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줄을 아래 본문에서 증거된 것과 같이 매달게 된 집의 주인인 기생 라합에 있어서는 그녀가 거했던 여리고 성의 모든 자들, 사실 그 성의 거의 대부분이 죽게 되거나 불태워지게 되었을 때 그녀 뿐 아니라 그녀의 일가들, 그녀에 속한 모든 것들은 다 살게 되었고 구함을 받게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그 라합은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보낸 두 사람의 정탐꾼들을 자신의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숨기면서 살 수 있게 했던 이였던 것으로 심지어 마태복음 1장에 보면 구주 예수님의 메시야 계보에까지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 붉은 줄은 여리고 성의 모두가 멸절 당하게 되었을 때 그러한 죽임을 면하고 살 수 있게 한 표식인 것인데 하나님 아버지와 전적으로 이어지게 한 것이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직통적인 손길로 살리게 한 것이며, 다른 모든 자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구원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으로..
실상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이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며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죄악들과 싸우고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살아 있는 말씀의 신앙이 될 수 있도록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중에 하나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담과 하와 때부터 모든 인생들은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 졌고 단절케 되었으며, 말씀을 잃어 버렸고 말씀의 동산인 에덴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되었기에 더 이상 그 자체로는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다거나 기도의 상달이 가능하다거나 친밀히 동행할 수 있다거나 구속의 일들을 누리거나 하는 등의 일들이 불가하게 된 것으로 진정 그 어떤 인생들이라도 스스로의 힘이나 의, 또한 다른 그 어떤 세상적 능력이나 방법들로도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인데..
유일한 통로와 방법은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대문과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 외에는 달리 있을 수가 없는 것이며, 참으로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그 십자가를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간구하는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도 직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이치와 원리는 구주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도 결코 다를 수 없는 것으로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사실상 그들이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된 자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어떤 식으로든 구원의 일들을 생생하고도 온전하게 누림들에 있어서의 유일하고 합당한 모든 방법과 통로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구주 예수님에 대한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있을 수 없는 것인데..
곧 구약 시대에 있어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씀대로와 함께 하나님 아버지께 실질적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고 대면할 수 있으며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응답될 수 있는 기도도 할 수 있으며 중보도 할 수 있고 온갖 대속과 대신과 사함과 나음 등의 구원의 일들도 누릴 수 있게 하는 자들이나 도구들이나 통로들인 것이고, 그 하나하나마다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과 전적으로 연결되고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 그에 있어서는 구약 성경에 보면 아래 본문에서의 붉은 줄 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 때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린 제사,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유월절 어린 양,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 뱀, 깨어진 반석, 회막, 지성소, 요단 강물을 멈추게 한 언약궤, 성전, 제사장, 선지자,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아브라함의 옛 이름인 아브람의 십일조를 받은 살렘 왕 멜기세덱 등 따지고 보면 다 세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통로와 사례들이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오늘날의 우리들로 치면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정말 거듭나고 본질적으로는 실제로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일 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처음의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암송하며 실천하고 증거하며 나아가고 또 나아감과 함께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는 것, 참으로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생생해 지고 충만해 지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과 풍성하심에 가면 갈수록 더욱 더 많이 거하게 되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여호수아2:18~19)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17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