 낮다.
문화
북쪽의 아랍권과 남쪽의 아프리카 흑인 국가 사이에 자리한 말리는 수세기 동안 서부 아프리카의 문화적 교차로였으며 독특한 수단 문화를 만들어냈다. 말링케족과 송가이족의 음악과 춤, 밤바라족과 볼타어군(語群)에 속하는 부족의 목각예술, 나이저 강 유역의 건축물, 만딩고족의 장신구 등은 주목할 만하다.
말리와 한국의 관계
외교
한국과 말리는 1990년 9월에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한국은 주 세네갈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으며, 말리는 주 일본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말리는 수교 이후 각 부처 장관이 여러 차례 방한했으며, 한국은 1995년 2월에 노영찬 특사, 2008년 12월에 오지철 한국관광공사 사장, 2014년 1월에 김영목 한국국제협력단(KOICA) 이사장이 방문한 바 있다.
한편 말리는 북한과 1960년 10월에 수교했으며 북한은 1968년 1월에 상주공관을 설치했다가 2004년에 주 기니 대사가 말리와의 외교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0년 기준 말리의 대한국 수출액은 1백만 달러, 수입액은 1천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전자집적회로, 버섯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화학제품, 전기기기, 의료용품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투자보장협정(2000), 경제·기술협력 협정(2009),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기본협정(2011)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2020년 기준 말리에는 26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한국에는 2018년 12월 기준 195명의 말리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