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화가 지속되는 방향이 서양처럼 도시 스프롤(Urban Sprawl)의 수평팽창을 하지 않고 동양은 대부분 도심 고층 고밀화를 가속하면서 도시 체적을 높여 갔다. 이러한 고층 아파트군 건설이 우리나라에서도 고밀화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도시화를 나름 토지를 집약적으로 쓰는 방향으로 진행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도시 외 지역을 최소한으로 침범하였다는 긍정적인 결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민간에서 주택공급을 주도하게 되면서 공공성이 저하되었다. 지역을 가로지르는 가로가 대부분 아파트 단지 내 도로로 사도화되어, 가로를 향해 필지별로 나뉘어져 있던 도시조직을 덩어리지게 했다. 공공영역이 단지 내로 침투하지 못하는 바람에 서울은 점점 걷기 힘든 도시가 되었다. 임대주택단지가 근처에 들어서기라도 하면 학교로 가기 위한 지름길이 ‘사도’에 있는 경우, 임대주택단지 거주 학생들은 가로막히는 뉴스도 종종 듣는다.
단지가 도심에 있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손쉬운 기반시설 조성으로 인하여 도시는 손쉽게 밀도와 기반시설 설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도시공간의 상당부분이 사유화되어 공공의 틀(public urban frame)의 밀도가 허술해진다. 도심 내 고립되는 섬(island)과 같은 외부인 출입 제한 주택지(gated community)가 도시에 많이 형성되면 형성될수록 사회간 단절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도심 내에서는 필지별 개발이 원칙이 되어야 하며, 단지형 개발을 할 때는 지반층(Ground Level)을 최소한 보행에는 열어 주어 폐쇄형 도시조직이 양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미 널리 알려진 미국 뉴욕의 POPS(Privately Owned Public Space, 사적소유의 공공공간)는 폐쇄형 도심블록 양산을 막는데 적잖은 역할을 하여 뉴욕 맨하튼의 가로가 여전히 활기차도록 유도하였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본래 도심에 단일주거용도의 단지형 아파트를 전후복구시대 이후로는 많은 사회적 문제로 인해 도입하지 않고 있다. 또한 도심 재개발로 인하여 대규모 단지를 이루더라도 1층 지반층에 공공보행이 끊임없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은 개발의 ‘기본’이다.
스웨덴 말뫼 Bo01주거단지 내 공유공간. 아이들이 이웃 아이들과 함께 자유롭게 뛰어 놀 수 있다.(좌) 뉴욕 맨하튼 건물 사이사이 사유지이지만 열린 공공공간(우)
암스테르담 퓨넨파트(Funenpark) 주거단지 내 열린 공원. 바로 옆 학교 학생들과 거주민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뛰어놀 수 있는 어울림의 공간이다.(좌) 지반층 활성화가 목표인 로테르담 베인하벤아일랜드(Wijnhaveneiland)의 가로 모습.(우)
주거공간이 안전하려면
모두가 바라보는 공공공간을 품어야 한다.
또한, 단지형으로 개발하더라도 하나의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마스터플래너와의 협업 아래 다수의 건축가들의 작업으로 계획을 하기 때문에 도시조직의 다양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대규모 개발을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으며, 다양한 주체 및 건축가가 참여하기에 대규모 개발에 따른 도시경관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다.
다양한 주거건축유형이 공존하는 유럽의 주거단지들.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①로테르담 베인하벤아일랜드(Wijnhaveneiland) 고층고밀 도심재개발. 저층은 기존 높이를 따르되, 타워의 높이는 제약이 없는 마스터플랜을 KCAP가 마련하고, 각 필지별 개별 개발자(developer)와 건축가가 각각 점진적으로 들어섰다. ②로테르담 뮐러피어 젤프바우엔(Zelbowen, 자조주택단지) 주거단지. KCAP가 마스터플랜을 하였으며, 붉은색 벽돌로 통일하되, 각 주호가 각기 다른 건축가와 함께 작업하였다. ③파리 파크 클리시 바티뇰(Parc Clichy-Batignolles) 단지. 한 땀 한 땀 디자인된 아파트 주동 건축의 다양함과 열린 공원이 고층 고밀이지만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고 있다. ④독일 슈트트가르트에 있는 킬스베르크회헤(Killesberghöhe)주거단지. 하얀색으로 색상을 통일하였으나 건축물은 각각 다른 건축가에 의해 디자인되었다.
또한, 사회 안전망을 위해 오히려 소셜믹스를 지향한다. 지난 칼럼에 언급한 암스테르담 혁신주거인 물 위에 떠 있는 슬라위스하위스(Sluishuis)는 얼핏 보면 고급주거 같지만 암스테르담의 임대 30%를 포함해야 하는 주택 정책을 그대로 지킨 소셜믹스 아파트이다.
대규모 개발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연한 프레임워크를 마련하여 점진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독일의 하펜시티의 경우, 주거와 비주거의 혼합은 물론, 다양한 주택양식 및 개발주체로 함께 이루어 가는 도시를 완성하는 중이다.
프로그램, 계층 및 주체의 혼합은 건강한 도시공간을 영위하게 한다. 암스테르담에 최근 지어진 혁신적인 디자인의 슬라위스하위스(Sluishuis)는 배타적인 고급주택이 아닌 임대주택이 섞인 ‘소셜믹스’ 주거이다.(좌) 하펜시티 마스터플랜은 주택 양식(임대/분양/사회적), 개발주체 등의 혼합을 밑바탕으로 한다.(우)
마지막 칼럼을 마무리하며 외국의 사례를 또 언급하게 되어 아쉽지만 실재하는 현실을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혼합의 결정체였던 우리의 도시공간은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경계가 모호했기에 창의적이었다. 이제 '서울형 도시공간'을 위한 단지형 아파트, 그리고 현재 도시 곳곳에 파고들고 있는 필지형 소규모 공동주택(다세대, 공유주택, 사회주택 등)의 도시계획 상 재발견이 필요하다.
이미 양적 성장에 의해 희생된 우리 도시공간이 점점 더 다양성을 잃는 것은 우리 도시 경쟁력 손실에도 크나큰 영향이 있다. 특히 아파트 단지 내 ‘사적소유 공도(Privately owned public street)’가 절실하다. 1층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것은 적대적인 것이 아니다. 함께 사는 도시공간에 대한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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