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와 성 소피아 성당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와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옛 성 소피아 정교회성당) 는
서로 이웃해 있는 이슬람 사원으로 터키 이스탄불의 세계적인 명소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537년, 블루 모스크는 1616년 완공되었다.
두 건물이 지어진 시간의 간격이 무려 1,079년이나 된다.
각각 기독교의 성당, 이슬람교의 모스크로 건축되었다.
성 소피아 성당이 건립되었던 537년에는
이슬람을 창시한 무하마드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무하마드는 571년에 태어나 632년에 죽었다.
현재 블루 모스크는 이슬람교의 회당인 모스크로
성 소피아 성당은 2020년 7월까지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이후 다시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476년) 나서도 오랜기간 존속했던
동로마제국이 멸망할 때까지(1453년) 1000년간 수도였으며
이후 오스만터키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탄불에는
수많은 역사적인 유적지가 남아있다.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린 오스만터키 제국은 500년 가까운 기간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인 들의 중동과 동유럽을 제패하며
독일편에 섰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할 때까지
명실상부한 이슬람의 종주국이었다.
1차세계대전 이후에는 영국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고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터키로부터 독립하였다.
한동안 세계의 화약고였던 발칸반도 제국들도
모두 터키제국의 지배하에 통치를 받았다.
그 지역에 이슬람교도들이 많은 이유다.
앞쪽이 블루모스크, 뒷쪽이 성 소피아 성당.
두 건물이 서로 이웃해 붙어있다
앞쪽의 블루모스크는 이슬람사원이고...
1616년에 완공되었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스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모스크 안 벽면을 온통 뒤덮은
푸른빛을 띠는 도자기 타일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뒷쪽의 성 소피아 성당은 애초에 기독교회당으로 건축
537년에 완공되어 1453년까지 그리스정교회사원이었다가
오스만터키가 동로마제국을 무너뜨린 후
1453년부터 1931년까지 이슬람모스크가 되었다
이후 1935년 박물관으로 개조되었다.
터키가 1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한 결과로 본다
2020년 7월까지 85년간 박물관으로 이용돼 왔다.
2020년 7월10일부터는 다시 이슬람 사원이 되었다
서양 기독교국가들의 자존심이 상할만하다
터키땅에 있는 건물이니 터키사람들 마음이다.
1. 블루 모스크 (Blue Mosque)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Sultan Ahmed Mosque)
터키를 대표하는 사원이며, 사원의 내부가
파란색과 녹색의 타일로 장식되어있기 때문에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다.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제14대 술탄 아흐메드 1세가
1609년에 짓기 시작하여 1616년에 완공했다.
우뚝 서 있는 첨탑 6개는 술탄의 권력을 상징하며,
이슬람교도가 지키는 1일 5회의 기도를 뜻하기도 한다.
사원 앞의 정원에는 언제나 화사한 꽃이 피어 있어
사람들에게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2. 성 소피아 (Santa Sophia) 성당(567~1453)
이슬람 모스크(1453~1931)
아야 소피아 (Aya Sofia) 박물관(1935~2020)
하기야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Hagia Sohia Grand Mosque)
2020년 7월10일~
- 가톨릭과 이슬람, 예수와 마호메트가 공존하는 곳 -
터키의 이스탄불에 소재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비잔틴양식의 성당.
처음에는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터키 지배하에서는 이슬람교 사원으로 사용되었다.
동로마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호칭되고 있을 때
그리스도교의 대성당으로 지어졌고,
터키 지배 때에는 이슬람의 모스크가 되었고,
이후 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다시 이슬람 모스크다.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성스러운 예지(叡智)’(하기아 소피아)에 바친 구당(舊堂)(325) 대신에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하여 새로운 구상으로 재건되었다.
안 길이 81m, 너비 70m의 광대한 3랑(廊) 바실리카 플랜과,
지름 약 33m의 거대한 원개(圓蓋)를 교묘히 조합시킨
절충적인 원개 바실리카식 성당이다.
본당 중앙에 4개의 대지주를 세우고
그 위에 대형 아치와 펜덴티브 구법(構法)에 의한 대원개를 덮고 있다.
동서의 긴 방향으로 가해지는 횡압(橫壓)을 대소의 반원개(半圓蓋)로 받치고,
남북 방향의 횡압은 대지벽(大支壁)(563 증설)으로 받친
매우 독창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설계자는 트랄레스의 안테미오스와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라고 하는데,
그들의 재능이 만들어낸 풍부한 내부 공간과
동산을 방불케 하는 장대한 외관을 보고
헌당식(獻堂式)에 참석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감격하여
“오! 솔로몬이여! 나, 그대에게 이겼노라!”고 부르짖었다고 한다.
헌당 당시, 당내에 빛나고 있었을 6세기의 모자이크는
8∼9세기의 아이코노클래즘(성상 파괴운동) 때에 없어지고,
그 후에 제작된 모자이크도 15세기 이후,
이슬람교 투르크의 점거 하에 거의 없어졌으나,
근년의 조사에 의하여 앞방과 2층 복도의 벽면에서,
석회칠 속에 그려져 있던 9∼13세기의 모자이크의 일부가 발견되어,
그 고도의 기술과 뛰어난 표현이 주목을 끌고 있다.
당내에는 대소의 주두(柱頭) 조각으로 대표되는
비잔틴의 세련된 장식 조각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이스탄불 성소피아, 85년만에 '박물관' 취소..모스크로 전환
2020.07.11.
터키 최고행정법원, 성소피아 박물관 지위 취소
에르도안 대통령, 성소피아 모스크 개조 행정명령에 서명
유네스코·그리스·러시아 정교회·미국 등 반발
(이스탄불·파리=연합뉴스) 김승욱 김용래 특파원 =
터키 최대의 관광 명소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성소피아 박물관이 85년 만에 박물관 지위를 잃었다.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10일(현지시간) 성소피아의 '지위'를 박물관으로 정한 1934년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했다.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537년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건립한
성소피아 대성당은 916년간 정교회의 총본산이었으나,
1453년 오스만 제국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오스만 제국의 황실 모스크로 개조됐다.
세계 1차대전으로 오스만 제국이 멸망한 후
터키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강력한 세속주의를 앞세워
1934년 내각회의에서 성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듬해인 1935년 성소피아 박물관이 개장했다.
이후 성소피아는 연간 약 4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터키 최대의 관광 명소가 됐으며,
성소피아 박물관이 속한 '이스탄불 역사지구'(Historic Areas of Istanbul)는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이슬람주의를 앞세운 정의개발당 소속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성소피아를 다시 모스크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터키 최고행정법원은 지난달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 안건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이날 최고행정법원은 "성소피아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개인 재산이었다"며
"공화국 수립 이후 술탄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 소유물이자 모스크로 대중에게 개방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 성격이 모스크로 규정됐고 그 외의 사용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모스크로 사용을 종료하고 성소피아를 박물관으로 규정한 1934년 내각 결정은 법률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AFP 통신은 이 결정이 재판관 전원의 만장일치로 이뤄졌다고 전했다.
최고행정법원의 결정 내용이 알려지자 성소피아 외부에서 대기하던 이슬람 신자 수십 명은
"알라후 아크바르"(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는 뜻)를 외치며 환호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온 직후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개조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이 서명한 행정명령서를 공개했다.
행정명령에는 '아야 소피아(터키어로 성소피아를 뜻함) 자미'(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터키어)를
터키 종교청인 '디야네트'가 관리하고 이슬람 신자의 신앙을 위한 공간으로 재개장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유네스코는 성소피아를 모스크로 전환하는 것에 사실상 반대의 뜻을 표명했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이날 최고행정법원의 결정이 나오기 전 AFP통신의 질의에
"세계유산 등재는 많은 약속과 법적 강제를 수반하는 일"이라면서
"해당 국가는 특정 조치가 해당 문화유산의 특별하고도 보편적인 가치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는 세계유산에 특정 조처를 하려면 유네스코에 사전 검토를 요청해야 하고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 심사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다.
유네스코 대변인은 이어 성소피아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스탄불역사지구'의 박물관으로
등재돼 있다면서 이런 내용을 터키 측에도 사전에 수차례 고지했다고 말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성소피아 박물관을 특정 종교의 건물로 만들면
세계유산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터키에서 제기되자 터키 정부는
모스크로 전환하더라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서 제외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웃 국가이자 역사적 '앙숙'인 그리스는 이번 결정에 대해
"전 문명 세계에 대한 공개적인 도발"이라고 비판했다.
리나 멘도니 그리스 문화부 장관은 성명을 내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보여준 민족주의는 터키를 6세기로 되돌렸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번 법원 결정은 터키에 독립된 정의는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정교회 교구인 러시아 정교회 역시 과거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성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반발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블라디미르 레고이다 정교회 대변인은
"터키는 수백만 정교회 신자의 우려를 듣지 않았으며, 오늘 법원 결정은 이 문제와 관련해
극도의 세심함을 요구한 모든 요청이 무시됐음을 보여줬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총대주교구는 전 세계 정교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교구로 신자 수는 약 1억명으로 추산된다.
앞서 미국 국무부도 성소피아의 박물관 지위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일 성명을 내고
"성소피아는 종교와 전통, 역사의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의 모범 사례"라며
"모든 사람이 성소피아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소피아의 지위 변경은 이 놀라운 문화유산이 서로 다른 종교와 전통,
문화를 연결하는 다리로서 인류에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 고대: 하기아 소피아, 현대: 아야 소피아,
라틴어: Sancta Sophia 상크타 소피아, 튀르키예어: Ayasofya 아야소프야,
‘거룩한 지혜’라는 뜻)의 정식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으로 세워졌으며, 현재는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 중이다.
537년에서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 제국에 의해서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 허나 2020년 7월 10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박물관에서 이슬람교도 들을 위한 모스크로 바뀌었고,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 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성당 옆에 있는 4개의 탑들은 미나레트라고 부른다.
'알라'의 이름이 새겨진 원판
옴팔리온
성 소피아 성당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옴팔로스'라고도 불리는 옴팔리온이다.
옴팔리온은 중앙 돔 바로 아래 본당의 남동쪽에 위치해있다. 각면의 크기는 5.65m이다.
거대한 정사각형의 모습을 띠고 있는데, 이 정사각형 속에 가운데에 큰 원 하나가 들어가 있고,
그 주변을 30여개의 대리석 원형 타일들이 감싸고 있다.
옴팔리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바로 다채로운 대리석의 색깔이다.
당시 동로마인들은 대리석이 흙이 물 속으로 가라앉아 얼어서 생긴다고 생각했는데,
이 옴팔리온이 워낙 독특한 모습을 띠고 있기에 동로마인들이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디자인을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 논란이 있다.
하지만 주류적으로는 이 원들이 태양계를 상징하며,
가운데에 있는 거대한 원은 황제의 절대적인 권력과 명예를 상징한다는 설이 우세하다.
역사적으로 이 곳은 동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즉위식 때 앉아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이 주장은 13세기 초에 적힌 기록에서 기인하는데,
이 기록에는 "아야 소피아에는 거대한 붉은 대리석이 있는데,
이 위에 황금 옥좌가 있어 동로마의 황제들이
이 위에서 대관식을 치루었다."라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다만 성 소피아 성당이 지난 오랜 세월동안 워낙 많이 바뀌어 왔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거쳐갔기에 이 주장의 신빙성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메카의 방향을 표시하는 미흐라브
황후의 로지아
로지아란 벽이 아치나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어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구조의 복도, 혹은 갤러리를 말한다.
황후의 로지아는 상부 갤러리의 중앙에 위치해 있는데,
바로 이 곳에서 황후가 궁정의 여인들과 함께 1층에서 열리는 공식 행사를 내려보았다.
바닥에 있는 녹색 돌은 한때 황후가 앉았던 황좌가 놓여있던 곳이다.
대리석 문
대리석 문은 상부 갤러리의 남쪽 부분에 위치해 있다.
주로 종교 회의인 시노드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이용하였는데,
회의 참석자들은 이 문을 통해서 회의장을 들락날락하였다.
구전에 따르면 이 문의 한쪽 면은 천국을 의미하고, 반대쪽 면은 지옥을 의미한다고 한다.
문 양쪽은 과일과 물고기들이 그려져 있는 대리석 판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 문을 통과하면 중요한 회의가 열리거나 토론을 하던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소원의 기둥
성 소피아 성당의 북서쪽에는 중간에 구멍이 뚫린 청동으로 감싸진 기둥이 하나 서있다.
이 기둥은 '소원의 기둥', '땀흘리는 기둥', '눈물흘리는 기둥' 등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이 기둥은 만졌을 때 축축하다고 하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져 왔다.
전설에 의하면 1200년에 성 그레고리가 이 주변에서 기적을 일으켰고,
그 때부터 이 기둥이 축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둥의 습기를 만지면 많은 질병들을 치유할 수 있다고 한다.
페르가몬 항아리
성 소피아 성당에는 2개의 거대한 대리석 항아리가 놓여 있다.
이 항아리는 술탄 무라드3세가 페르가몬 지역에서 가져온 것인데,
헬레니즘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 대왕의 보물 항아리 들 중의 하나라고 전해지고 있다.
거대한 이 항아리는 16세기에 페르가몬의 고대도시에서 가져온 것으로
무려 1250L에 달하는 물을 담을 수 있으며,
거대한 대리석 바위 하나를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예배 중 사람들에게 음료를 나누어 주거나
몸을 닦을 수 있게 물을 저장해 놓는 용도로 주로 쓰였다.
석회로 가려져 있던 기독교 성화 벽화가 일부 복구되었다
첫댓글 자유게시판에 올린
"세기의 불가사의한 건축물 21곳에 올려주신
우경님의 댓글을 보고 이 글을 올릴 생각을 했습니다
성 소피아성당은 537년
기독교정교회 성당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이후 1453년부터는 이슬람사원으로 전환됐지요
1935년부터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으로 전환됐지요
아마도 터키의 1차대전 패전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 국가들에게 진거나 마찬가지니까요
2020년 7월10일
다시 이를 이슬람사원으로 개조한다는
터키 행정법원의 판결이 났습니다
그리스정교회와 기독교국가들 유네스코의
강한 반발이 있었지만, 행정명령은 발효됐습니다
지금은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완전히 이슬람사원이지요
하기야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입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우경선배님!
우와 ~~ 👍
튀르키예, 모스크와 소피아성당
어마무시한 규모와 예술성 그리고 풍경,
여행시간에 버금가는 상세한 설명, 이미지 등
참으로 애쓰셨습니다.
덕분에 여행공부했어요.
감사합니다.청솔님 🌼
감사합니다
성소피아성당은 이제 모스크입니다
하기야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
@청솔
네,
제가 갈 때까지
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한번 더 읽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즐감하셨다니 보람이 있습니다
네 제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던 게시물입니다
두 곳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보이길래...
최대한 구별되도록 글을 만들어 올린 것입니다
오늘 오전에 조금 더 보충하였습니다
성소피아성당 부분을 보완하였습니다
@청솔 네에.
역사공부 잘 했네요 이곳의 역사는 하도 복잡해서 들어도 금방 잊어버려지네요 근데요 실제 보는것보다 사진이훨씬 좋아보이네요
감사합니다
흥망성쇠하는 역사
늘 헷갈리게 마련이지요
사진의 마술입니다
제가 여기저기 돌아 다니며
좋은 사진으로 골라서 수집하는
그런 취미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