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의 변론 과정을 지켜보며 법기술자(속칭 '법꾸라지')들에 환멸을 느끼는 요즈음이다. "전 계몽됐습니다"라고 신앙 간증을 하거나 "여전히 답변이 제한됩니까?"라고 묻는 등 변호사들이 말뜻과 문법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법정 변호를 하는 모습이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법기술을 부리는 작태에다 직위가 낮아 보이는 사람에게 취조하듯 따져 묻고 함부로 대하는 듯한 변호인들을 보며 '뭐 저런 짓들을...'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기야 그들은 광화문 집회 현장에도 버젓이 얼굴을 내미는 후안무치함까지 드러냈으니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이런 차에 넷플릭스에 '마음에 쏙 들 콘덴츠'란 표시와 함께 게리 플레더 감독의 '런어웨이'(Runaway Jury)가 올라왔길래 재미있게 봤다. 두어 번은 본 것 같은데 이번에 넷플릭스로 보니 뇌리에 박히지 않았던 대사와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 진 해크먼의 연기에 새삼스럽게 박수를 보내는 기쁨도 누렸다.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원작(한글 번역본 제목 '사라진 배심원')이 워낙 촘촘했던 덕일까. 영화는 많은 등장인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긴박감 넘치는 법정 드라마로 각색해냈다. '덴버'와 '키스 더 걸', '돈 세이 워드' 등을 연출한 플레더 감독의 솜씨가 돋보인다. 다만 원작은 담배회사 소송을 그렸는데, 영화는 총기회사로 바꿨는데 아마도 1999년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짐작됐다.
이전에 관람했을 때는 변호사들이 배심원들을 선별해내고 의도적으로 탈락시키며, 심지어 매수하려 한다는 플롯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번에는 사악한 무기회사들과 그들을 대변하는 랜킨 피치(진 해크먼)나 정의의 실현을 위해 맨주먹으로 맞서는 웬달 로(더스틴 호프먼)나 똑같은 변호사들이란 사실에 더욱 마음이 쓰였다. 9번 배심원 니콜라스 이스터(존 쿠삭)가 다른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다며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해 승소하게 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말리(레이철 바이스)도 결국은 오래 전 피치에게 빚진 것을 갚아주고 파멸의 늪에 몰아넣으려고 양쪽에 솔깃한 제안을 했고, 정의롭고 양심적인 변호사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로도 한때 말리에게 돈을 건네려고 예비 자금을 달라고 법무법인 경영진을 설득한다.
마치 검찰 특수부 사무실이나 대선 캠프처럼 칠판에 배심원들 사진과 이력을 보여주는 문서들을 붙여놓고 TV 화면을 지켜보며 실시간으로 법정 투쟁을 지휘하는 피치의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심지어 판사실에 카메라를 숨겨 재판장의 생각까지 읽으려 하고 배심원의 집을 습격해 뒤진 뒤 불까지 지르는 장면도 놀랍다. 배심원이 유무죄를 평결하는 미국 사법 시스템에서 변호사 더우드 케이블(브루스 데이비슨)보다 배심원 컨설던트 핀치가 더 우위에 서 전권을 휘두르는 것도 인상적이다.
역시 반전은 돈만 밝히는 줄 알았던 니콜라스와 말리에게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인데 배상금 100만 달러에다 징벌적 손해 배상 1억 100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이 결국은 사적 복수가 먹혔다는 얘기가 돼 입맛이 씁쓸해졌다. 이런 식의 정의 실현이 과연 제대로 된 정의인가 질문하게 만든다.
한 가지 정말 아쉬운 점은 22년 전이라 그랬는지 한글 자막이 너무 엉성하다는 것이다.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도 번역 작업이 너무 듬성듬성하게 느껴졌다. 비교적 알아 듣기 쉬운 영어라 화면을 잠시 멈추고 분석하듯 들어보면 더욱 좋을 것 같은 대사들이 많았다. 누군가 대본집을 구해 성의있게 옮겨 자막을 다시 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 가지만 더, 이 땅의 법기술자 희망자들도 이 영화를 음미하며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