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작가가 대한민국 정치 바닥을 비평하면서 언급해 화제가 된 책이 『침팬지 폴리틱스』(프란스 드 발 저자 /장대익, 황상익 번역, 바다출판사, 2018)다. 2년 전 무능한데다 사악하기까지 한 자가 무리의 우두머리로 거들먹거릴 때부터 전혀 사그라들지 않는 울화 때문에 내내 고통스러웠는데 유시민이 침팬지를 빗대 현상을 진단하는 걸 듣고 큰 위로를 받았다. 해박한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했으면서 대중이 알아듣기 쉬운 화법으로 공감을 극대화시키는 측면에서 유시민은 이미 완숙한 경지에 올랐고 우리 시대를 대변하는 지성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저자인 프란스 드 발은 『침팬지 폴리틱스』를 통해 진화론의 맥락과 침팬지들이 보여주는 고도의 정치 활동을 결합해 정치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정치적 기원 또한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 됐다고 주장했는데 침팬지 무리들을 통해 인간의 권력 속성까지 그려낸 역작으로 자자하단다. 유시민은 책에 등장하는 침팬지의 권력 투쟁을 작금의 한국 정치에 포개 상황을 이해시키고 앞으로를 예견했는데 가히 탁견이다. 여러 내용 중에 특히 인상적인 한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정치적인 생각과 행위를 하게 만드는 유전학적 기초 또는 생물학적 기초를 침팬지와 공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호모사피엔스가 침팬지는 아니에요.
침팬지는 수컷 침팬지들이 서열 1위가 되려고 막 여러가지로 본능적으로 행동하는데 그렇다고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는 건 아니에요. 암컷을 독점하지 않고 자기가 암컷과 교미를 하는 비율이 모든 수컷들 중에 제일 높은 것으로 만족하는 거예요. 딴 수컷이 암컷들하고 교미하는 것을 쫓아다니면서 징벌을 하질 않아요. 자기 보는 데서만 안 하면 돼. 그러니까 저쪽 후미진 데 가서 하는 것에 대해 뭐라 하질 않아요. 관용이죠. 독식하지 않아요. 그리고 보안관 행동을 하잖아요. 그것도 본능적으로 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나는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뭘 할 건가' 이런 고민을 하죠. 그러니까 권력을 추구하는,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욕망, 이것은 유전학적 기초가 있고 생물학적으로 우리가 진화를 통해서 얻은 본능이라 치더라도 이 본능을 발현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문화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무엇이 선한가,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훌륭한가, 이런 기준을 갖고 살아가는 거예요. 우리 인간이 하는 정치는 선, 미, 진 이런 가치들이 있는 거예요. 침팬지들하고는 달라요. 그런데 우리가 이 현실 정치를 분석하거나 해석하면서 챔팬지 폴리틱스를 갖고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지금 벌거벗은 권력 투쟁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윤석열 정권이 하고 있는 검찰권 사용 행태도 다른 무리들이 가지지 못한 무기를 가지고 공격하는 거거든. 검찰권이라는 것은 윤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거예요. 자기만 가지고 있는 무기로 상대방을 살상하려고 하는 정치를 하는 거예요. 이건 매우 본능적인 거거든요.
이 이론을 갖다 대야 하는 자체가 비극이예요 지금. 우리 정치의 비극이고 참극이예요. (유시민, <매불쇼> 팟캐스트에서)
책을 주문하려니 절판이란다. 침팬지 권력 투쟁기를 읽으면 그간 혐오했던 신문 정치란을 다시 디다볼 수 있을까. 하여 위대한 반격을 준비할 태세를 갖춰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