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미나리꽝
며칠 간 시골(충남 보령 화망마을)에서 머물렀다.
서늘한 5월 초순의 쾌청한 날씨.
중천에 뜬 달, 보름 달빛이 처연했다. 섬뜩하리만큼 고즈넉하고, 초년 과부의 차가운 낯빛 같았다.
낮에는 땡볕.
은행나무 그늘이 지는 금잔디 위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책을 보다가 서늘해질 무렵이면 잠깐씩 스무 평 남짓의 텃밭을 가꾸었다.
오랫동안 쟁기질을 전혀 하지 않은 채 묵혔던 너른 밭은 잡초만 그득했다.
산에서 날아온 나무-씨앗으로 산뽕, 찔레넝쿨, 이름도 모를 나무도 크고 있었다.
삽으로 잡초를 조금씩 밀어 낸 뒤에 흙을 파 뒤엎었다.
한 평 쯤의 미나리꽝을 만들었다.
재작년, 작년에 걸쳐서 어머니가 동네 논두렁 밑, 개우랑에서 돌미나리 뿌리를 뜯어다가 밭에 옮겨 심었던 것이 용케도 살아 남았다. 얼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쑥 뜯으려고 밭을 어슬렁 거리던 아내가 돌미나리 뿌리를 발견했다고 삽으로 떠 주기에 나는 흙을 파야 했다. 물기 하나 없는 매마른 윗밭에서 키울 수 있으련지...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
올봄에도 노쇠한 어머니가 주전자로 물을 길러다가 부어서 키운 반 평쯤의 미나리는 제법 많이 뿌리가 번졌다. 물을 길러다가 뿌려주면 마른 밭에서도 능히 키울 수 있다는 뜻.
미나리꽝을 더 늘렸으니 아흔 살의 쇠잔한 어머니가 물 길러 주기에는 벅차고 힘들 터.
내가 짬짬히 고향 내려갈 때마다 호스로 물 대주면 충분히 키울 수 있겠다.
오랜 가뭄으로 앵두나무 잎새가 시들었는데도 밤이슬 맞은 열매는 큰애기 젖꼭지만큼이나 자잘하게 크고 있었다. 내 어머니가 젊은날 혼자서 팠다는 다섯 길 반의 샘.
샘물이 마를까 봐 걱정하면서도 풀섶에 있는 나무뿌리에 긴 호스로 연결하여 물을 두어 차례 대주었다.
보름 뒤인 5월 말쯤이면 빨갛게 익은 앵두를 딸 수 있으리라.
나무 밑 주변의 풀을 낫으로 쳐돌렸다. 낫의 날이 무딘 탓으로 힘만 들었지 풀이 잘 베어지지 않았다.
앵두를 딸 때 발밑을 덜 조심해도 되겠다. 십 년 가까이 가꾸지 않은 묵정밭에서는 율무기-독사가 서식하는 곳. 풀 속이 늘 두렵고, 발밑이 무서웠다.
재작년 곶뿌래 뒷산 신한재(산)에서 누나, 아내, 내가 캐다가 심은 참취가 제법 많이 번졌다.
밭에 심기만 했지 전혀 가꾸지도 않았는데도 매말라 죽지 않고, 얼어 죽지 않고 용케도 살아서 봄철에 어린 잎새를 내밀었다.
잡초를 뽑아내던 아내가 참취 잎새를 뜯었다. 개망초 잎새, 머위와 함께 삶아서 나물로 무치니 제법 먹을 만했다. 송화가루 날리는 토요일 아침에 감나무골 이종사촌 큰형네에 들러서 고추 묘 30포기와 가지 묘 6포기를 얻었다. 윗밭에 옮겨 심은 뒤에 샘물을 대주었다.
이른 봄철에 종조모(87세, 혼자 사심)가 보령시 대천시장에서 산 어린 상추모종 열댓 포기를 얻어 오신 어머니.
내가 텃밭에 옮겨 심었더니만 이제는 제법 많이 컸다.
내가 서울에 머무는 동안에 어머니가 주전자로 물을 떠서 주어서 키웠다는 뜻.
우리 내외는 잎사귀를 뜯어서 쌈 싸 먹었다. 이가 없는 노모는 한 잎도 잡수시지 못하고.
어제 서울 올라올 때 한주먹 뜯어 왔다.
어제까지 시골에서는 5월 초순인데도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날씨가 뜨거웠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
서울에서는 세찬 비가 내린다. 반가운 빗소리.
시골에도 흠뻑 내려서 묘판의 모가 부쩍부쩍 컸으면 좋겠다. 5월 말부터 모내기해야 하니까. 농사꾼,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 모두한테도 단비는 반가운 손님일 터. 어머니의 땅인 대지를 흠뻑 적셨으면 싶다.
2009. 5 . 11. 월요일.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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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사랑....> 카페.
나는 예전에는 회원이었으나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다.
1949년 생인 나는 노인으로 밀려났기에.
여기에 퍼서 올린다.
다음 5월 초순에는 시골(보령시 웅천읍 화망/곶뿌래)에 다녀와야겠다.
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지도 만5년이 더 지났다.
위 이야기는 이제는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뒤로 사라지고 있다.
11년 전의 생활일기, 이런 이야기가 어떤 카페에 남았기에 다시 옛생각을 떠올린다.
2020. 4. 30. 수요일. 유나니가...
첫댓글 최윤환 선생님
돌미나리꽝 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저
의문사항
1이태 전 지난해 읽고 헤갈려요
예) 1998년 표기하면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1이것은
다른 시인이 써 놓은것
강 시인 뻐꾹이 이 시인 뻐꾹기
인터넷 찾아 보니 (뻐꾸기) 나와요 해서 뻐꾸기로 표기 했어요 여쭈어 봅니다?
2009년 11월에 쓴 일기이지요.
이해가 잘 안 되는 문구 '이태 전, 지난해' 은 '재작년, 작년'뜻이지요.
제 어머니는 2007년, 2008년. 두 해에 걸쳐서 돌미나리를 캐다가 밭에 심었지요.
'이태 전, 지난해' 를 '재작년, 작년'으로 고쳤습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고쳐야겠지요.
제 입말에는 '이태 전, 지난 해'인데...
저는 산골마을의 방언에 길들여졌나 봅니다.
질의하신 1) 뻑꾹이 2) 뻐꾸기. 어느 것이 맞느냐의 질문이군요.
뻐꾸기가 맞지요.
답글
감사드립니다
저 의문 풀렸습니다
@김상문
고맙습니다.
저는 이런 지적이 정말로 고맙지요.
덕분에 충남 서해안 보령 산골마을의 방언에 길들여진 제 입말이기에...
표준어가 아닌 방언 등을 서로가 가리켜주면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국보 사무실에 들러서 문학지 5월호, 동인지를 받았기에
지금 두툼한 책을 읽고 있었지요.
일기(산문) 골라서 국보 사무실에 전송해야 하는데... 또 스트레스입니다.
글 다듬는 것이 나한테는 무척이나 어렵대요.
지방 방언에 길들여졌기에... 서해안 보령지방의 방언은 전북 군산 쪽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배로 통래를 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