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유감(有感)-'카톡' 퍼온 글
오늘은 세종대왕이 중국말을 사용해서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백성을 불쌍히 여겨 한글 창제를 기념하는 한글날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인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일제강점기 주시경(周時經) 선생이 `크다`, `바르다`라는 뜻이 담긴 `한글`로 부르자고 했다. 한글의 본래 이름은 `언문(諺文)` 또는 `암글`이라 불렀는데 평민(상놈)이 쓰는 글자라는 뜻이다. 5백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인간만큼 한글도 많은 아픔을 겪었다. 양반은 한글을 천대하였으며 연산군 시절에는 그의 학정을 비난하는 한글로 된 글이 나돌자 언문을 가르치지도 말고 배우지도 말라고 했다. 이미 배운 사람도 못쓰게 하였으며 언문을 아는 자는 고발당했다. 일제강점기 때는 우리 민족의 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의 혹독한 탄압정책으로 당시 조선어학회와 한글학자들이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 한글이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일상에서 각종 외래어, 은어, 속어가 난무하고,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무분별한 줄임말, 국적불명의 외계어 등의 사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시대가 발전하고 세대가 바뀌면 사회적인 흐름에 따라 언어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마련이다. 국제화시대인 지금 외래어 사용이 필요한 부분이 있겠지만 우리말을 이해하고 익히는 노력 없이 무조건 외래어를 남발하는 게 문제다.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일본이나 서양 것이 좋다는 편견에 빠져 외국어를 써야 지식인으로 취급한다. 영어교육이 우리사회에서 곽광을 받는 이유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커피, 컴퓨터, 코로나, 엔진, 헬리콥터 등은 외국에서 들어온 말이지만 국어처럼 쓰이는 단어라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네일 아티스트(손톱미용사), 레시피(조리법), 싱크탱크(두뇌집단), 펙트(사실), 콘서트(연주회), 시뮬레이션(모의실험) oo포럼, oo심포지움, oo워크숍은 토론회, 연수회로, 이런 것은 반드시 우리말을 써야 된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요사이 `언텍트(비대면/비접촉)`이란 말을 자주 접한다. 나훈아 언텍트 공연, 언텍트 수업, 언텍트 마라톤대회를 `비대면/비접촉`으로 바꿔서 쓰면 좋겠다. 손흥민 선수가 `햄스트랭`부상이라는 뉴스를 보고 `허벅지 뒤쪽 근육`부상이라 말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코호트, 헤시테그, 인스타그램, 컨셉, 매니페스트, 패러디... 스마트폰으로 검색 해봐도 금방 잊어버리는 단어들이다.
아파트 이름도 우리말 놔두고 이상한 외래어가 많다. 시골의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도록 어렵게 지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힐스테이트(언덕나라), oo팰리스(궁전), oo캐슬(성), 루체하임, 그라시움, 블레스테지, 리센츠, 헬리오시티 등은 2~3개의 합성어로 알고 있다. 확실한 것은 아파트 이름이 집값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어 간판도 마찬가지다. 페이스샵, 모닝글로리, 큐티플러스, 뮤직티, 메디컬센터... 사방천지가 외국어간판이다. 이 같은 한글파괴에는 정부와 공공기관도 앞장서고 있다. 코레일, K-Water, 캠코, 중소벤처기업부, LH공사, SH공사, `농협`이 `NH`로 바꾸더니 이제는 NongHyup 이라고 커다랗게 써 붙였다. 농협이 농민을 상대하기 위해 만든 은행이 아닌가? `디테일하다`는 디테일(detail 상세/세부)의 영어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무식꾼이 된다.
우리말은 중국의 표의문자(表意文字/ 뜻글자)에 기반을 둔 표음문자(表音文字/ 소리글자)로 70~80%가 중국 글자다. 그래서 漢字의 도움 없이 한글만으로는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의사전달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가 `2연패`했다는 기사를 보면, 두 번 졌다(連敗)는 말인지, 두 번 우승(連覇)했다는 뜻인지 끝까지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공사관계로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에서 순 우리글은 로, 에, 을, 드려, 합니다, 뿐이고, 工事, 關係, 通行, 不便, 罪悚은 전부 중국 글이다. 고속도로 공사구간에 `노견 없음`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늙은 개가 없다는 뜻이냐 뭐냐는 항의에 `갓길 없음`이라는 예쁜 우리말로 고쳐 쓰고 있다. 참말로 웃기는 것은, 노견의 漢字는 길(路), 어깨(肩)인데, 유식한 채하느라 `길 어깨 없음`이란 안내판이 있었다. 이거 농담 아니고 진짜다. 동네 뒷골목에 `oo동 하수관거 BTL공사`란 현수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수관거(下水管渠)는 폐수나 빗물을 모아 하수처리장으로 보내는 것이고, BTL은 민간이 투자하여 공사를 한 뒤 국가에 이전하고 임대료를 받는 조건을 말한다. 음악그룹 BTL과 전혀 연관이 없다. 그냥 `민간투자 하수관 공사`라 했으면 좋으련만 왜 이렇게 알지 못하는 어려운 말로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차를 타고 달리는데 친구가 `염수분사구간`이 뭐냐고 묻기에 농담으로, 염소가 똥을 싸는 구간이라고 했다. 겨울철에 도로가 얼지 않도록 소금물을 뿌리는 것인데, 달리 나타내는 방법은 없을까? 북한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을 `습근평`이라 부른다. 만약 “습근평 씨 안녕하세요?”하면 알아듣겠는가? 우리가 즐겨먹는 `부사`라는 사과가 있다. 부사(富士)는 일본말로 `후지(FUJI)`라 부르는 사과품종의 이름이다. 따라서 `습근평`이나 `부사`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시진핑`, `후지`로 부르는 게 원칙이다.
9년 전,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쳐줘야겠다는 큰 뜻(?)을 품고 경주 동국대학교 국제교류교육원에서 두 달간(120시간) 한국어 교원 양성과정을 이수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이상을 졸업한 사람이 이 과정을 수료하면 한국어교사3급 시험자격이 주어진다. 어릴 때 꿈이었던 선생이 되고 싶어서다. 그런데 평소에 쓰는 우리말이고 글자니까 문법정도나 알면 되는 줄 알았다. 천만의 말씀이었다. 발음, 어휘, 문법, 말하기, 듣기, 쓰기 등 과목 수만 열 가지가 넘는다. 우선 맞춤법을 살펴보자. 몇일/며칠, 역활/역할/, 오랫만에/오랜만에, 왠 일이야/ 웬 일이야, 희안하다/희한하다, 웬지 모르게/왠지 모르게, 내일 뵈요/내일 봬요, 치고박고/치고받고, 폐가망신/패가망신, 활인/할인, 있슴/있음, 설겆이/설거지... 여기서 앞의 것이 틀린 말인데 헷갈릴 것이다. ~로서/~로써, 넘어/너머, ~데/~대, ~에/~에게, 율/률, 어떻게 이해하고 가르칠 것인가? 띄어쓰기는 더 어렵다. 대표적인 것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에서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는지`, `가방에 들어가시는지`붙여 쓰면 알 수 없다. `서울대공원`이 서울에 있는 대공원인지, 서울대학에 있는 공원인지? 교원자격시험은 더 어려워서 합격률이 10%도 채 안 된다고 했다. 실제 기출문제를 살펴봐도 틀리도록 유도하는 문제가 많았다. 자신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지만 한글이 과학적이니, 알기 쉽다느니 마치 세종대왕처럼 행세하는 사람, 나오라 그래! 한글날에 漢字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면 맞아죽을 일이지만, 중국에서 들어온 漢字가 우리 학문과 생활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마산의 무학산은 학이 춤추는듯한 형상이라 무학산(舞鶴山)인데, 漢字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은 학이 살지 않는 무학산(無鶴山)이 되어버린다.
일본식민지교육으로 길들여져서 그런지 일본말과 일본식 漢字가 판을 치고 있다. 앗사리, 짬뽕, 유도리, 노가다, 시다바리, 세꼬시, 고도리, 고참(古參), 납득(納得), 대다수(大多數), 잉여(剩餘), 택배(宅配), 대절(貸切), 낭인(浪人), 대합실(待合室)... 일본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고쳐야할 말들이다.
지금 한글이 영어보다 푸대접 받으며 점차 외래어에 밀려나고 있는데도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한국어 열풍이 부는데 한국은 오히려 외래어 천지에서 살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국적불명의 신조어들이 자고나면 생기니, 나 같은 영감쟁이는 따라가지 못해 꼰대소릴 듣게 된다. 추캉스, 악플러, 금스크, 확찐자, 뉴 노멀, 쓱세권, 코로나 블루, 코비디어트, 동학개미, 빚투, 영끌, 코로노미 쇼크, 애빼시... 답답하면 인터넷 검색을 바란다. 가수 서태지(SEO TAIJI)는 성(姓)이 서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