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 봉사자의 작은 행복
∎수원샘내교회 이융재 사모
내가 여지껏 살아있는 것은 배워야 할 무엇이 더 남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10년여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면서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쉬지 않고 당번요일을 지키며 봉사 할 수 있도록 믿음과 건강을 주시고, 인생을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는 준비를 하지만 떠나는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힘들게 가는 것을 보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래전 집안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너 그동안 무었을 했니?”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내게 자문하는 말인가 싶어 “네 저요 어려운 성도들과 부모 없는 가정 아이들을 보살피고 전도하며 저희 아이들을 키우느라 힘들게 열심히 살았잖아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때 “그런 것도 일이라고 하느냐 그 일 안하는 사람이 있는 줄 아느냐”라는 큰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서 돌처럼 굳어져 멍하니 서 있다가 그게 주님이 하신 말씀인줄 로 알고 “주님 저의 어리석고 교만함을 용서해 주세요” 라며 무릎을 꿇었습니다.
몇 날을 그 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민하던 중 우연히 호스피스 봉사자 모집광고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호스피스가 무엇을 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하고 다만 봉사자 교육이라기에 무조건 등록을 하고 교육을 받고 보니 이 일이야말로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마치고 수원성빈세트병원에서 5년을 봉사하고 지금은 수원기독호스피스센터에서 5년차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호스피스란 아시는 대로 말기 암환자들을 돌봐주는 기관입니다, 현대 의학으로는 더 이상 치료받을 수 없는 암 환자들의 고통을 가족들도 지치고 힘들어 감당하기가 어려운 것을 호스피스 봉사자가 대신 돌아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내 뜻대로 살다가 병마로 힘겨워하는 분들을 대하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우들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고 손을 잡고 기도하며 마음에 응어리진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발 맛사지나 등 맛사지를 해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지요. 세상에서 사는 동안 사랑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했던 행려자 같은 분들께 해드리면 눈물을 흘리시며 감격해합니다. 지난 생을 후회하면서 다시 살아날 수만 있다면 호스피스 봉사자의 삶을 살겠다고 하지만 지나간 세월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타가워하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서 턱걸이 구원을 받은 분들을 볼 때마다 정말 주님의 은총 가운데 살면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많이 감사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 암 환우들은 가족들도 때론 지쳐서 외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형편의 환우의 손을 잡아주면 그 손을 놓지 못하고 눈물로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그런 분들을 생각하면 내 몸이 좀 아파도 결코 쉴 수가 없습니다. 어떤 날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목욕이 되겠구나 싶은 환우를 대할 때면 숙연해 지는 마음으로 “편안히 잘 가세요”라는 기도를 하며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라는 잠언 말씀을 상고하게 됩니다.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힘이 아닌 주님의 사랑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믿어집니다.
여러 가지 선택과 많은 일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주님을 만난 축복과 호스피스 봉사자가 된 것이 아주 귀중하다고 여겨집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봉사자로서의 생활을 계속하렵니다. 드리는 봉사보다는 받는 사랑으로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날마다 마음 속 깊게 감사하면서 살아가려고 기도합니다. “제가 훗날 주님을 부끄럽지 않게 기쁜 마음으로 뵈올 수 있도록 날마다 붙잡아 주시고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이 땅에서의 여정이 정말 행복했었노라고 말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까지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자로 살게 해 주세요”라는 게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기쁘고 즐거운 성탄절을 맞이하여 환우들과 모든 사람들이 따뜻하고 행복해지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12월 24일 토요일
-메모-
호스피스봉사에 관한 수기를 남긴 이융재 사모는 수필가 최건차 목사의 아내로 2016년 12월 19일 71세를 일기로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담낭 암으로 자신이 16년 동안 봉사했던 수원기독호스피스병원에 12월 1일 입원하여 2주간 남짓 있었습니다. 평소에 자신이 바라던 대로 한편의 드라마처럼 아름답게 생을 마감하고 수원기독호스피스병원 최초의 호스피 장으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