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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달콤 씁쓸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라떼
원래 이맘때쯤 볼만한 전시회가 많이 개최되게 마련인데
올해엔 이상하게 그다지 눈에 띄는 전시가 없더라구요
르누아르전이 올초만 해도 12월에 개장할거라며 예정전시에 올라와 있더니
어찌된 일인지 취소(혹은 연기) 되었구요
해서, 긴 겨울 헛헛한 마음을 달래줄 대안책을 찾다가 문화센터 강좌를 알게 되었어요
원래 아이가 들을만한게 없나 살펴보다가 결과적으론 제것만 찾게된.. ㅎㅎ
강좌 주제는 '인상파 회화의 거장' 이고 총 4번의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오늘은 그 처음인 마네와 모네에 관한 수업이었는데
대학교수님이신 강사님의 유쾌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수업이 너무 마음에 들어 기억나는 대로 달콤에도 한번 올려보려해요 ^^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 지라도 한번더 되짚어보며 알려주시니 더 확확 와닿더라구요
그럼, 시작해 볼게요ㅡ
마네와 모네는 둘다 1800년 후반에 인상주의의 서막을 올린 화가들이에요
이름이 비슷해서 간혹 헷갈리기도 하는 이 둘은 모네가 마네보다 8살이 위이지만 당시엔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였죠
섬세하고 꾸며낸듯 그리던 고전주의가 만연하던 당시, 인상주의라는 새로운 화풍을 처음 시도했던건 마네였고
모네는 마네의 그림을 보고 깊은 깨달음을 얻어 빛에 대해 탐미하며 인상주의를 더욱 꽃피워 주었었요
먼저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네부터 알려드릴게요 : 에두아르 마네
마네의 집안은 당시로서도 상당히 부유한 (지금의 법원장 정도 되는 아버지)편이었어요
화가가 되겠다 했을때 부친의 심한 반대에 부딪혀 선원견습생도 되었다가 돌고돌아 다시 화가로 입문할수 있었죠
-풀밭위의 점심-
화가로서 마네가 처음으로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에요
살롱전 자체에서는 낙선하고 낙선한 작품들중 다시 전시회를 연 <낙선전>에 걸리게 되었죠
고전주의만을 알던 당시 상류층에게 그리다 만것같은 이 작품은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혹평과 비판이 끝없이 이어졌어요
마네의 그림이 고전주의와 뚜렷히 구분되었던 특징으로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번째는 스토리가 없다는것 이었고
두번째는 표현 기법의 차이였어요.
당시 미술작품은 교훈적 내용을 담고 있거나 신화의 내용을 드러내는, 이른바 스토리를 담아내기 위한 도구쯤으로 여겨졌었는데
마네의 그림은 아무리 봐도 떠오르는 스토리가 없었던거죠. 심지어는 상류층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던 매춘행위를 비꼬는게 아니냐는 해석이 잇따르며(스스로 찔렸던듯....;;)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미술작품속 누드 여인은 여신에 국한되어 있던 시대라 -그것도 당당해 하는 여신이 아닌 살짝 수줍어 하는 - 현존하는 모델인 벌거벗은 여성이 당당히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를 당혹케 하기 충분했어요 (한마디로 망측하다.... 는 의견)
표현 기법으로서도 '모나리자' 처럼 섬세하게 명암과 원근을 살려가며 그림자를 6:4 혹은 7:3의 짜여진듯한 비율로 그려내던 고전주의와 달리 빛이 비추는 만큼 그대로 희뿌옇게 살결을 처리하고 바지 주름이나 여타 배경들을 몇번의 붓터피로 과감하게 그려낸 기법은 낯설고 거칠고 그리다 만게 아니냐는 비판에 시달렸어요
허나 비판은 그림을 감상하는 부류에서 일었지만 당시의 젊은 화가들에겐 마네의 그림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게 되었죠
* 누드 여인은 마네가 초기에 자주 그렸던 모델이었고 가운데 사람은 마네의 친구, 오른쪽은 여동생의 남편인 매부에요
풀밭위의 점심에 대한 비판이 끝나기도 전에 마네는 다시 올랭피아를 출품하게 돼요
풀밭위의 점심도 구도를 딱히 생각치 않고 16세기 화가였던 라파엘로의 <파리스의 심판>을 그대로 인용했는데(아래,오른쪽)
올랭피아 역시 타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에서 그 구도를 그대로 따왔어요 (아래,왼쪽)
이렇게 나란히 보면 두 작품의 차이가 확연히 보이시죠?
표현기법에서도, 모델들의 태도(아래는 비너스임에도 부끄러워함 - 올랭피아는 목에건 목걸이와 머리의 꽃으로 보아 창녀를 뜻하나 당당해함)에서도 그렇고,
비너스 발아래 인간에게 충실한 개가 그려져 있는 반면 요물, 영물로 알려진 고양이를 그려넣은 것이나
당시 식민지개척시대를 나타내는듯 하녀를 흑인으로 그린것도 이 그림이 주는 많은 의미를 알수 있죠
허나 이 작품 역시,, 거칠고 난폭한 비난을 받습니다...따따블로 ㅠ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피리부는 소년.. 처음 오르세전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때 온몸에 전율이 느껴져서 그자리에 못박힌듯 서 있었어요 ㅎㅎ
이 소년의 얼굴은 위의 두 작품속 누드모델과 동일인물이랍니다 ^^
에밀졸라의 초상입니다
마네의 인상주의가 반향을 일으키며 비판을 받을 당시, 에밀 졸라는 그를 지지하며 응원하는 글을 칼럼에 많이 실었다 해요 ^^
(역시,,, 제가 존경하는 에밀졸라 씨입니다 ㅎㅎ)
그림이 작아 잘 안보이는데 뒤로 보면 일본 기모노를 입은 여인의 그림이 있어요
당시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명암도 무시, 원근법도 무시하면서도 밝은색채를 마음껏 섞어쓴 일본그림은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발코니 라는 작품입니다
마네가 얼마나 밝은그림의 세련미를 나타낼수 있었는가를 알려주는 작품이에요
흑백의 극명한 대비에도 그림이 우중충하지 않고 상당히 세련되었죠
독서 라는 작품이에요
이 작품의 모델인 수잔렌호프는 마네의 아내인데 풍문으론 부유한 아버지의 정부였단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것이 진실인지는...
마네의 동생과 결혼한 여류화가 모리조입니다
모리조는 마네에게 제수씨였지만 둘사이에 묘한 기류가 흘렀다는 뒷이야기가 또 있어요
암튼,, 모리조는 마네의 그림에 많이 등장하는 훌륭한 모델이자 화가입니다
모리조의 딸은 줄리마네이고 르누아르가 그녀를 아주아주 사랑스럽게 그린 <줄리마네의 초상>이 유명하죠
달콤회원님중 bonne님과 그분의 딸 리아를 보며 제가 모리조와 줄리마네 모녀가 연상된다고 했던적이 있어요 ^^
이 그림이 바로 르느아르가 그린 모리조의 딸, 줄리 마네입니다
이 소녀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르누아르에 대해 쓸 기회가 있으면 그때에 할게요 ^^
그림속의 모델이 바로 마네의 친구, 모네입니다
모네는 당시 가난한 화가였는데 부유했던 마네는 모네에게 집도 사주고 배도 사주고 많은 것을 베풀었어요 (모네에게 뿐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죽는날까지-경제적으로 힘들어졌어도- 베풀기를 잘해 주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해요)
너무나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굵은 붓터치 몇번으로 그리고자 하는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표현한 마네,, 정말 볼수록 매력적, 볼매라고 밖엔... ㅋㅋㅋ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마네는 한쪽 다리를 절개한 상태로 휠체어에 앉아 있었어요
생명이 꺼져갈 즈음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에 속하죠
마지막으로 뢰유의 집 이란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미완성이라 그런지 아무리 찾아도 안나오네요 (사진이 급한대로 퍼와서 뒤죽박죽이에요 ^^:)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린게 아니었던 마네는 돈도 떨어지고 병에 걸려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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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모네입니다 : 클로드 모네
모네 역시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죠
'인상주의' 라는 말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게 바로 아래 그림, 해돋이에 의해서 였답니다
이 작품은 '제 1회 무명작가 그림전' 에 출품되었던 그림인데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게 됩니다
모네는 이 작품의 제목을 다소 충동적으로? 인상, 해돋이 라고 정했고
이것을 기자들이 옮겨 쓰면서 인상(impression) 이란 단어를 쓰며 이 회화풍이 '인상주의'라고 명명 되게 돼요 ^^
인상주의는 이렇게 마네에 의해 태어났지만 모네에 의해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된거죠
분석 이전의 눈의 감각을 (이것이 바로 impression, 인상) 십분 활용하여 그려내는 인상주의는 그 후로 이 작품전을 이끌게 내며
무명작가 그림전은 다음해 '제 2회 인상파전' 으로 이름을 바꾸게 됩니다
위) 베네크루 강변에서 / 아래) 초록드레스의 여인 입니다
둘다 모네의 첫번째 부인, 카미유를 모델로 한 그림이에요
위 그림에서 카미유가 안고 있는 작은 포대기는 그들의 첫째 아들 장입니다
부유하게 태어난 마네와 달리 파리 외곽 소도시 잡화상의 아들로 태어난 모네는 경제적 어려음에 의해 다소 힘든 작품 생활을 하게 돼요
위 두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정원의 여인들 이라는 이 작품의 모델 역시 까미유 입니다
여러명의 모델을 쓸수 없었던 모네는 까미유에게 여러벌의 옷을 번갈이 입혀 각각의 위치에 서있게 해서 마치 네명이 함께 있는 듯한 그림을 완성했어요 (고로 위 그림의 네명 모두 동일인 인거죠;; ㅎㅎ)
인상주의 화가들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건 모네의 그림에서도 드러납니다
역시 까미유를 모델로 한 <일본 여인> 이라는 작품이에요
일본식 색채를 쓰면서도 부채만은 프랑스 국기를 모토로 그렸네요
너무나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산책... 까미유와 그들의 아들, 장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모네는 사진기 방식을 활용한(고전주의처럼 섬세하게 표현하는게 아닌 사진을 찍었을때 빛의 방향에 따라 보여지는 그대로를 그림)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기 좋아해서 주로 풍경을 많이 쫓아다니며 그렸어요
아내 까미유를 모델로 했을 당시는 인물화를 주로 많이 그렸지만 까미유가 죽고 나서는 풍경화가 주를 이루게 됩니다
이 그림은 위의 양산을 쓰고 있는 여인을 그리고 10여년이 지나 다시 그린 그림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처음 그림의 모델은 까미유와 장이고 이 그림은 돈만은 과부였던 두번째 부인의 큰딸이 모델이라는 점이에요
이때는 모네도 인기를 끌면서 돈도 제법 벌고 돈많은 부인을 맞이하며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지베르니의 건초더미 연작입니다
모네는 같은 대상을 같은 위치에서 빛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그리길 즐겼어요
이 작품 건초더미를 그리며 이 후로는 오로지 빛만 그리기 시작합니다 (대상은 상관없이 빛이 주 관심사였어요)
마찬가지로 포플러 나무 연작입니다
이 포플러 나무는 원래 베어질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모네가 그걸 알고 나무의 3배 값을 물며 제발 1년만 벌목을 연장해 달라했어요
결국 1년의 시간을 들여 모네는 포플러 나무 그림 그리기에 심취합니다 ㅎㅎ
하루의 시간이 지나며 각각의 시간에 따라 빛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그린 루앙 대성당 연작입니다
보블전쟁 당시 군대 징병을 피하기 위해 런던으로 피신간 모네는 이곳에서 피사로를 만나게 되고 이곳에서 미술관을 돌며 자신들의 화가로서의 미래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보게 됐었어요
그때 이후 런던을 드나들게 되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린 런던 의사당입니다
아이리스가 핀 모네의 정원입니다
말년을 지베르니의 마을 전원주택에서 보내며 평온한 시기를 보냈던 모네의 작품이에요. 작품에서 평온이 느껴지네요 ㅎㅎ
말년의 시기에 그렸던 작품중 유명한 수련 입니다
물이 빛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모네는 물을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일본식 다리.. 역시 말년의 작품입니다
(그림을 찾다 포기했는데 어떤 그림들은 물+빛이 과해져 마치 추상화처럼 보이는 그림들도 있어요)
모네는 평온한 말년을 보냈지만 녹내장으로 인해 거의 실명상태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래도 마네에 비하면 행복한 최후를 맞았다 할수 있겠네요.. ^^
후~ 생각보다 꽤 오래 걸리네요 ㅎㅎ
이렇게 인상파 회화 수업, 첫수업을 마칠게요~~
다음주 이시간에 또 오겠습니다!!
첫댓글 이 글을 통해 모두가 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