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은 지난 23일부터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한다.
7월 1일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출입을 막아서다.
중국 당국은 이번 기념식에서 신형 미사일 등을 공개하는 열병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최신 전투기가 등장한다.
지난 12∼13일 톈안먼에서 거행된 예행연습에서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J(젠)-20 5대가 편대를 이뤄 하늘을 날았다.
헬리콥터 29대는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상징하는 숫자 ‘100’을 형상화했다.
J-10 전투기 10대는 창당 기념일인 7월 1일을 가리키는 ‘71’ 모양을 만들었다.
예행연습에는 군악대, 합창단, 국기 호위대, 예포 발사대와 지원인력 등 1만4000여명이 동원됐다.
화려한 외형 외에도 시진핑 국가주석은 공산당의 과거 100년에 대한 해석과 새로운
100년을 위한 좌표를 제시하며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한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하는 중대 연설을 예고했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중국이 건국된 지 올해로 72주년이다.
1921년 공산당이 먼저 출범하고 1949년에야 나라가 탄생했다.
마오쩌둥을 시작으로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에 이어 시진핑 현 주석에 이르기까지 공산당은
14억 인구의 중국을 G2(주요 2개국) 반열에 올려놓았고 이제 세계 최강국 미국의 자리까지 넘본다.
하지만 공산당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과도한 사회 통제와 사회주의 사회임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빈부격차 등은
체제 유지의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은 공산당 100주년을 계기로 대대적인 체제 홍보 등을 통해
내부 결집에 나서는 모양새다. 창당 100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마무리해 공산당 일당독재는 물론
시진핑 1인 장기집권 체제도 공고히 할 방침이다.
© 제공: 세계일보 지난 22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공안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AP연합뉴스
◆공산당 선호하지만 충성도는 ‘글쎄’
중국 공산당이 1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조계지에서 제1차 전국인민대표대회를 열고 붉은 깃발을
올릴 때만 해도 마오쩌둥 등 지역 대표 13명에 당원은 53명에 불과했다.
1차 대표대회 회의 기록이 많지 않아 정확한 창립일을 알 수 없었고, 결국 마오쩌둥이 7월 1일을 창립일로 정했다.
이후 학자들의 고증 등을 거쳐 7월 23일을 확인했지만, 마오쩌둥 결정대로 7월 1일로 굳어졌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공산당은 당원 9191만명의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 인구 15명 중 1명꼴로 공산당원이다. 마을, 학교, 기업 등 중국 사회 모든 부분에 당세포라 불리는
500만개의 조직이 있다. 과거 노동자, 농민 등의 계급으로 대표됐던 공산당은 이제 지식인, 전문가, 기업인이 늘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2012년 공산당 회원 8510만명 중
노동자와 농민 등이 38.3%를 차지했지만 2019년에는 34.8%로 줄었다.
같은 기간 전문·기술·관리 직원의 비율은 31.6%에서 34.4%로 증가했다.
© 제공: 세계일보
공산당 독재체제가 강화하면서 공산당 가입은 개인의 ‘스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당과 정부 관료뿐만 아니라 군과 국영기업, 대학, 병원 등의 주요 직위에 오르려면 당원 자격이 필요하다.
민간 기업 역시 경영활동에 도움을 받기 위해 회사 내 고액 연봉의 ‘당 업무’ 활동가를 뽑거나, 기업 대표나 주요
직위 간부들이 당원으로 이미 가입한 경우도 많다.
2019년 기준 당원의 3분의 1 이상이 40세 미만으로 청년층이 다수다.
하지만 당원 가입 이유는 과거와 차이가 난다.
1991년 공산당 가입 이유를 묻는 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 때문이라고 답했으나,
2012년 조사에서는 54%로 낮아졌다. 2019년 관련 조사에서는 49%가 ‘경력에 도움이 된다’,
34%는 ‘개인적 이득 때문’이라고 답해 공산당이 개탄했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삶이 풍족해지면서 공산당과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애국주의 고취를 위해 공산당 역사 교육을 강조하고,
‘홍색 관광’과 공산당 관련 영화 등을 통해 체제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 제공: 세계일보
시진핑 주석은 최근 당사(黨史) 교육원 대회에서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계기로 전 당원은 당사 학습을
충실히 해 새로운 국면을 열어야 한다”며 “당사를 학습하는 것은 당의 초심과 사명을 실천하는 것으로 당의
정치생활 중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달 초 치러진 대학 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에서도 공산당 창당 관련 문제와 지문이 나왔다.
중국 유명 가수와 배우들이 잇달아 공산당의 혁명정신을 소개하는 영상을 자신의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게시하는 등 공산당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시 주석 장기집권 제체 구축 총력
중국은 내년 10월 열리는 20차 당대회에서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최대 화두다.
시 주석의 임기는 당초 연임이 끝나는 2022년까지였지만, 2018년 헌법 개정으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시 주석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된 뒤 ‘중국 공산당의 핵심’이란 칭호까지 부여받았다.
윌리 람 홍콩중문대 중국연구센터 겸임교수는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은 시 주석이 최소한 2032년까지 10년 더 권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산당은 시 주석 장기집권을 위해 초대 주석 마오쩌둥의 후광효과를 노리거나 과거 역사에서 불리한 내용은
제외하고 유리한 내용만 언급하는 등 역사 미화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18일 중국 상하이에 있는 중국 공산당 제1차 전국대표대회 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주먹을 들고
벽에 쓰인 공산당 입당 선서를 외치고 있다. 상하이=연합뉴스
시 주석은 지난 2월 허베이성 핑산현 시바이포(西柏坡)의 작은 마을 베이좡의 공산당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당의 단합을 강조했다.
시바이포는 마오쩌둥이 1949년 베이징에 입성하기 전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농촌 지휘소가 자리한 곳으로,
공산당의 혁명 성지다. 시 주석은 서한에서 혁명가에 나오는 구절을 따 “단합은 쇠처럼 강하다”고 강조한 뒤
“중국 공산당은 지난 100년간 인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그들을 이끌고 단합했다”고 밝혔다.
공산당 역사에서 시바이포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마오쩌둥 후계자로서의 후광효과를 누리겠다는 포석이다.
시 주석 체제는 또 과거 역사에서 유리한 부분은 미화하고,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은 축소하고 있다.
중국역사연구원은 일반인들을 위한 공산당 역사서 ‘중국 공산당의 짧은 역사’ 개정판에서 시 주석 체제에
불리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나
‘한두 사람의 명성에 국가의 운명을 거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등 발언을 삭제했다.
반면 시 주석을 선견지명이 있는 정치인으로 치켜세울 수 있는
‘만산방박필유주봉(만 개의 산이 드높아도 반드시 주봉이 있다)’ 내용 등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데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대내 빈부격차, 대외 서구와 마찰 과제
중국 공산당의 1당지배 체제가 강화할수록 인권 문제 등을 놓고 서구 국가들과 마찰도 커지고 있다.
다음 달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베이징 시내에 설치된 상징물 앞에서
지난 23일 노인 당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베이징=AP연합뉴스
중국 서북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소수민족 구금과 강제노역 이슈에 이어 홍콩에서 국가보안법을 강행하면서
홍콩의 정치적 자유를 빼앗아 ‘일국양제(1국가 2체제)’가 끝났다는 비판도 거세다.
중국에 대한 반감은 사상 최고 수준으로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해 퓨리서치센터의 14개국 대상 조사 결과 한국과 호주, 영국, 미국 등 9개 나라 국민은 4명 중 3명꼴로 중국에
부정적이었다.
중국은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사회주의 국가임에도 불평등이 가장 큰 문제다.
역설적으로 상속세나 보유세 등이 없는 등 ‘부자들의 천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양극화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2017년 지니계수는 0.467로 0.5에 가까워 매우 높은 수준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중국 베이징 시내의 한 노동자가 공산당 로고가 새겨진 국기 모양의 꽃 장식을 설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다 보니 젊은 층들이 고단한 현실 속에서 꿈과 희망, 욕망을 포기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 아등바등 노력하지 않고 최소한 벌이로만 사는 ‘드러눕는다’는 의미의 ‘탕핑(?平)’족이 늘고 있다.
AFP통신은 탕핑족 배경 분석 기사에서 “커지는 불평등과 치솟는 생활비 탓에 전통적 성공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게 되면서
일부 젊은이는 최소한의 일만 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