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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화사전 뻐꾸기가 우는 사연목차울음에 얽힌 전설새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 달리 들린다. 같은
닭의 울음소리라도 미국 사람에게 들리는 것과 중국 사람에게 들리는 것이 우리와는 영 딴판이다. 옛 한시에서 뻐꾸기처럼 다양한 의미로 노래되는
예는 흔치 않다. 뻐꾸기는 옛날이야기에서도 아주 다양하게 이야기되어왔다. 뻐꾸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첫째, 떡국새에 얽힌 것이다. 옛날에 못된 시어머니와 착한 며느리가 살았다. 하루는 며느리가 떡국을 퍼두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개가 떡국을 다 먹어치웠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떡국을 먹었다고 여겨, 화가 나서 몽둥이로 며느리를 때렸다. 며느리는 몽둥이에 잘못 맞아 죽고 말았다. 며느리의 넋은 새가 되어 태어났다. 이 새는 ‘떡국 떡국 개개’ 하며, 자기가 먹지 않고 개가 먹었다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떡국새 설화다. 둘째, 풀국새 전설이다. 계모가 전처 소생의 딸에게 일만 시키며 밥을 주지 않았다. 계모의 갖은 학대를 받으며 굶주리던 딸은 이불 호청에 들일 풀을 보고 몹시 배가 고픈 나머지 그 풀을 정신없이 퍼먹다가 죽고 말았다. 딸의 원통한 넋은 한 마리 새로 다시 태어나 ‘풀국 풀국’ 하며 운다고 한다. 풀국을 먹다가 죽은 것이 서러워서 그렇게 운다는 것이다. 이것이 풀국새 전설이다. 셋째, 박국새 설화다. 유명한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나온다. 두레박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은 꿈에도 그리던 처자와 다시 만났다. 반가운 것도 잠시, 이번에는 지상에 남겨두고 온 늙은 어머니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선녀는 천마를 내주며 이것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가되 말이 세 번 울기 전에 다시 올라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올라올 수 없게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아들을 만난 노모는 아들이 좋아하는 박죽을 끓여주었다. 그런데 박죽은 너무 뜨거워 먹을 수가 없었다. 그 사이에 천마가 두 번 울었다. 당황한 아들은 서두르다 뜨거운 박죽을 말잔 등에 엎지르고 말았다. 천마가 깜짝 놀라 날뛰는 서슬에 나무꾼은 땅에 떨어졌다. 말은 세 번째 울음을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결국 하늘나라로 되돌아가지 못한 나무꾼은 죽어서 새가 되어 박국 때문에 승천하지 못한 것을 원망하며 ‘박국 박국’ 운다고 한다. 1,씨 뿌려라 씨 뿌려라같은 뻐꾸기의 울음을 들으면서 떡국, 풀국, 박국으로 달리 들어, 여기에 이야기를 꾸며서 전설로 엮었다. 보통 뻐꾸기의 한자 이름은 포곡(布穀)으로 표기한다. 중국 음으로 읽으면 ‘푸구(뿌꾸)’니까 우리가 ‘뻐꾹’으로 듣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이것을 의미로 읽으면 ‘씨 뿌려라’라는 뜻이 된다. 뻐꾸기가 파종기에 울기 때문에, 농부에게 씨 뿌릴 때가 되었다고, 어서 서둘러 씨를 뿌리라고 운다는 것이다. 뻐꾹뻐꾹(씨 뿌려라! 씨 뿌려라!) 권필의 「포곡(布穀)」이란 작품이다. 임진왜란 당시에 지은 시다. 뻐꾸기가 하루 종일 씨 뿌리라고 울어댄다. 막상 시골 마을은 씨 뿌릴 남정네가 한 명도 없다. 그네들은 전쟁에 끌려가 생사조차 모르거나 아니면 진즉에 세상을 떴다. 저물녘엔 이 집 저 집에서 과부들의 통곡 소리만 들려온다. 씨를 뿌려야 하는지 몰라서 안 뿌리는 것이 아닌데 저 철없는 새는 자꾸만 씨를 뿌리라고 울어댄다. 그 사이에 논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웃자랐다. 새벽녘 말을 달려 외론 성에 들어서니 고려 때 시인 정윤의(鄭允宜)의 「서강성현사(書江城縣舍)」란 작품이다. 새벽녘에 말을 달려 성에 들어선다. 밤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를 맞아준 것은 뻐꾸기 소리뿐이다. 여기서도 뻐꾸기는 어서어서 봄 밭갈이를 하라고 울어댄다. 하지만 울타리 안에 벌써 살구 열매가 매달린 것으로 보아 계절은 봄에서 이미 여름으로 넘어왔다. 성안에서는 사람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봄 파종도 하지 못하고 이 성을 떠나 어디론가 피란길에 올랐던 것이다. 대개 고려가 몽골과 싸워 온 나라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을 때 지은 작품이다. 그런가 하면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법금(法禁)’, 즉 ‘법으로 금한다’는 뜻으로 풀이한 재미난 시도 보인다. 법금 법금! 양경우(梁慶遇, 1568~?)의 「법금(法禁)」이다. 시인은 뻐꾸기의 울음을 ‘뻐꾹’으로 듣지 않고 ‘법금’으로 들었다. 뻐꾸기가 자꾸만 ‘법금! 법금!’ 하며 운다. 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번에는 무슨 법으로 옭아 넣으려고 저러나? 말장난의 기미가 강한 작품이다. 그러면서 위아래의 질서가 무너진 어지러운 현실에 대한 개탄도 담았다. 지키기 힘든 법을 제정해서 백성을 괴롭히다가 결국 자기가 만든 법에 저촉되어 죽임을 당했던 진나라 상앙(商鞅)의 후손이라도 되느냐고 타박했다. 세상이 이렇게 잘 돌아가는데 무슨 심보로 자꾸만 법으로 금한다고 우느냐는 타박이다.
2,헌 바지 벗자중국에서는 뻐꾸기 울음소리를 탈각파고(脫却破袴), 즉 ‘해진 바지 벗자’로 듣기도 했다. 『본초강목』을 비롯해 여러 문헌에 관련 기록이 있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 한시에서도 뻐꾸기 울음소리를 바지 벗자로 들은 작품이 여럿 있다. 탈고 탈고(바지 벗자! 바지 벗자!) 이양오(李養五)의 「탈고(脫袴)」란 작품이다. 탈고는 중국 음으로는 ‘퉈쿠’다. 쿠를 단음으로 읽으면 ‘뻐꾹’과 비슷한 음이 된다. 새봄이 왔으니 새 옷으로 갈아입으라고 뻐꾸기가 자꾸만 울고 있다. 간밤에 비가 와서 뽕잎이 저리도 이들이들하니 저것으로 어서 누에 치고 실을 자아 베를 짜서 새 바지로 갈아입으라고 야단이다. 그렇지만 세금이 하도 무거워서 농사지은 것을 죄 가져다 바치는 것으로도 부족해 아낙이 길쌈하는 베도 남아날 게 없으니, 새 바지를 갈아입고 싶어도 무슨 수로 갈아입겠느냐는 푸념을 담았다. 탈고 탈고(바지 벗자! 바지 벗자!) 김안로의 「탈고(脫袴)」다. 작품의 주석에 분명히 뻐꾸기라고 밝혀놓았다. 뻐꾸기가 자꾸만 다 떨어진 바지를 벗어버리라고 운다. 헌 바지를 버리고 새 바지를 지어 입는 것이 좋은 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목화밭에는 목화꽃이 필 줄 모르고, 뽕나무엔 뽕잎이 매달리지 않아 애써 키운 누에마저 굶겨 죽일 판이다. 3년이나 거듭된 가뭄에 밭에서는 먼지만 풀풀 인다. 그런데도 관리는 세금을 거두는 데 혈안이 되어 돌아다니니 새 옷 입을 꿈이나 꾸겠느냐는 이야기다. 3,나라 찾자 복국조(復國鳥)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의장청조(依杖聽鳥)」 10수 연작 가운데 한 수다. 망한 나라의 뻐꾸기는 더 이상 한시에서처럼 포곡, 즉 씨 뿌리라고 울거나 법금, 곧 법으로 금한다고 울지 않는다. 복국(復國), 즉 ‘나라 찾자’고 운다.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뻐꾸기가 ‘나라 찾자 나라 찾자’ 하고 울어댄다. 그 소리로 민중의 정신을 각성시키는 지사의 넋을 지닌 새라고 보았다. 이 시기에 이런 독법이 상당히 보편화되었던지 사설시조에도 뻐꾸기는 복국조로 등장한다. 거미야 왕거미 떡거미야 네 줄을 길게 늘여 1910년 7월 12일 『대한민보』에 실린 「지주(蜘蛛)」, 즉 거미를 노래한 사설시조다. 역시 뻐꾸기를 복국조로 표기했다. 당시 뻐꾹새가 국권 회복의 상징으로 자리잡아가던 정황을 알려준다. 거미더러 다른 것은 다 거미줄에 얽어 잡아먹더라도 적막공산서 홀로 우는 복국조만은 얽어들이지 말라고 권유했다. 종장은 거미의 대답이다. 내 비록 미물에 지나지 않지만 나도 생각이 있는데 복국조를 얽기야 하겠느냐고 했다.
우리말 노래 중에 뻐꾸기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작품은 고려가요 「유구곡(維鳩曲)」이다. 그 가사를 현대어로 풀면 다음과 같다. 비둘기 새는 비둘기 새는 비둘기가 울기는 해도 뻐꾸기가 더 좋다는 이야기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른다. 『시용향악보』에 실려 전할 뿐이다. 이밖에 고려 예종은 「벌곡조(伐谷鳥)」, 즉 「뻐꾸기」란 노래를 지어 교방의 기생들에게 부르게 한 일이 있다. 노래에 얽힌 이야기는 이렇다. 예종이 자신의 허물과 정치의 잘하고 잘못함을 듣고 싶어 널리 언로(言路)를 열어놓았지만, 여러 신하가 혹시 자신의 본뜻을 곡해해서 입을 다물까 염려해 이 노래를 지어 부르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가 전하지 않는 이 작품이 바로 위의 「유구곡」과 같은 작품일 것이라 보는 견해가 있다. 비둘기처럼 속으로 삼키며 우물쭈물하는 울음소리 말고, 누구나 분명히 들을 수 있도록 저 뻐꾸기처럼 시원스럽게 바른말을 해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4,꼭꼭 숨어라 숨바꼭질 새한편 조선 후기의 시인 이양연은 「미장조(迷藏鳥)」란 작품을 남겼다. ‘미장(迷藏)’은 우리말로 하면 술래잡기다. 미장조는 술래잡기 새란 말이다. 이 또한 다름 아닌 뻐꾸기 이야기다. 저 먼 곳의 술래잡기 새 시에 붙은 주석에는 “우리나라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이 뻐꾸기 소리를 내므로 뻐꾸기를 이름하여 술래잡기 새라고 한다”고 써놓았다. 아이들이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 술래가 저 숨은 곳을 못 찾고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으면 숨은 녀석은 ‘뻐꾹뻐꾹’ 하면서 공연히 제가 있는 곳을 알려준다. 그래서 술래를 저 있는 쪽으로 유인하자는 속셈이다. 그렇다면 3, 4구는 무슨 이야기일까? 조선 중기 권응인(權應仁)의 『송계만록(松溪漫錄)』에 보면 뻐꾸기 은사(隱士) 이야기가 나온다. 선비들이 말로는 강호자연이 좋아 강호에 숨어 산다고 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뻐꾹뻐꾹 하며 자기 존재를 알리는 뻐꾸기처럼 나 여기 숨어 있다며 세상을 향해 저 있는 곳을 알리려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 뻐꾸기 은사는 숨어 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숨어 사는 뜻 높은 선비라는 소문을 얻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다시 말해 선비들이 겉으로는 귀거래를 되뇌고 은거를 예찬하면서도 속마음은 티끌세상에 있어 자꾸만 세상을 향해 제 존재를 드러내려 하는 꼴을 두고 권응인은 눈꼴이 시어 ‘뻐꾸기 은사’란 말로 이들을 조롱했다.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할 때 ‘뻐꾹뻐꾹’ 하고 소리를 내는 바람에 뻐꾸기는 영문도 모르고 술래잡기 새란 별명을 얻은 셈이다. 제 몸을 봄 숲속에 감추어두고 자꾸 나 여기 있다고 뻐꾹뻐꾹 하고 우니 너의 속셈도 아마 숨는 데 있지 않고 나 여기 있으니 찾아오라고 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있는 모양이라며 삐죽거린 것이다. 이렇듯 뻐꾸기는 늘 생활공간 가까이에서 친숙하게 그 울음을 들을 수 있는 새였기에 그 울음소리에서 여러 연상을 떠올려 재미난 생각을 참 많이 했다. 5,탁란하는 얌체족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직접 품지 않고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의 둥지에 몰래 낳아 대신 기르게 하는 얌체족이다. 뻐꾸기과 새의 탁란(托卵) 습관에 대한 언급은 아주 앞선 시기로까지 소급된다.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글 가운데 이미 뻐꾸기와 숙주의 관계에 대한 관찰 기록이 보인다. 기원전 414년 그리스의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작품 「구름(Nephelai)」에서 어떠한 보호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일종의 유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그는 그 유토피아를 ‘Nephelococcygia’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영어로는 ‘cloud-cuckoo-land’다. 풀이하면 ‘구름 속 뻐꾸기 나라’쯤 되겠는데, 이것은 아리스토파네스 또한 뻐꾸기의 탁란 습관을 알고 있었다는 유력한 증거다. 알을 낳기만 할 뿐, 품고 먹여 기르는 것은 다른 새가 대신 다 해주니, 육아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뻐꾸기이겠기에 따온 연상이다.
영국의 시인 초서(Geoffrey Chaucer)도 1382년에 지은 「새들의 의회(The Parliment of Foules)」란 작품에서 뻐꾸기 새끼를 탐욕의 상징으로 인용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는 “바위종다리가 뻐꾸기 새끼를 먹여 길렀더니 그 새끼가 바위종다리의 머리를 집어삼키네”라는 대사가 보인다. 바위종다리는 더넉(Dunnock)이란 이름의 새로, 뻐꾸기가 탁란을 하는 새의 이름이다. 조그만 녀석이 제 몸집보다 훨씬 더 큰 뻐꾸기 새끼를 먹일 때 머리가 온통 입안으로 들어가다시피 한 것을 떠올려 쓴 대사다. 중국의 옛 전적에도 이 탁란에 대한 관찰이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172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00년도 훨씬 더 된 기록이다. 『죽서기년(竹書紀年)』 13편 중에 “황제 신(辛) 3년에 참새가 새매를 낳았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전국시대의 저작인 『공자가어』 「의해(義解)」편에는 “옛날 은나라 주왕(紂王) 때 성 귀퉁이에서 참새가 큰 새를 낳은 일이 있었다. 이를 점쳐보고 말하기를, ‘무릇 작은 것이 큰 것을 낳았으니 나라가 반드시 왕성해지고 이름이 반드시 창대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에 주임금이 참새를 믿고 덕을 닦지 않으며 나라의 정사를 포악하기 그지없이 하여 신하들이 밖의 노략질을 막을 수 없게 되었으므로 은나라가 망하기에 이르렀다”고 앞서의 기록을 부연했다. 또 한나라 때 유향이 엮은 『신서(新序)』에는 “송(宋)나라 강왕(康王, 재위 기원전 1067~기원전 1041) 때, 성 귀퉁이에서 참새가 새매를 낳은 일이 있었다. 사관을 시켜 점치게 하자 ‘작은 것이 큰 것을 낳았으니 반드시 천하를 제패할 것입니다’ 하였다. 강왕이 크게 기뻐하여 승(勝)과 설(薛)을 멸하고 회수 북쪽의 땅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에서는 모두 “참새가 새매를 낳았다”고 적고, 이것을 작은 것이 큰 것을 낳았으니 장차 큰일을 이루려는 조짐으로 읽었다. 아마도 작은 뱁새가 뻐꾸기 새끼를 먹이는 것을 보고 이렇게 착각하여 적은 듯하다. 뻐꾸기는 새끼의 깃이 새매와 흡사하다. 뻐꾸기나 두견이가 뱁새나 붉은머리오목눈이 같은 작은 새의 둥지에다 탁란하려 할 때는 교묘한 모방 행동을 해서 작은 새를 겁준다. 뻐꾸기과의 새들은 모방 행동에 능할 뿐 아니라 크기나 양 날개를 펼친 모습, 가슴과 배의 무늬 등이 모두 맹금류의 매와 비슷하다. 그런 까닭에 매가 숲을 빙빙 선회하듯 알을 낳은 작은 새의 둥지 위를 맴돌면 뱁새 등은 매가 저를 습격하려는 줄 알고 겁을 먹고 달아난다. 그러면 그 틈을 타 뻐꾸기는 재빨리 그 둥지에 알을 낳고 달아난다. 이때 걸리는 시간은 대략 10초 안팎이다. 그렇지만 뻐꾸기의 탁란 준비는 상당히 주도면밀하다. 예를 들어 뱁새의 둥지에 탁란을 하려 하면 며칠간 눈치를 살핀다. 뱁새가 하루에 한 알씩 낳으면 두 개째 낳는 날에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재빨리 알 한 개를 없애고 그 자리에 자신의 알을 낳는 것이다. 또 시간을 놓쳐 뱁새의 새끼가 이미 부화했다면 아예 새끼들을 없애버리고 알을 낳기까지 한다. 옛사람들은 철새의 개념을 잘 몰라 늘 보이던 새가 보이지 않으면 땅속에 공처럼 몸을 말고 들어가 겨울잠을 잔다거나, 아니면 다른 새로 변화한다고 믿었다. 뻐꾸기는 특별히 모방 행동에 능했으므로, 옛사람들은 뻐꾸기가 계절에 따라 새매로 화생한다고 믿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은 일일이 예거할 수 없을 정도다. 기원전 290년경 전국시대 위 양왕의 묘에서 출토된 『죽간고적(竹簡古籍)』에는 “경칩에서 열흘이 지나면 매가 변화하여 뻐꾸기가 된다. 매가 변화하여 뻐꾸기로 되지 않으면 외적의 침입이 빈번해진다”고 했다. 『열자(列子)』에도 “익더귀가 새매가 되고 새매는 뻐꾸기가 된다. 뻐꾸기는 오랜 뒤에 다시 익더귀가 된다”고 적혀 있다. 또 옛사람들은 뻐꾸기와 같이 탁란의 습성을 지닌 새는 스스로 둥지도 짓지 않고, 참새류의 둥지를 빼앗아 산다고 생각했다. 『시경』 소남(召南)의 「작소(鵲巢)」에는 “까치집이 있는데 뻐꾸기가 사는구나”라고 했다. 이래저래 뻐꾸기는 새 가운데 얌체족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글/정민 집필자 소개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아울러 한..펼쳐보기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아울러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 『우리 한시 삼백수』,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을 펴냈고 어린이들을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도 썼다. 충북 영동 출생. 한양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꼼꼼히 읽어 『비슷한 것은 가짜다』와 『고전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냈다. 아울러 한..출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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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민 | cp명글항아리 도서 소개
옛사람들의 새에 대한 이해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새에서 새를 보기보다는 인간을 보았다. 새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반추해보았..펼쳐보기 옛사람들의 새에 대한 이해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새에서 새를 보기보다는 인간을 보았다. 새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반추해보았다. 새의 행동, 새의 생태 하나하나는 모두 인간세계의 도덕적 준칙에 따라 판단되어 좋고 나쁨이 결정되었다. 새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바탕으로 새와 관련한 옛 문헌과 회화, 고전문학을 총망라하였다. 옛사람들의 새에 대한 이해 방식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그들은 새에서 새를 보기보다는 인간을 보았다. 새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반추해보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