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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방앗간 이야기
가래산 추천 0 조회 159 13.10.09 13:37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시골에서 자라난 나의 유년 시절은 방앗간의 추억이 많이 남아있어

늘 친숙하고 정감어린 대상이랍니다.

 물레방아 관련 사진은 산사모 까페 선경나리님글에서 옮겨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아주 어린시절 아버지께선 말구리 산골에서 청주쪽으로 십리나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오게 되셨지요.

그리고 6.25 난리 중에  태어나고 ... 그 때 물레방아를 인수하시게 되어 4~5년 운영하시다가

디젤화통방아가 들어와 쇠태하게 되자 농사일과 병행하던 방앗간은 접게 되었네요.

아직도 유년시절의 신비한 장난감으로 비춰지던 공구상자엔 판도라 상자 처럼 낯선 물건들이 그득하였어요.

아브라(피대줄에 미끄럼방지를 위해 문지르던 아스팔트 재질)와 볼트, 피대줄, 오일 주유기등등...

장난감이 없던 시절 한 참을 즐길 수 있는 행복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돌확은 시골집에 보관중이며 방앗간에서 옮겨 오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1.2m도 채 되지 못 한 좁은 논뚝길을 4명의 장정이 목도메고 어영차 희차 발마 추어 옮기던 정경이 떠오릅니다.

 

 

그러던 시절이 가고 화통 방아가 운영 되어 가을이면 쌀방아, 6,7월이면 보리방아, 밀방아 빻는 탕탕탕통통통..... 하얀 연기(매연)를

내 지르며 힘차게 돌던 그 방아의 피스턴의 곰배 운동을 보면 참 신기해 하였지요.

 그 매연 조차 일부러 맡기위해 얼쩡 대던 동네 조무라기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오늘 날과 너무나도 다른 생각(소음, 대기환경)과 정서에 세월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나 밀가루 빻던 날은 어머니는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밀가루 출구통의 상태를 살피면서

누룩원료인 밀기울을 받아내고, 통에 다 빻아진 밀가루를 가득차기 전에 회푸대(종이로 된 겹겹의 유지포대)에 옮겨 담게 되면

어느 새 몸 전체가 하얀 가루로 치장을 하게 되는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렇데 빻은 가루는 날 좋은 날 무성골 국수집에 가져가서 마른 국수(국수 누르러 간다고 하지요)로

만들어 봄 철부터 가을까지 일바라지 할 때 새참 국수로, 큰일이 있을 때 잔치 국수로 사용합니다.

 

그 화통 방아는 오늘 날 처럼 떡방아가 일상화 되기 전에 시골에선 설명절 전에

동네 방아 찧고 삯을 받은 대가로 A/S차원에서 무료로 흰 떡가래를 뽑아 주었지요.

우선 동네 떡하는 날을 알리면 집집마다 쌀을 담가 고두밥을 지어 시루째 (식지 않도록 담요로 뒤집어 씌우고...)

지게로 져 날라 방앗간에 도착하면 순서대로 가래떡을 뽑게 됩니다.

동네 꼬마들 잔치날이지요.

물에서 건져낸 흰 떡가래를 잘라내는 대로 받아 먹고 나눠 주고하였답니다.

 

동네마다 간혹 철거 되지 않고 방치되던 물레방아도 있어서 큰 바퀴 바닥판에 올라 타고

빙글 빙글 돌리면서 놀던 개구장이들이  지금은 다 성년이 되거나 노인들이 되고 말았지요.

또 한 민간 방송업자(앰프와 스피커 설치하여 라디오 대행 써비스.... 오늘 날의 유선 방송 원조)의 축전지(바테리)

충전용으로 사용되던 것이 60년대 말까지의  우리 농촌 생활 상이었습니다.

영화나 소설의 "물레방아간"같은 것은 너무 어리던 시절이라 알 수가 없구요.

 

 

진주시 금곡면 두문리의 금곡정미소를 탐방하게 되었습니다.

"앉은 뱅이 밀" 우리 토종 밀가루를 제분하는 곳이 있어 방문하였습니다.

TV방송에 출연한 생활의 달인으로 1942년부터 3대째 이어온 방앗간 이어서 가문의 사업이 된 셈이지요.

 

방앗간 탐방시 안내해 주신 안 주인님!

 

제분기술의 발달로 밀기울이 너무 미세하여 부산물 누룩을 만들기 어려워요.

 

제분의 마지막 관문인 체거름(밀 빻은 것을 공기로 송풍하여 저 둥근 통을 통과한 것이 밀가루가 됩니다)

 

내부 체거름 망을 보여주시느라 옆마구리 판을 열고 닫다가 그만 밀가루 세례를 받았지요.

 

낭창낭창 돌아가는 피대줄, 지금은 전기모터에 의해 동력을 쓰니 과거의 화통 방아소리는 없어요.

 

인터넷쇼핑도하는 우리밀가루( 현미, 국수등 많은 제품 구비)

칼국수도 하고, 수제비도하고 만두도, 부침개도 하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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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0.09 15:40

    첫댓글 물레방아 참 많이도 봐온 물건인데 정확히 그 물레방아가 하는 일을 알진 못했던 것 같아요
    발로 밟아서 하던 디딜방아는 곡식을 찧었다는 것을 금방 알수 있는데
    물레방아는 물이 떨어지고 그 힘에 뭔가가 되는 것 같기는 한데..그것을 모르겠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물레방앗간에서 시골 총각들이 누군가를 기다렸거나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 정도..ㅎㅎㅎ
    소설책이나 영화에서요..

    직접 이런 전통적인 맥락을 이어가시는 분들께 다녀오셨다니 전통에 대하여
    관심이 정말 많으십니다
    잊혀져 가는 것들 향수를 가지고 오셔서 올려주심에 감사히 읽었습니다
    한글날 휴일이라서 조용합니다. 시내도 아파트 촌도..ㅎㅎ..

  • 작성자 13.10.09 21:08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과 나도향의 소설 물레방아가 대표적인 물레방아간의 밤의 역사가 등장하는 소설이지요.
    그러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인지는 나중에 성장하고 나서 알았지요.

  • 13.10.09 19:41

    가래산님이 내얘기를 쓴거 같아요
    우리아버지는 큰아버지와 일본제 구보더 5마력짜이 통통방아를 사서 이동네 저동네 이동해가며 벼를 찧었어요
    나도 초등 3학년때부터 학교갔다오면 학고질은 (쌀받는)내담당 입니다
    5회정도 내리면 흰쌀이 되죠, 기운이 달려 쌀을 엎지르기도 하고 학고가 넘치기도하고 개고생 했어요
    방아의소품도 다 압니다 나는 어려서 손잡이로 빈 발동기를 살리고 피대도 잘 끼웁니다
    밀가루 빻는 방앗간은 등넘어 동네에 큰 방아간이 있어서 어머니하고 밀을 지게에지고가서 빻았고요
    지금은 영농조합을 묶어 전기장치로 방앗간을 운영 합니다

  • 13.10.09 19:48

    벼를 빽자루에 담아 지게차를 이용하고 쌀받는곳엔 자동 재봉틀을 이용 콤베아벨트를 타고 차에 실리죠
    안산시 중고등 학교 유치원등에 납품을 한답니다
    오늘 벼를 첫 수확해서 건조장으로 옮기고 내일부터 수매를 한답니다
    금년엔 벼가 대풍입니다,, 나는 지금은 일은 안하고 회계 담당을 하고 있지요..
    한줄 한줄이 내겐 지난 추억 입니다
    봄에는 못자리도 육묘장에서 육만장을 생산해 냅니다, 가이 짐작이 되십니까?

  • 작성자 13.10.09 20:52

    그래요, 우리나이 정도가 되니까 정서를 공유할 수 가 있어 반갑습니다.
    방아 찧는 날은 고요하고, 적막한 시골 생활에 활력을 넣는 하루가 되고
    방아간이 있는 주막거리는 오가는 사람들과 막걸리 잔(안주는 김치보시기)을
    기울이는 사람사는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 작성자 13.10.09 20:56

    벗겨진 피대 거는 것도 기술이지요.
    순식간에 제 궤도에 올려 회전시키는 ...ㅎㅎㅎㅎㅎㅎㅎ

  • 13.10.09 21:44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ㅎㅎㅎ..두분의 말씀이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지만
    시큰형님께서 아주 커다란 방아간을 했었는데..그풍경이 조금 떠오를뿐입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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