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책과 지성] 인생은 결국 혼자 치르는 전쟁이다…소동파가 남긴 미학
출처 매일경제 : https://www.mk.co.kr/opinion/columnists/view/2022/07/603790/
소동파 (1036~1106)
"얻을 수 없음을 안다면 여운은 슬픈 바람에 실려 보내리"
유배지에서 폐허의 미학을 완성한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문득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소동파의 시가 생각났다.
"노승은 이미 죽어 사리탑이 새로 섰고/ 벽은 허물어져 글씨는 간 데 없네/ 기구했던 지난날을 아직 기억하는가/ 길이 멀어 우리는 지칠 대로 지치고/ 나귀도 절뚝이며 울어댔었지."
혹시 폐사지에 가 본 적이 있는가. 한때는 융성했었으나 이제는 그 흔적만 남아 한때의 영광을 증거하고 있는 곳 말이다. 기둥만 남은 건물터, 덩그러니 남아 있는 부도탑, 쓰러져 있는 석상 등이 뭐라 설명하기 힘든 허무를 전해준다.
중국 북송을 대표하는 시인 소동파는 1037년 중국 쓰촨성 메이산에서 출생했다. 소식(蘇軾)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22세 때 과거시험에서 진사에 급제했다. 첫 관직으로 궁정의 사무를 담당했는데 이때 급진적이던 왕안석(王安石)과 정치적 의견 차이로 대립하게 된다. 이후 실세였던 왕안석에게 밀려 한직을 떠돈다. 지방을 떠도는 삶이 고달프기는 했지만 문학적 재능이 꽃을 피우는 데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소동파는 65세로 장쑤성 창저우(常州)에서 사망할 때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유배생활로 보낸다.
"하루살이 목숨을 하늘과 땅에 맡기니/ 아득히 푸른 바다에 뜬 좁쌀 한 알 같구나/ 나의 생이 순간임을 슬퍼하고/ 장강(長江)의 무궁함을 부러워하노라/ 하늘을 나는 신선 만나 즐겁게 노닐고/ 밝은 달 안고서 오래 살다 가고 싶지만/ 얻을 수 없음을 아니/ 여운을 슬픈 바람에 실려 보내리."('전(前)적벽부' 부분)
'적벽부'는 황저우에서 유배 시절에 쓴 시로 가을에 지은 것을 '전(前)적벽부', 겨울에 지은 것을 '후(後)적벽부'라 한다.
유배지를 떠돌던 소동파는 일찍이 명예와 부로 대변되는 현실의 허망함을 깨우쳤다. 폐허의 시학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가 노래한 폐허는 세상만물의 본성이다. 어찌 영원한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세상이 어차피 폐허를 향해 간다는 것을 너무나 일찍 알아버린 소동파. 그가 폐허를 일찍 알아버린 덕에 우리는 그의 '미학'을 즐길 수 있다.
인생은 본질적으로 쓸쓸하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나의 모든 아픔은 나 혼자 치러야 하는 전쟁이다. 생로병사 번뇌를 넘어서기 위해 출가한 석가모니가 위대한 이유다. 그는 고독이라는 자기의 우주 안에서 평안을 찾은 것이다.
생로병사와 고독은 인류에게 선물이기도 하다. 만약 인생이 환희와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어떤 종교도, 어떤 철학도, 어떤 문학작품도 예술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소동파의 시들을 찾아 읽으며 존재의 고독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는다.
사실 가장 멋있는 사람은 '잘 혼자인 사람'이다. 집단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찾는 사람들은 집단이 사라지면 좌표를 잃는다. 하지만 잘 혼자인 사람은 그렇지 않다. 자기가 곧 좌표다. 존재하는 일 그것은 쓸쓸함과 친해지는 일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praha@mk.co.kr)
빛viit명상
태어날 때 받고 나오는 세 가지의 사실
매년 한 차례씩 이맘때가 되면 공동묘지를 찾아 망자들의 안식과 명복을 비는 기도를 하고, 생전에 고인들이 살아온 삶을 회상하기도 한다. 새로 생긴 어느 묘지에서는 통곡 소리로 애간장을 짜기도 하고, 한탄과 비애의 독백으로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매년 이곳에 올 때마다 못 보던 새 묘지가 이 골짝 저 골짝을 가득 채워 가고 있다.
여기 참배를 온 이 숱한 사람들 중에서도 내년엔 이곳에서 볼 수 없는 사람이 끼여 있을지 모른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분명히 곁에서 죽은 이를 아쉬워하며 기도했던 어느 아주머니가 금년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라도 성해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와 봐야지”라고 했던 그 할머니도 올해에는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가장 확실하고 어김없이 받고 나오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이 세 가지에는 세상의 어떤 힘도 감히 근접하지 못한다.
첫째, 죽는다는 사실이다.
둘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 반드시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온 지난날을 돌이켜 보고, 어떻게 사는 삶이 가장 깊고 의미 있는 삶인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 글이 마음의 작은 빛viit이라도 되어 주길 바란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1996.07.10. 1판1쇄 P. 206
병상에 계시는 분들을 볼 때
병원에 가끔 들를 때가 있다. 어린이가 크레용으로 검은색, 붉은색 잡히는 대로 온 벽에 괴발개발 그려 놓은 듯한 색깔들로 병원은 뒤범벅이 되어있다. 어두워졌다 밝아졌다 하는 가운데, 사람들의 한 생애가 시작되고 마치고 한다.
사람이 병원에 머무는 것은, 한 순간 삶이란 굴레에서 벗어나 고요히 생각해 보라는, 하늘이 주는 ‘그 마음’을 건져 보라고 하는, 그분의 뜻이 담겨 있는 것. 살아온 날들을 돌이켜 보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를,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우리가 몰랐던 것을 발견하면 절대의 기쁨이 있다.
초광력超光力은 당신을 밝은 빛viit으로 이끌어 주는 지팡이와도 같다.
출처 : ‘빛viit으로 오는 우주의 힘 초광력超光力’ P. 52
보이지 않는 세계
“큰 은혜를 받고
갚지 못하고 가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학회장님, 건강하게 이 땅에 오래오래 머물러주시고
생각하시는 빛viit의 뜻이
다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시길 진심으로 비오며….”
지난 2011년 4월 29일 유길영 회원께서
세상을 떠나기 전날 우표까지 붙여서 남겨놓은 편지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
사후의 세계로 넘어가는 분이 남기고 간 편지이다.
그분은 죽음 직전 무엇을 보았기에
밝은 미소 띠고 마지막 편지까지 남겼을까?
그 분은 어디로 갔을까?
육체는 남겨져 시체가 되었고,
시체가 되기 전까지 그 마음인 나는
보이지 않는 세계, 저승도 좋고 천국도 극락도 좋겠지만
빛viit의 나라
광채의 나라면 더욱 좋겠다.
출처 : 향기와 빛viit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12.08.25. 초판 6쇄 P. 156~157 중
빛의나라
광채의 나라면 더욱 좋겠읍니다.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볼수있게해주셔서 진심으로감사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 번 뿐인 삶, 빛viit과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빛안에 있음이 감사하며 고통을 통해 켱손의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귀한 빛글 감사합니다.
빛과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삶을 되돌아본 감사한글입니다
살아온 날들, 살아가야할 날들 그분의 뜻과 정도덕행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빛안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삶을 돌아보는 것 ~ !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