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패키징 기술, 반도체 둘러싼 미-중 갈등의 새로운 전선으로 떠올라
O 첨단 패키징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반도체 산업의 중요 변곡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이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음.
-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억제하는 동시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중국의 첨단 기술 발전을 제한하려는 바이든 행정부는 이제 반도체 패키징 공정이라는 새로운 경쟁의 장을 중요시 여기기 시작했음.
- 중국 역시 제재 대상이 아닌 첨단 패키징을 활용하여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첨단 반도체 제조에서 성과를 거두고자 함.
- 아직 최첨단 반도체 제조역량을 갖추지 못한 중국으로서는 미국 정부의 제재 대상이 아닌 첨단 패키징 분야를 활용해 기술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음.
- 반도체를 보호하고 전자 기기에 연결하는 재료로 반도체를 감싸는 작업인 반도체 패키징 분야는 최근까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 중국 등의 아시아 지역으로 아웃소싱되었으며, 미국은 전 세계 패키징 생산 능력의 3%만을 차지함.
- 그러나 이제 첨단 패키징의 중요성이 커짐. 인텔은 경쟁력 회복 전략의 핵심 부분으로 첨단 패키징을 활용하고 있고, 중국은 국내 반도체 생산 능력 확충의 수단으로 보고 있으며, 미국은 반도체 자체 생산을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삼고 있음.
-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이 발효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바이든 행정부는 30억 달러 규모의 국가 첨단 패키징 제조 프로그램에 대한 계획을 발표했음. 목표는 2030년 이전까지 여러 대량 패키징 시설을 만들고 아시아 공급 라인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 치명적인 안보 위험을 줄이는 것임.
- ‘백엔드’ 제조로 간주되는 조립·테스트·패키징 분야는 ‘프론트엔드’ 사업보다 혁신 수준이 낮고 부가가치가 낮아 반도체 분야에서 덜 주목을 받아 왔으나, 첨단 패키징 분야를 통해 반도체들을 연결하고 반도체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되면서 기술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음.
- 중국은 첨단 패키징으로 미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과 경쟁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반도체를 세밀하게 연결하여 컴퓨팅을 위한 시스템을 신속하고 저렴하게 구축할 수 있음. 이 경우 중국은 반도체의 중요한 부분에는 비싸고 수량도 제한적인 최신 반도체 기술을 사용하고, 배터리 관리 및 센서 제어와 등의 기능을 수행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데는 기존의 저렴한 기술을 사용해 전체를 강력한 패키지로 결합할 수 있음.
- 중국은 시진핑 주석이 2015년 발표한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프로그램 등 오래전부터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전략적 우선순위로 삼아왔음. 중국은 전 세계 조립·테스트·패키징 시장의 38%를 점유하고 있는데, 이는 어느 국가보다도 많은 수치임.
- 중국은 이미 세계 3대 조립·테스트 회사인 JCET 그룹(JCET Group)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백엔드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출 규모에서 대만의 ASE 그룹(ASE Group)과 미국의 앰코 테크놀로지(Amkor Technology)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함. 또한 JCET가 싱가포르의 첨단 시설을 인수하고 본사가 있는 장인(Jiangyin)에 첨단 패키징 공장을 건설하는 등 중국 기업들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음.
- 첨단 패키징 분야에 갑자기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AI(인공지능) 애플리케이션에 고전력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임. 실제로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생산에서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라는 패키징 기술의 부족으로 병목 현상을 겪고 있음.
- 엔비디아의 주요 반도체 위탁 제조업체인 대만 TSMC는 올여름 이 병목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패키징 공장에 3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투자자들에게 내년 말까지 CoWoS 용량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음.
- 미국의 마이크론 테크놀로지도 인도에 27억 5,000만 달러 규모의 백엔드 시설을 설립하고 있으며, 인텔은 폴란드에 46억 달러 규모의 조립 및 테스트 공장을 건설하기로 합의하고 말레이시아의 첨단 패키징에 약 70억 달러를 투입하고 있음. 한국의 SK하이닉스는 작년에 미국 내 패키징 시설에 15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음.
- 첨단 패키징 기술에 대한 가장 큰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데이터 센터, AI 가속기, 가전제품용 고성능 반도체임. 첨단 패키징을 사용하는 반도체의 출하량은 향후 18개월 동안 1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스마트폰에 이 기술이 표준이 되면 100배까지 치솟을 수 있음.
- 반도체의 발전이 근본적인 장벽에 부딪힌 시점에서 설계기업과 반도체 업계는 실리콘 한 조각에 더 많은 작은 부품을 집어넣는 대신 동일한 패키지에 여러 개의 반도체를 촘촘히 묶어 제품을 만드는 모듈식 접근 방식의 이점을 선전하고 있음.
- 중국의 SMIC, 지식재산권 리더인 베리실리콘(VeriSilicon), 화웨이(Huawei) 등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음. 이들은 외국의 첨단 프런트엔드 프로세스에 의존하지 않고 첨단 패키징 프로세스를 활용해 성능을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음.
- 미국 상무부는 중국의 조립·테스트·패키징 서비스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하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 쉽게 대체할 수 없고 이를 제재할 경우 공급망에 혼란을 줄 수 있다며 제재를 프런트엔드 제조에 집중하고 있음.
- 아이러니하게도 TSMC와 삼성전자가 애리조나와 텍사스에 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고 해도 자립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이들 공장에서 생산되는 첨단 웨이퍼를 대만 등의 아시아 국가로 옮겨 패키징해야 하기 때문임.
- IBM의 잭 헤르겐로터(Jack Hergenrother) 글로벌 엔터프라이즈 시스템 개발 부문 부사장은 "첨단 패키징이 자금 지원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간과'되고 있다"며, "안전한 공급망을 위해서는 미국의 패키징 용량을 전 세계 패키징 용량의 10~15%까지 끌어올리고, 10년 안에 25%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할당량을 두 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함.
출처: 블룸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