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념처 (四念處) -1 / 법상 스님
오늘부터 며칠동안은 위빠사나라고 불리는, 초기불교의 가장 중요한 핵심 수행법인 사념처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중도와 팔정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곧 사념처입니다.
『대념처경』에서는 “비구들아,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해,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해, 괴로움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 팔정도에 이르기 위해, 열반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유일한 수행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사념처(四念處)다.” 라고 설한다.
사념처는 신수심법(身受心法)이라는 몸과 느낌, 마음과 법이라는 네 가지를 대상으로 마음을 챙겨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관(觀)수행이다.
부처님은 팔정도에 이르고, 열반을 얻기 위해 실천해야 할 유일한 수행법은 바로 사념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사념처가 곧 중도와 팔정도와 다르지 않으며, 이것이 곧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설하셨다.
사념처를 통해 대상을 분별없이 보면 어느 한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니, 이것이 곧 중도다.
또한 팔정도의 모든 덕목들은 바로 사념처라는 깨어있음에서 나온다.
그러면 무엇을 관찰해야 하는 것일까?
그 관찰대상이 바로 네 가지 신수심법(身受心法), 즉 몸과 느낌과 마음과 법이다.
그렇다면 왜 이 네 가지를 관찰할까? 그것이 바로 ‘나’라고 여겨지는 것, 즉 오온이기 때문이다. 오온을 ‘나’라고 여기는 자기 동일시를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불교수행의 핵심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사념처에서는 오온을 몸[색온]과 느낌[수온]과 마음[상온, 행온, 식온]으로 나누어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관찰해 봄으로써 그것들이 결국 실체가 없으며, ‘나’가 아님을 깨닫게 한다. 여기에서 신수심(身受心)이라는 세 가지 관찰을 통해 무상, 무아 등의 법을 깨닫게 되는, 진리에 대한 관찰을 법념처(法念處)라고 한다.
신수심법은 ‘일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몸과 느낌과 마음은 곧 우리가 ‘나’라고 여기는 것이고, 법은 곧 우리가 ‘대상’이라고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일체 모든 것들’을 ‘분별없이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곧 사념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