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 응봉에 올라
지난 오월 첫날이 수요일이었는데 개교기념일이라 쉬게 되었다. 그날 나는 거제와 인접한 가덕도에 사는 형님 댁을 방문하고 연대봉을 올랐다. 형님을 거제로 오게 해 산행을 가도 좋겠으나 주말이면 내가 창원으로 복귀해 그럴 여건이 못 되었다. 형님은 텃밭을 가꾸면서 복지관 문화강좌를 수강하면서 섬 구석구석 발자국을 남기고 있다. 아우와 동행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오월이 가는 마지막 날은 금요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일과를 끝내고 고현터미널로 나가 창원행 시외버스를 타는데, 그러지 않고 하단행 직행 좌석버스를 탔다. 옥포를 둘러 거가대교를 지난 가덕도 성북 나들목에서 내렸다. 눌차만이 바라보이는 곳에 사는 형님 내외가 성북 나들목으로 차를 몰아 마중을 나와 주었다. 해질녘 저녁때가 되어 댁으로 들기 전 식당을 먼저 찾아들었다.
상추와 부추에다 돼지수육으로 내가 맑은 술을 두 병 비우는 새 형님은 조금만 권했다. 저녁을 함께 든 형수님은 주민센터 노래교실로 가고 나는 형님 댁 근처로 가 봄날이 다 가도록 일군 텃밭 농사를 둘러봤다. 마늘은 수확을 앞둔 때였고 고추이랑은 생기를 띠고 울 삼아 심은 옥수수도 너풀너풀했다. 고구마 순은 활착되어 가고 일부 이랑은 순을 길러 심으려고 비워 두었다.
댁에 들려 역시 텃밭에 가꾸는 여러 푸성귀들 둘러봤다. 뻗는 넝쿨에서 애호박이 열리고 박은 하얀 꽃을 피웠다. 방울토마토도 이제 열매가 달려가는 즈음이었다. 봄날에 순을 뜯어 드셨을 머위는 줄기가 굵어져 있었다. 수박도 몇 포기 보였다. 초벌은 잘라졌지만 뒤이어 자란 부추가 싱싱했다. 댁에서는 못다 먹을 양이라 이웃에 보내고 복지관 강사와 관계자에게도 나눈다고 했다.
방으로 들지 않고 마을 골목길을 지나 동선새바지로 나갔다. ‘새바지’는 가덕도에만 쓰는 독특한 지명이다. 방파제가 있는 갯가에 어선을 묶어두는 시설을 일렀다. 신공항이 들어설 부지로 거론되는 연대봉 너머 대항에도 새바지가 있었다. 동선새바지 나가면서 눌차만 선창 바깥에 보이는 신항 야경을 감상했다. 높다란 크레인과 컨테이너가 산처럼 쌓인 산업 부두는 불빛이 화려했다.
동선새바지로 나가니 건너편 보이는 진우도 모래톱과 다대포 아파트 야경이 들어왔다. 등대까지 나간 야간 산책에서 집으로 복귀하니 형수는 노래교실을 마치고 돌아왔다. 나는 테라스 거실에 자리를 깔고 일찍 잠들었다. 새벽에 잠을 깨어 텔레비전에서 날씨를 살폈다. 구름이 엷게 끼는 일교차 큰 하루라고 했다. 형수가 차린 떡국으로 이른 아침을 들고 형님과 응봉 산행을 나섰다.
형님은 가덕도 일대 등산로를 샅샅이 알고 있었다. 외지 산악회에는 연대봉만 알고 오르는데 그보다 더 좋은 명소가 응봉이라고 했다. 이른 봄 진달래가 피면 온 산을 뒤덮어 장관이라 했다. 연두색 새잎이 돋는 철도 좋았다고 했다. 산등선을 오르니 화강암에다 ‘육군사용지’라는 한자 표석이 세워져 있었다. 해방 이전 일본이 우리 땅을 점령했음을 보여준 마이너스 역사 현장이었다.
형님은 산을 오르다가 아우에게 군데군데 사진을 찍기 좋은 명소를 짚어주었다. 구름 낀 틈으로 바다에 햇살이 비치고 낙동강 하구 진우도와 다대포 몰운대가 드러났다. 뒤돌아보니 신항과 녹산 사하 일대 공장과 택지들도 한 눈에 보였다. 연대봉 산행은 단조로웠으나 응봉은 바위와 숲이 조화를 이룬 올망졸망한 등산로였다. 건너편에는 형님이 몇 차례 올랐다는 운주봉 이 보였다.
응봉에서 내려서 정자를 지나니 사슴농장이 나왔다. 등산화에 와 닿는 흙바닥이 촉감이 좋은 숲길을 지나니 눌차만과 죽도를 배경으로 하는 형님 댁이 나왔다. 형수는 시동생이 가져가라고 부추를 자르고 상추를 가득 뜯어 놓았더랬다. 형님을 차를 몰아 멀지 않은 성북 마을버스 정류소로 나를 배웅해주었다. 형님은 아우에게 장마가 오기 전 창원으로 가는 길에 다시 들리라고 했다. 19.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