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혼술
월요일 새벽 호박과 두부에 된장을 넣어 찌개를 끓여 아침을 해결했다. 그 찌개는 이튿날 아침에도 들었다. 수요일 아침엔 감자와 두부를 재료로 찌개를 끓였다. 두부는 월요일 아침에 쓰고 절반을 남겨두었더랬다. 수요일 찌개는 목요일과 금요일 아침까지 먹어야 일주일을 넘기게 된다. 찌개 외에 소박한 밑반찬은 거제로 올 때 아내가 챙겨준 거로 그럭저럭 때를 때우고 있다.
점심은 학교에서 나오는 급식으로 동료들과 어울려 들게 된다. 저녁도 야간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어 교내 급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군대나 회사나 단체 급식이 그렇듯 질리게 된다. 하루 두 끼 급식으로 드니 좀 지겹다. 특히 성장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식단은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많이 쓰는 기름진 재료가 잦다.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나 나물은 적은 편이다.
오월이 가는 마지막 주 수요일이다. 학생들은 정상 일과만 끝내고 모두 일찍 귀가하는 날이었다. 한 달 두 차례 급식소에서 저녁을 차리지 않는 날이다. 해가 제법 길어진 때라 어디로 한 바퀴 산책을 다녀와도 된다. 내가 지내는 동네에서 웬만한 곳은 다녀봐 딱히 산책을 나설 만한 코스도 여의치 않다. 퇴근 후 시간 여유가 많아 방에 가 저녁밥을 손수 지어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수요일 퇴근 후 이웃 학교 친구와 한 자리를 가져볼까 싶었다. 친구는 장유에 집을 두고 통근이 여의치 못해 옥포에 원룸을 얻어 지낸다. 점심 식후 그 친구에게 퇴근 후 연초 삼거리에서 얼굴을 한 번 볼 수 있느냐고 문자를 넣었다. 곧바로 회신이 오길 감기 기운이 있어 접선이 어렵다면서 후일 보자고 했다. 나는 그러자 하면서 몸을 속히 원상 복구시켜 놓으라고 응수했다.
우리는 올봄에 들어 네 번 만났다. 두 번은 옥포에서 다른 동갑내기 둘을 보태 넷이 합석했다. 넷이 만나면 서로는 성장 환경이 다르고 나름대로 주관이 뚜렷해 화제의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건강이나 노후 설계 등 학교 바깥에 관한 내용이 이야깃거리였다. 그렇다고 목소리를 높인 다툼까지야 있을 리 없다. 서로 입장을 헤아려 경청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나와 문자 교신을 나눈 이 친구와 둘이 만나면 말 수가 적고 목소리가 낮아도 된다. 우리는 동향이나 동문이 아니라도 서로 통하는 면이 많았다. 그런데 친구가 몸이 불편하다고 훗날 보자고 해 나만 머쓱해졌다. 사실 나는 지난번 만났을 때 친구가 올 연말에 명예퇴직을 했으면 싶다고 해 그 진의가 궁금했다. 정년까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음만은 편하게 지냈으면 싶을 따름이다.
퇴근하고 원룸으로 들어도 할 일이 없었다. 아침에 남겨둔 찌개가 있었지만 내일 모레 아침거리로 남겨 놓아야 했다. 나는 원룸을 나서 연사 골목으로 나갔다. 연사 삼거리 뒷골목에 분식점 같은 간이식당이 두 곳 있다. 그런데 그 두 곳 다 손님이 잘 찾지 않아 영업실적은 신통하지 못하지 싶다. 문은 열려 있어도 손님은 그리 볼 수 없었다. 나는 그간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연사 삼거리에서 거제대로 횡단보도를 건너 들녘으로 나갔다. 농로를 지나 연초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들녘 무논에는 모내기가 진행 중이었다. 천변 둑길에는 금계국이 피어 화사했다. 연사에서 조금 떨어진 면소재지 연초 삼거리로 갔다. 거기는 식당이 몇 개 되고 농협 마트도 있다. 앞서 언급한 친구와 한 번은 족발로, 한 번은 수육으로 잔을 들며 담소를 나눈 적 있다.
연초 삼거리에 이르러 전번에 친구와 앉았던 국밥집으로 들었다. 계획대로면 둘이여야 하는데 혼자 들렸다. 점심나절 친구에게 문자를 넣은 뜻은 거기서 마주 앉아 저녁을 겸한 맑은 술을 들고 싶어서였다. 주인에게 지난번 함께 왔던 친구는 사정이 있어 혼자 왔노라고 했다. 국밥에 맑은 술도 같이 시켰다. 밥은 남겼어도 술병은 바닥을 보았다. 다시 둑길과 들녘을 걸었다. 19.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