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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1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안면근육에 마비증상이 오고 얼굴 왼쪽이 전제적으로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날 정도로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고통이 우리 주님의 십자가의 그 고통과 견줄 수 있겠나이까?
어제는 참기 힘들어 하노이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리고 절대 무리는 금물이라고 하네요.
묵상도 해야 하고 설교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하지 말고 무조건 쉬라고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하감하옵시고 주의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내 안에 감추인 죄를 주님의 보혈로 씻어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자 되기 원합니다.
날 주의 은혜로 장악하여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행 17:1-15
제목 :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더 간절하게 받은 것처럼, 베뢰아 사람들보다 내가 더 간절하게 받기를 원합니다.
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불량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하게 하여 야손의 집에 침입하여 그들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 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15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떠나니라.
* 나의 묵상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떠나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 유대인의 회당에서 3주에 걸쳐 안식일마다 성경을 가르쳤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에 대해서 자세하게 풀어 설명하였다.
그러고 나서 내가 여러분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바울의 말을 듣던 사람들 중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많은 헬라인들과 여러 귀부인들이 이 복음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것에 대하여 시기가 나서 장터에 있는 불량배들을 모아 폭동을 일으켜서 성이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군중들 앞으로 끌어내려고 야손의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발견하지 못하자 야손과 다른 형제 몇 사람을 관원들에게 가서 큰 소리를 지르며 말하였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들이 이곳에도 나타났소. 그런데 야손이 그 자들을 자기 집으로 맞아들였소. 그들은 모두 가이사의 법을 어겨가면서 예수라고 하는 다른 왕이 있다고 말을 하고 있소. 그것은 엄연히 황제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이 아니오?” 라고 말이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관원들은 이 말을 듣고는 적이 당황하여 웅성거렸다.
하지만 관원들은 야손과 다른 몇 형제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었다.
그날 밤에 성도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었고 두 사람은 베뢰아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거기서도 말씀을 가르쳤는데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말씀을 더 잘 받았다.
이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운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말씀을 받아들일 때도 간절한 마음,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았으며 또 말씀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과연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기 위하여 날마다 성경을 연구하기도 하였다.
이 베뢰아의 사람들 중에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고, 헬라의 귀부인들이나 남자들도 많이 믿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베뢰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알고 그곳에까지 쫓아와서 사람들을 선동하여 소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믿는 성도들이 바울과 함께 바다의 항구로 가서 바울을 아덴으로 전송하였다.
한편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가지 않고 베뢰아에 머물러 있었는데 바울이 아덴으로 출발하면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 빨리 보내줄 것을 전송하러 나온 성도들에게 부탁하였다.
바울과 실라 그리고 디모데는 빌립보에서 나와 데살로니가에 도착한다.
그곳 회당에서 3주 동안 안식일에 성경을 가르쳤는데 주의 복음을 자세히 풀어 가르쳤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에 대해서 가르치고 그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이에 대하여 데살로니가의 교회 곧 (살전 2:1-16)에 쓴 편지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데살로니가에 가기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멸시를 받았다.
여러분에게 갔을 때 역시 우리는 사람들에게 대적을 받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셨다.
우리가 전하는 말은 거짓말도 아니고 악한 생각을 품지도 않았으며 여러분을 속이려고 하는 말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보다는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한다.
우리는 결코 여러분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해서 여러분의 마음을 사거나 혹은 복음을 전해서 돈을 바란다든지, 아니면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거짓을 행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증거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결단코 여러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행한 적이 없다.
우리는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했으며, 또한 여러분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다.
우리가 이처럼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우리의 복음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것이다.
과연 복음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한 이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이 여러분과 같이 믿는 자들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한다.
데살로니가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유대에 있는 주님의 교회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왜냐하면 저들은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았고,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동족에게 동일한 핍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주 되신 예수님과 그의 선지자들을 죽였고 또한 우리를 쫓아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원수가 되었다.
그들의 패역은 우리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 받게 하는 것을 못하도록 방해하고 금하여 자기들의 죄만 더 크게 채울 뿐이었다.
그것은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내렸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 동안 전한 복음이 결실을 맺어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모진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간직하여 그들이 생명으로 살아갔던 결과일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야손이 나온다.
그는 바울 일행을 그의 집으로 맞아서 거처로 제공한 것 같다.
그리하여 유대인의 시기를 받아 바울을 도와주었다는 명목으로 핍박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에 굴하지 않고 그들은 믿음을 지켰던 것이다.
바울과 같이 직접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이처럼 옆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돕는 이들에게도 주님께서 부어주실 은혜야 두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말씀을 잘 받는 이들이 소개된다.
이름하여 베뢰아 사람들이다.
그들은 마음도 더 너그럽고 고상하여서 말씀을 받되 간절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울로부터 들은 복음이 진짜 그런가 하여 성경을 날마다 연구하였다.
물론 사람들의 마음 밭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복음을 더 잘 받기도 하고 덜 받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이 복음이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
이것이 바로 진리요 복음이며 이 복음을 통해서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좀전에 살펴본 데살로니가전서 2장의 내용처럼 바울은 복음을 받은 이들이 그저 이 땅의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을 보는 자리에까지 나아갈 때 그 생명은 가장 확실한 것이 된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나는 예수 믿고 땅에서 잘 되면 그만인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예수 믿어서 땅에서 잘 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가 계획하고 생각하는 것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또 간구하였다.
그러다가 하나씩 얻기도 하였지만, 나는 그 이상의 뜻을 알지 못하였다.
따라서 예수를 잘 믿는 신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진짜 신앙으로 착각하였다.
이런 나의 신앙을 완전히 바꿔준 것이 복음이다.
오늘 데살로니가에 있는 성도들이나 베뢰아에 있는 성도들이나 이들의 신앙관을 바꿔준 것은 곧 바울이 전한 복음에 근거한다.
땅에 사는 유대인들은 철저히 땅의 것에 마음을 쏟아 그것과 타협하고 그것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하는 신앙이다.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잡기 위하여 야손의 집에 들이닥친다.
그런데 그 집에서도 바울을 찾지 못하자 야손과 함께 했던 몇몇 형제들을 관원들에게 고소하면서 하는 말이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와서도 소동을 일으킨다. 이 사람들은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는 자들이며 가이사 황제 말고 또 다른 임금이 있다 하는데 그 이름이 예수라고 한다.’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이들 유대인들은 이처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앞장섰던 자들이다.
(요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ㄴ역하는 것이니이다.
(요 19:15) 그들(유대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렇게 행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요 16:2-3)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내가 들은 복음이 나는 결코 가짜나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은 이 땅에서 듣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는 것이어야만 한다.
내가 비록 이 땅에서 목숨을 빼앗기는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면 그것이 바로 복음이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누구든지 가야한다.
그런데 그런 부르심이 있기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 나라를 날마다 살아야 하기에, 그 나라를 매일 사는 그것이 곧 복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말씀묵상의 능력이다.
말씀묵상은 하나님과의 교제 그 자체이다.
존 오웬의 말을 인용한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복음으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지난 수요일부터 왼쪽 안면부위가 마비가 오고 왼쪽 눈과 광대뼈 그리고 치아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참다가 주일 지나고 어제 하노이에 있는 병원에 진료를 갔다.
증상을 듣더니 대상포진 증상이란다.
아직 수포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며칠 내로 수포가 발생할 거라면서 수포가 나오면 통증이 좀 가라앉을 것이란다.
그러면서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제를 처방해 주어 받아왔다.
그리고 당부하는 것은 몸을 무리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면서 설교준비나 설교하는 것은 일단 중지하라고 한다.
하여 말씀묵상 역시 당분간 쉬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씀묵상은 나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할 수만 있으면 이어가리라 마음을 먹는다.
나 비록 이러한 고난 가운데 있지만, 오늘도 일어나서 주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것은 육신으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내 영이 주의 영광을 보므로 기뻐 춤추기 위함이다.
주님을 사모하는 그 마음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베뢰아 사람들이 더 간절하고 크다고 했는데, 오늘 나의 그 마음이 베뢰아 사람들보다 더 크길 소망한다.
그래서 내 안에 오직 예수로 가득 채워지며 아버지의 영광의 빛으로 감싸지길 원한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육신으로는 고통의 아픔을 감당하기가 힘이 들지만, 말씀묵상을 통하여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으로 땅의 고통을 넉넉히 삼킬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순간순간 나를 향한 연민으로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육신적인 소망이 보이지 않아 그저 고개만 숙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고 말씀 앞으로 나아가 나 자신을 말씀의 빛 앞에 완전히 발가벗기니 오히려 내가 숨을 쉴 수 있나이다.
나 자신을 가리려고 여기저기 갖다 붙인 무화과 옷은 나의 수치심을 더욱 치솟게 할 뿐입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는 마음이나,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고 했던 나의 추한 무화과 옷을 찢어 버리나이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가죽옷, 보혈의 옷을 덧입기 원하오니 오늘도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하게 하소서.
그리고 이 시간 주의 영광의 빛으로 나를 감싸주소서.
나의 죄로 인하여 죽기에만 합당하오니 오늘도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진정 주님을 위하여 이 한 몸 죽게 하옵소서.
주님을 떠나 도망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 죽는 자리에도 능히 갈 수 있는 주의 종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나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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