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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詩창작원 형상시학 원문보기 글쓴이: 윤배박셈
꽃비를 읽다
반유림
간밤 꿈의 귓불에 닿던, 몸통 시커먼 벚나무의 숨결들
간지러운 속삭임들을 얼음장 밑에 모아둔다
얼굴 마주한 연인들이 비치고
아기 손톱만한 꽃비가 흘러내릴 때
희뿌연 먼 산은 분홍 속옷 갈아입는다
한동안 초록 속에 묻혀 지낼 내 꿈은
발등 간질이는 치맛바람 되어 어디쯤 산들산들 걸어오는가
갓 깨어난 나비의 날개가 헐겁게 지우는 공중에서
구름은 자유롭고, 다발로 맺힌 한 여자의 생도
초록을 버리고 붉음을 버리고
검게 익어가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날개로 저울질하는 행복의 무게는 늘 같아도,
봄 나무 아래서 꾸는 내 꿈은
쓴맛을 뛰어넘은 단맛에 혀뿌리마저 길들여졌다
◇반유림= <계간문예>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옴. 대구문인협뢰, <형상시학회>회원.
<해설> 또 한 번의 벚꽃이 피었다가 지고나면, 꽃이 질 때, 그 난분분 흩날리는 꽃잎 속에 서서 자신에게 남겨진 몇 번의 꽃필 봄을 헤아려 본다. 그럴 때마다 후회를 남기지는 말아야겠다고 남은 봄에게 새롭게 보여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시인은 아마도 떠나는 꽃잎을 좀 더 붙잡아 두고 싶었나보다. 얼음장 밑에 모아두다니! 꽃이 떨어지고 나면 와락 달려드는 초록인 걸 알기에 분홍 속옷을 갈아입는 시인은 섬세하다, 시커먼 몸통의 벚나무를 한 여자의 생으로 환치하고 꽃잎과 나비를 데려다 놓은 시인은 봄나무 아래서 쓴맛을 뛰어넘는 어떤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쓴 맛 그 뒤에 밀려오는 단맛의 자유스러움을 한편으로는 꿈꾸면서.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