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460〉
■ 완행열차 (허영자, 1938~)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 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 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상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1995년 시집 <기타를 치는 집시의 노래> (미래문화사)
*대도시에 사는 우리에게는 지하철이나 국철 같은 전철은 수시로 이용하지만, 열차를 이용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최근에는 속도 빠른 급행열차나 KTX가 주류다 보니, 느린 완행열차를 보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철도 노선마다 대부분 완행열차라는 노선 자체가 폐지되고, 관광 등의 목적을 위해 지역별 부분적으로 완행열차를 운행하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우리 세대에게눈 추억을 가득 담고, 작은 간이역마다 정차하며 느리게 달리는 완행열차를 탈 기회가 이젠 없을 것으로 보이는군요.
이 詩는 급행열차를 놓치고 완행열차를 타고 나서 새롭게 느끼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간결하면서 정갈하게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어느 가을날, 원치 않던 완행열차를 탄 덕분에 급행열차로는 만나지 못했을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도 만나고 노란 들국화도 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빨리 성과를 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숨 막히는 현대사회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새롭게 깨닫고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낮춰서 가끔 길가의 노란 들국화를 보기도 하며 소중한 존재를 만나 사랑하기도 하면서,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삶의 기쁨을 음미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이죠.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