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Aiiis
세상은 원이를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라 불렀다. 숫자 4를 불행과 저주로 여기는 사람들이 들판의 이름 모를 풀때기보다 더 나약하다고 말하는 원이를 보며 그랬다. 세상은 멍청했다. 나는 원이가 하는 말 따위 무엇 하나 어려운 게 없는데 세상은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를 원이의 비정상으로 탓을 돌렸다. 그래도 미워하지 말라고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비겁하게 자신을 지킬 때도 있는 거라고 원이는 울면서 말했다. 나는 우스웠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신을 지켜본 적이 없는 원이가 그렇게 말해서였다.
/ 관계의 첫 페이지
서랍장 구석엔 오래된 바비 인형이 있어요
허름하긴 해도 먼지는 없을 거예요
어젠 악몽에 시달려서
저도 모르게 깨자마자 엄마를 찾았어요
해사하게 웃는 강아지는
언제 봤다고 저를 보면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요
그럴 땐 가슴이 벅차서 놀라기도 해요
옆집 할머니는 저를 탐탁지 않아 하시지만
제철 과일이 들어오면 꼭 몇 개를 나눠주세요
저는 사랑을 하고 있어요
무어라 정의할 순 없지만
바비의 머릿결과 엄마의 품이나
강아지 꼬리와 할머니의 과일을 보면 알 수 있죠
형태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 또한 사랑일 테니
저는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내 사랑은 보답받지 못하겠구나. 온몸을 뒤덮는 열기가 단순히 계절의 것이 아님을 실감했을 때, 네 얼굴이 하나의 파도가 되어 내게 밀려왔을 때 직감할 수 있었다. 사랑임을 자각하자마자 든 생각 치곤 안쓰러웠지만 덕분에 너의 작은 손짓 하나에 가망 없을 '혹시'를 걸어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도 됐으니 이걸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때론 네 그 얼굴이 보기 싫을 정도로 미울 때도 있는 거였다. 네 잘못은 아닌데. 함부로 시작한 외사랑이 어떻게 네 잘못일 수가 있을까. 다만 가끔 네가 모든 걸 다 알면서도 내 마음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 같은 뒤틀린 착각이 피어오를 때도 있었다는 것쯤은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었다.
/ 어설픈 완벽주의자
죽고 싶다. 너는 살고 싶다고 소리치고 싶을 때마다 그렇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저 짧은 두 어절에 어떠한 어조의 변화나 감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흔히들 입버릇으로 말하는 아 배고프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와 같은 정도. 그래서 처음엔 나도 아무렇지 않게 넘겼었다. 너뿐만 아니라 나도, 지나가는 동네 아저씨도 계단에서 넘어진 것이 쪽팔린다던 내 동생도 죽고 싶다는 말은 쉽게 내뱉었으니까. 너도 그랬어야 했으나 슬프게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사라진 지 한 달째, 한층 야위어서 돌아온 네가 웃으며 죽고 싶다고 했을 때 그걸 알았다.
처음에는 화를 냈다. 나한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냐고.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는 것을 왜 진지하게 털어놓지 않았냐고. 웃으라고 한 말이 아닌 걸 알았음에도 너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내가 한심해 화가 났고 마음 편히 울지조차 못하는 너에게 화가 났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됐을 무렵 나는 화를 내는 것을 그만뒀다.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네가 예와 같이 아무런 감정 없이 죽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그전처럼 나도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의 무게가 다름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너 이제 장난으로라도 그런 말 그만해. 듣는 사람 얼마나 피말리는 줄 알아?
더이상 넘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을 때 좀 날을 세워 쏘아 붙인 적이 있었다. 아차 싶어 네 얼굴을 살폈을 땐 또 대책 없는 웃는 낯을 마주 봐야 했다.
이건 쉽게 말해 최종 방어선 같은 느낌이야.
방금 목소리가 좀 떨리지 않았나. 영문 모를 말과 함께 미세한 떨림이 귓가를 울리는 순간 나는 바로 고개를 떨궜다.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제야 나는 내 말에 왜 네가 연신 웃는 얼굴로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감히 마주 볼 수나 있었을까.
여기를 지키지 못하면 뒤엔 아무것도 없어
살고 싶다고 말하지 못해서 죽고 싶다고 말하는 그 얼굴을 어떻게 내가 감히.
/ 인간사 치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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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가끔 썼던 것들이야
소설이지만 거의 일기라고 봐도 될 것 같아ㅎ.ㅎ
모두 좋은 밤 보내~
첫댓글 우와..진짜 너무너무 좋다ㅠㅠ 이런 좋은 글 써줘서 너무 고마워 특히 마지막 글이 난 너무 와닿는다...ㅠㅠ
우울증때문에 죽고싶다는 생각을 많이해서 그런가 다 너무 와닿는다..고마워
마지막 너무좋다
아.. 항상 좋다 정말로... 여시 글은 문장 하나로 책 한 권이 완성되는 느낌이야 자기 전 참 위로가 된다 고마워
와 읽으면서 나중에 사서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ㅠㅠ 글 정말 좋다 여시야 고마워
감동..
세상에 직접 쓴거라고..?! 작가 여시...
와 글 너무 좋아.....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2.09 07:15
두번째 내 취향. 짤도 그렇고 글도 좋다
나 여시 팬할래.. 여샤 책내주라..
글 너무 좋아...
너무 좋다 ... 원이 이야기에 눈물 찔끔..
뭐야,, 너무좋잖아 다 좋아
와 ㅠㅠㅠ책내줘ㅠㅠ
헉 여시야...글이 너무 좋아서 책사려고 검색했는데 어쩐지 아무것도 안나오더라...
헐 원래 있는 책에서 쓴 필사인줄 알았어ㅠㅠㅠ
나 지금 책인줄 알고 도서관에서 찾으려 했음ㅋㅋㅋㅋ
책내줘 제발 너무 좋다 진짜
너무좋다 고마워 진짜 너무 좋아..
와... 너무 좋다
마지막 글 너무 좋다 내 메모장에 저장해야지..
마지막 글 진짜 다 너무 좋다 ㅠㅠㅠㅠㅜ...
여시 부디 글써줘
세상에 책내줘
첫 번째꺼 읽고 검색했는데 안나와서 물어보려 했는데 직접 썼구나. 고마워 좋은 글 써줘서
헐..너무 좋아
...
책 내주세요 자까님!!! 글 넘 잘보고있어유 :)
우와 책인줄 알았어 너무 잘 읽었어!!
첫 글 한참 읽었다... 미쳤다... 여시야 나 원이가 너무 궁금해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2.17 0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