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가가 안도, 금오도, 돌산, 여수인 사람들이 있었다. 엄마가 남면 소리도(연도)로 시집을 온 것이다. 5, 60년대엔 섬에서 섬으로 결혼하는 일들이 흔했기 때문이다.
먼저 시집을 온 사람들이 고향사람과 중매를 하는 일도 있었다. 같은 동네에서 시집 온 사람들이 모임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여름, 겨울 방학 땐 외갓집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서 추억을 만들곤 했다.
필자의 작은 고모는 남면 초포로 시집을 갔다가 지금은 순천으로 가서 기기에서 살고 계신다. 셋째 이모는 우학리로 시집을 가서 사셨다.
믿음으로 앞 못보는 시모거천에 자녀들을 키웠고 장남은 오산리기도원 가까운 곳에서 목회사역을 하고 있다. 노동진 목사, 김동조 장로, 김중심 사모와 함께 교회를 다녔던 막내이모는 성경학교를 보내달라던 꿈을 접고 인천에서 살고 계신다.
직은 집 막내 정명숙 고모는 안도 전주동부교회 원로 강성찬 목사의 부인이 된다. 얼마 전 삼춘 장례식 때 두 분을 뵌 적이 있다. 큰집 누나도 안도로 시집을 가서 살았다. 큰 형수는 돌산 군내에서 시집을 왔다.
남면 서고지 앞 작은 섬 부도로 시집을 온 언니가 중매를 한 것이다. 물론 생활은 부산이나 성남 등 도시에서 살았다. 사진은 돌산 군내 형수가 시집을 오기 전에 살았던 집이 있었던 곳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가르쳐줘서 알게 된 것이다. 오늘은 형수에게 안부전화를 드려보고 싶다.
가족들이 살았던 옛 땅을 밟아보며 기도하는 제목이 있다. 고향의 추억을 잊지 않기와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기를 말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교계소식/25데스크】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 yjjw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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