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중에도 봄엔 ‘종이꽃’이라는 독립영화로 여름엔 젊은 층을 겨냥한 오컬트 영화 ‘사자’로 관객들과 만났다. 특별히 ‘사자’에서는 구마사제 안 신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를 본 이들에게서 ‘진짜 신부님 같다’는 소감을 여러 차례 들은 터라 연기에 모델이 되어준 신부님이 있었는지 궁금했다.
“영화 속 인물은 바티칸에서 파견된 신부잖아요. 그런 모델을 찾기 어려워서 그냥 제 느낌으로 표현해보았어요.”
시나리오 작업부터 배우 안성기 씨를 염두에 두었다는 김주환 감독은 ‘선한 기운, 인품과 가치관들이 안 신부에게 가장 필요한 지점이었다’며 그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영화 ‘사자’에서 감탄을 자아냈던 것이 안 신부가 라틴어로 된 긴 구마경을 술술 실감나게 쏟아내던 장면이다.
“처음 접하는 말이어서 진짜 어려웠어요. 어마어마하게 외우고 또 외웠죠.”
어찌나 연습을 했던지 아직도 라틴어 대사가 한 자도 빠짐없이 기억난다고. 국민배우, 명배우 등 그의 이름에 붙여진 존경과 찬사 뒤엔 이렇듯 변함없는 성실함과 치열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안성기 씨는 가톨릭 신자여서 연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성호 긋는 것부터 제겐 익숙한 일들이니까요.”
신앙이 연기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묻자 그는 주저함 없이 ‘그럼요!’라고 답한다.
“연기하러 갈 때 꼭 기도를 해요. 특히 어려운 연기엔 힘을 주시라고 아주 절실하게 기도해요.”
그의 명품 연기엔 무엇보다 간절한 기도가 녹아 있었던 것이다.
배우로서 늘 귀감이 되어온 안성기 씨는 아내와 두 아들과 더불어 아름다운 성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독실한 신앙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명동대성당 미사에서 한국 가톨릭 신자를 대표하여 경건하고도 조심스럽게 독서말씀을 읽어내려가던 모습이 감동을 주기도 했다. 유명한 배우지만 평범한 신자로 살아가는 안성기 씨. 한남동성당 미사에 가면 늘 그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이다.
“다른 건 몰라도 미사엔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지방 촬영 등 어려운 상황이 되면 특전미사라도 드리죠.”
신자로서 당연한 의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우리 성당은 작아서 결석하면 다 알아요.”라며 농담을 건넨다. 성당 분위기가 가족적어서 아주 좋다며 살짝 본당 자랑도 한다.
영화라는 외길을 62년째 걸어온 안성기 씨는 무엇이든 오랫동안 해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곳곳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돕는 유엔기구인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1992년부터 봉사해왔고, 모회사 커피 광고엔 30년이 넘도록 함께하며 최장수 모델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이런 면면 때문이리라. ‘한결같음’이란 말이 참 어울린다고 전하자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화를 하면서 처음 시작할 때와 달리 환경이 바뀌면 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며 참 힘이 들었다는 안성기 씨. 그것이 반면교사가 되어 자신은 첫마음과 태도를 변함없이 지켜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속내를 들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