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참정권 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선언문》
장식이 될 수는 있어도 대표가 될 수는 없다고 여겨져 온 이들, 말을 하여도 들리지 않고 존재하되 구성원은 되지 못하는 이들의 투쟁이 바로 페미니스트 투쟁의 역사다. 민주주의가 선포되었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자동적으로 시민이 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페미니스트들은 기억한다. 여성은 동등한 시민이며 참정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에 자신의 생애를 걸었던 이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페미니스트가 발 딛고 설 곳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청소년 참정권 투쟁에 나선 이들과 연대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시민의 자격을 따지는 그들의 기준을 거부한다
시민의 자격기준은 한때 재산이었고, 인종이었고, 성별이었다.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기에 참정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 참정권 투쟁을 통해 시민의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청소년은 비생산 인구이므로 참정권을 가질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여성에게도 유사한 낙인이 찍혔다. 가사노동은 여성의 일이라는 이유로 노동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여성의 노동은 더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해왔다. 이 사회에서 생산적인 것과 비생산적인 것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권력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여성과 청소년의 삶은 이 기준에 의해 비생산적인 것으로 분류되어왔다. 페미니스트들은 이 기준을 뒤흔들기 위해 싸워왔다. 우리는 어떤 삶이 생산적인지를 평가하는 기준, 그리고 생산적이어야만 시민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그 기준을 거부한다.
청소년이 시민으로서 더 많은 권리를 누릴수록 청소년의 삶이 지닌 사회적 가치는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 사회적 가치가 드러날 때 청소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배제당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이는 여성운동이 보여준 역사적 사실이다.
이성(理性)과 경험에 대한 그들의 기준을 거부한다
여성의 행위에는 하나같이 'oo녀'라는 이름이 붙는다. 같은 행위라 해도 청소년일 경우 유독 그 나이가 강조된다. 이는 여성과 청소년을 이해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존재로 그리며 그들의 권리 박탈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현상 자체가 차별일 뿐이다. 무엇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지 판단하는 이는 누구인가? 여성과 청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면 무엇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지에 관한 사회적 기준이 달라질 것이다.
청소년은 정치적 판단을 하기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누구나 저마다의 삶을 산다. 이 시대 청소년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온전히 대변하는 비청소년이 과연 있는가. 수많은 청소년들은 지금의 비청소년들이 자신의 경험을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고 느낄 것이다. 청소년들의 경험이 정치적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 경험을 무시하는 것일 뿐이다.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가두고 여성에게 보호의 의무를 부과하는 세상에 문제제기 한다
가부장적 사회는 아동을 보호의 대상으로 가두고 여성에게 돌봄의 의무를 부과한다. 그리고 남성 가장이 아동과 여성을 대변한다며 이들의 권리 박탈은 옹호되었다.
여성을 남성에 종속된 존재로 규정하는 호주제가 폐지된 지 고작 10여년이 지났다. 그러나 청소년을 그 부모에 종속된 존재로 규정하는 가족제도는 건재하다. 한때 남편이 아내를 대신해 투표하므로 여성에겐 참정권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진리로 여겨졌다. 지금은 청소년의 이익과 의견은 부모가 대변하므로 참정권이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였던 논리는 여전히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제약하는 데 동원되고 있다.
누구나 인생의 어떤 시점들에 의존할 상대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자신의 의사결정과 책임전반을 위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 가두고 자녀를 감독할 의무를 여성에게 부과할 때, 이득을 얻는 것은 누구인가. 청소년이 스스로를 대변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할 권리를 확보한다면 여성들에게 지워지는 짐도 덜 버거워질 것이다.
우리는 연대자가 되고자 한다
비청소년 여성과 청소년, 그리고 여성과 남성 청소년은 때때로 서로의 가해자로 등장한다. 청소년 자녀 또는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어머니와 여교사의 얼굴로, 때로는 여성에게 성적 폭력을 가하는 남성 청소년의 얼굴로. 그러나 우리가 옹호하는 것은 모든 여성 또는 모든 청소년의 모든 행위가 아니다. 스스로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 상대의 고통도 덜어주는 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옹호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성에게 좋은 사회가 청소년에게도 좋을 것이며 청소년에게 좋은 세상이 여성에게도 좋을 것이라 믿는다. 또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여성 중에도 청소년이 있고 청소년 중에도 여성이 있다는 점이다. 여성 청소년으로서 한 존재가 겪는 고통은 두 운동이 함께 해결해야 할 몫이다.
오늘 우리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에 지지를 선언한다. 이것이 제도적 참정권을 먼저 획득한 운동의 계승자로서 책임이자, 동료시민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우리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가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리라 기대한다.
만 18세로 선거연령을 1세 하향하는 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선거연령 하향은 청소년 참정권 보장과 민주주의 확대의 시작이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에 적용될 수 있도록, 선거연령 하향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다.
2018년 4월 27일
322인의 페미니스트 일동
강보령, 강보름, 강석금, 강시현, 강신재, 거품, 건망고, 경진주, 고싫싫, 고영주, 고은지, 고정갑희, 고지현, 곽명철, 곽수진, 광어, 권리모, 권수현, 권혜진, 김가람, 김건호, 김고훈, 김광원, 김광이, 김규연, 김기쁨, 김나현, 김다은, 김다형, 김동환, 김명희, 김민주, 김밀우, 김보미, 김성미, 김성애, 김성호, 김소이, 김소희, 김수호, 김신아, 김아름, 김영돈, 김영란, 김예진, 김용실, 김유선, 김은선, 김은성, 김은수, 김은정, 김재경, 김정한경, 김주연, 김지연, 김진선, 김채영, 김하경, 김한돌, 김한슬, 김현주, 김혜미, 김혜연, 김혜연, 김혜정, 김혜지, 김호규, 김호영, 김효중, 김희선, 꺄아아, 나경, 나규연, 나라, 나영, 나영정, 나희경, 난다, 남궁이랑, 남상백, 남웅, 노선이, 노아, 노정은, 다원, 단추, 달구, 달프, 도균, 동화, 딸맘, 라일락, 루크, 류서연, 림보, 명숙, 명채빈, 모은정, 몽, 문기원, 문미정, 문세경, 문영민, 문정인, 미류, 미지, 민보연, 박동신, 박묘정, 박상옥, 박상현, 박석신영, 박선영, 박씨, 박아름, 박연지, 박윤하, 박은지, 박재우, 박준우, 박지예, 박진옥, 박초롱, 박한슬기, 박현주, 방승현, 배복주, 배성준, 배하영, 백영경, 백영웅, 변미혜, 변춘희, 봄내, 사, 서강타, 서보경, 서승윤, 석은경, 선승희, 손소원, 손혜미, 손희정, 솔바람, 송란희, 송아민, 송현민, 수련, 수수, 시리, 시원, 시칼, 신귀혜, 신상희, 신새벽, 신유정, 신은옥, 신지원, 신진호, 신필규, 심옥연, 쎄러, 안소연, 안지연, 안지형, 안태진, 안팎, 안혜진, 얄리, 양다연, 양말(정유정), 양미숙, 양지혜, 양희주, 여켱, 연두, 염민희, 염운옥, 오경진, 오디, 오서연, 오수현, 오승재, 오유진, 오은영, 오이정환, 오주희, 오터, 우완, 유나, 유희애, 윤가빈, 윤나, 윤상미, 윤소윤, 윤수진, 윤지수, 은하선, 이규리, 이다슬, 이드, 이들, 이라라, 이랑, 이리, 이미성, 이민영, 이상호, 이석원, 이선화, 이세인, 이소희, 이수경, 이승민, 이승주, 이아란, 이아현, 이유림, 이은선, 이은솔, 이은숙, 이은지, 이의정, 이인수, 이정선, 이정화, 이정희, 이지은, 이지희, 이진영, 이진호, 이채연, 이채은, 이초롱, 이햄, 이혜연, 이혜영, 이효원, 이희경, 인화, 임보라, 임소연, 임아연, 임재원, 임준택, 장경옥, 장길완, 장민서, 장수림, 장은실, 장지원, 전선주, 전유성, 전혜진, 전혜현, 전희경, 정다루, 정민우, 정민주, 정상운, 정주연(루트), 정지윤, 정효정, 조돈희, 조민정, 조선희, 조성민, 조성재, 조수미, 조수미, 조연후, 조이다혜, 조이스, 조익현, 조정은, 조지은, 쥬리, 지선, 지선하, 지지, 지혜, 진경, 진기영, 진주, 차주석, 찬일, 채경, 채은, 체스, 최경숙, 최선아, 최수진, 최순홍, 최승환, 최예훈, 최은교, 최자영, 최혜성, 치이즈, 케치, 콜비, 쿠키, 톨, 푸딩, 피아, 하성애, 한미숙, 한우리, 한유림, 한정원, 한지현, 현지수, 혜만, 호야, 홍수희, 홍혜은, 황보현, 황소연, 황지성, 효니, 흐른, RainyS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