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095) - 10년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상처
곳곳에 꽃들이 흐드러지고 초록 나뭇잎이 생기를 발하는 등 온 누리에 봄기운이 완연하다. 모두가 활기 충만하여라.
산책길에 활짝 핀 꽃무리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어느 시인의 표현이 우리를 향한 듯 이처럼 화려한 4월을 맞는 한국사회는 왜 활짝 웃지 못할까. 공동체에게서 앗아간 웃음을 되찾는 4월이 그립다. 이를 확인하듯 우리 가족은 지난 주말에 고향을 찾아 가문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친목행사를 가졌다. 모임에서 새긴 메시지의 제목은 ‘가문의 긍지와 품격을 잇자.’ 여러분도 나름의 긍지와 품격을 가꾸소서.
고향을 찾아 화목과 우애를 다진 가족들
엊그제(4월 16일)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였다. 10년 전 이날 승객과 승무원 481명을 태운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팽목항 앞바다에서 침몰해 172명만 구조되고 304명은 그대로 수장, 5명은 시신도 찾지 못한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날이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도 우리 모두는 날벼락의 희생자들에게 얼굴을 들지 못하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가.
세월호 침몰당시 나는 한국과 일본의 동호인들과 함께 한국일주 걷기행사로 동해에서 정동진에 이르는 동해안걷기 중이었다. 사고당시의 기록, ‘망상해수욕장에서 국도로 접어들어 20여분 걸으니 강릉시 옥계면에 들어선다. 옥계항의 000식당이 점심장소, 11시 반에 도착하여 방에 들어가니 TV에서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진도 앞 바다에서 암초와 충돌하여 침몰중이라는 뉴스가 전해진다. 아직 정확한 인명피해가 파악되지 않은 듯, 사고가 난지 여러 시간이 지났는데 구조인원이 확인되지 않아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침에 출발한 동해시의 시정구호에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를 구현한다는 내용을 인상 깊게 보았는데 이처럼 안전을 위협하는 참사가 발생하니 남의 일 같지 않다.’
참사가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서도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사회적 재난도 되풀이되고 있다. 세월호참사 이후에도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 지난해까지 170여 건의 크고 작은 재난이 발생해 약 700명이 숨졌다. 언제 또 예기치 않은 대형사고와 마주칠지 불안한 나날,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반복되는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구축하자.
10주기를 맞는 날, TV프로그램을 살피니 오후 3시에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억식’ 중계방송이 눈에 띤다. 그 시간에 있는 학습프로그램 도중 집에 돌아와 TV 앞에 앉으니 안산시에서 거행되는 추모행사가 이미 진행 중,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와 찬조출연 중인 배우가 사고 당시 숨진 안산 단원고등학교 남녀희생자 250명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고 있다. 아! 미처 피지 못하고 스러져 간 넋들이 성명 3자의 부름으로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을 적시누나. 부디 하늘의 평화와 안식을 누리시라.
세월호참사 10주기 기억식 화면
추모사 중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말이 마음에 닿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압니다. 그 대신 나를 보내달라고 울부짖어 본 사람은 압니다. 대부분의 아픔과 그리움은 세월 앞에서 희미해지기 마련이지만 아주 드물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사연, 그는 세월호 사건 한 해 전에 28세 된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었고 그런 김 지사의 추도사를 듣던 유가족은 물론 행사참가자들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네. 공직(국무조정실장)에 있던 그가 사고 당시 해외 순방 후 귀국하던 국무총리에게 서울공항으로 오지 말고 팽목항에서 가까운 무안공항에 내려 현장을 찾도록 진언했다는 내용도 듣기 좋았다. 무릇 모든 이들이 맡은 바 책무를 제대로 감당하는 풍토가 자리 잡기를 기대하며.
* 걷기행사를 마치고 광주의 집에 돌아온 일주일 후와 다음해 세월호 참사1주기를 맞아 사고 지점에서 가까운 진도를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현장의 분위기를 살폈다. 그때의 기록,
1. 진도에서 스러진 꽃, 거룩하게 피소서
지난 4월, 부산에서 동해안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한 달여 걷는 동안 벚꽃, 유채, 진달래, 복사꽃, 철쭉 등이 화사하게 핀 꽃들의 향연에 흠뻑 빠지는 행운을 덤으로 얻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화사하게 피는 꽃들을 시샘하듯 남녘 바다 진도군 조도면 맹골 해역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차가운 바닷물에 잠기며 미처 피지 못한 봉오리로 스러져 갔다. 천진난만한 동심을 다독여야 할 어린이날, 못다 핀 꽃들의 영혼을 위무하러 진도에 다녀왔다. 오전 9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진도에 도착하니 정오가 가깝다. 터미널에서2km 쯤 떨어진 진도실내체육관으로 올라가는 길가의 가로수에 노란 리본들이 달려 있다. 강당에 들어서니 바닥의 가족들 잠자리에는 피곤한 몸을 눕힌 이들이 여럿 보이고 주변으로는 생필품지원센터, 응급환자진료소, 가족지원상담실, 한의진료소, 휴대폰충전소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정면 중앙의 대형 TV화면에는 팽목 항의 구조현장이 화면에 비쳐지고 출입구 통로에는 이날 인양한 시신의 인상착의가 적힌 종이들이 게시되어 있다.
실내체육관에서 팽목 항까지 진도군이 마련한 셔틀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20분 넘게 달려서 팽목항에 이르니 넓은 포구에 차량들이 빈틈없이 들어서고 배들이 드나드는 바다 쪽에 이르는 500m 좁은 통로에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경찰관에게 침몰현장이 어디인지 물으니 이곳에서 배로 한 시간 쯤 가야 한다며 먼 바다 쪽을 손으로 가리킨다.
바다를 향하여 차려진 젯상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아직 귀환하지 못한 실종자들과 미처 피지 못한 체 스러진 넋들을 위한 염불과 기도, 설법들이 펼쳐진다. 나이든 세대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잘못을 참회하며 기독교감리회가 마련한 기도처에 들어가 머리를 숙였다. '하나님이여, 턱없이 부족한 저희들을 준엄하게 꾸짖고 불민함을 용서하소서'
진도향토문화회관에 합동분향소가 있다. 옷깃을 여미며 국화 한 송이 바치고 향촉으로 분향 한 후 방명록에 이렇게 적었다. '못다 핀 꽃봉오리들이여, 님들의 귀중한 희생으로 우리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부디 하늘에서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팽목항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승려들
2. 멈춰버린 시간, 잃어버린 세월
-세월호참사 1주기에 즈음하여
오늘로 세월호참사 1주기다. 그 일을 겪은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한다고 다짐하였건만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요동친다. 세월호 1년을 돌아보며 한 언론은 '세월호 1년••• 아직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설 제목을 달았다. 아침 일찍 가까운 시외버스정류장에서 출발하는 진도행 버스에 올랐다. 진도터미널에 도착하니 8시가 가깝다. 군내 버스로 봄 풍광이 아름다운 시골길을 달려 사고해역과 가까운 팽목항에 내리니 오전 9시, 곧바로 사고해역으로 유가족을 싣고 떠나는 배가 출항한다.
유족들을 태우고 사고해역으로 향하는 배
세월호 이후 전국적인 관심지역이 된 팽목항은 유가족들이 오후 1시에 열기로 한 '세월호 참사 1년 팽목항 사고해역 인양촉구 위령제' 준비로 부산한 편, 수많은 언론사들의 취재열기가 뜨겁고 방송사의 중계차량도 여럿이다. 광주의 한 일간지 기자가 다가와 어디서 왔으며 돌아보는 소감은 어떤지 묻는다. ‘작년 5월에 다녀갔는데 1주기를 맞아 다시 찾았다, 채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이다, 아픔을 같이하는 공간의 여러 모습들을 접할 수 있어 위로가 된다’고 말하였다. 세월호 1주기를 맞아 쓴 시 '멈춰버린 시간, 잃어버린 세월'의 플래카드와 방파제에 설치된 하늘나라 우체통의 작품설명문에 적힌 구원과 새 생명을 향한 열망, 떠난 자와 남은 자의 소통의 끈, 기억과 눈물의 형상화 등을 살펴보면서.
방파제 쪽을 돌아 본 후 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때마침 검은 색 양복에 노란 마크를 단 백여 명의 추모대열이 들어선다. 한 시간 반가량 팽목항에 머물다 진도로 나오려니 버스 시간이 안 맞는다. 진도방향 도로로 한 시간여 걷다가 읍내 쪽으로 가는 차량을 향해 손을 드니 두 세차 만에 하나가 선다. 운전자는 서울에서 어제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중이라는 젊은이, 가는 길이니 광주까지 동행해도 좋다는 호의가 고맙다. 직장에 다니는데 휴가를 이용하여 숙제처럼 마음에 남은 팽목항을 찾은 것이라고. 목포를 지나 나주에 이르니 점심시간이다. 향토음식으로 유명한 곰탕을 든 후 그는 서울로, 나는 광주로 갈라섰다. 아들 또래의 젊은이가 먼 곳까지 귀한 걸음 해주어서 고맙다고 치하하니 세태에 무심하다고 여긴 어른 세대의 발걸음이 감동을 준다고 말하는 뜻밖의 동행이 기쁘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이의 발이여.'(로마서 10장 15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