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주워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에서는 "라떼는 말이야."하고 어르신들이
말하면 젊은이들은 호기심을 갖고 듣는다고 한다.
살아온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체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궁금증과 오랜
세월,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성공한 어르신에
존경심을 갖는다고 한다.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어르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지곤 했다.
뜨거운 햇살이 지고 어슴푸레해지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할아버지,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돌담 사이에 활짝 핀 부용화도 달빛에 다소곳하다.
이웃 어르신들은 삶은 감자나 옥수수를 들고 놀러
오셨다.
옛날 이야기도 듣고 식민지 시대에 일본 놈들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고 독립투사들이 어떤 활약상을
보였는지 침 튀기며 서로 말씀하셨다.
엄복동이란 이름과 노래도 들었지만 다 까먹었다.
그당시 불렀던 전래민요와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민요를 들었지만 까마득한 그 노래는
기억도 안 난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는 들었던 것 같고.
지금껏 남은 건 '이수일과 심순애' 뿐.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
양인이로다.
•••• ••• ••••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리도 좋더냐?"
요것만 기억에 남았다.
어린 마음에도 다이아몬드가 뭔지는 몰랐지만
비싼 것인 줄은 알게됐다.
변사가 읊어대는 신파극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고.
어릴 적 기억은 인생의 조언이나 교훈보다
잔잔한 추억과 따스함이다.
삶의 지혜와 본보기는 때를 가리지 않고 배울 수
있다.
죽을 때까지도 다 못 배우고 떠난다는데 우린 언제든, 어디서든 배움을 받을 수 있다.
'아기업개한테서도 배울 게 있다.'는데 나이와 지식을 가리지 않는다.
문제는 "라떼는 말이야."인데 말하는 뉘앙스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왕년에 몇 놈을 때려 눕혔지."라든가
"내가 이러이러한 고생을 했고 성공했지."등에
젊은 세대들은 "또 꼰대질 한다."며 아예 귀 닫아
버린다.
6.25 전후의 세대로 배 안 곯고 고생 안 한 사람 어디
있는가.
"개천에서 용난다."보다 그때의 사회상이나 분위기 등을 먼저 꺼내는 게 좋을 것 같다.
"너희들은 시대를 잘 타고나 복 받는거야."
입 아프게 말해봐야 시큰둥할뿐이다.
하기사 얼굴에 하얗게 버짐 피던 소싯적에 비해 요즘은 기름기 잘잘 흐르는 얼굴이 됐으니
우리도 복 받은 건지....
나도 손자들에게 옛말을 가끔 한다.
현충일에는 "학교에서 기념식 하냐?"고 물어본 뒤
"할머니 학교 다닐 땐 몇 리를 걸어 현충원에 가서 기념식 했어.
기념식이 끝나면 원호대상자네 밭에 가서 보리도 베어주곤 했지."
손자들은 왜 그래야 했는지 꼬치꼬치 깨묻는다.
"솔방울 따다가 교무실 난로에 넣고 땔감으로 썼어.
그땐 보일러나 에어컨이 없을 때야.
영화관도 없어 천막치고 땅바닥에 앉아 영화 봤지."
손자들은 원시 시대의 삶을 머리 속으로 그리는 것 같다.
책에서나 단편적으로 보는 옛 시대의 생활상을
느낄뿐이다.
민속촌에서 잠시 보고 잊어버리듯.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소식과 K-POP과
BTS, 블랙핑크, 뉴진스에 열광하고 AI 기술과 엔비디아를 논하는 세대에게 옛말은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도있다.
하지만 어렴풋이나마 옛 시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시건방진 행동은 안 할 거다.
해수욕장 간다며 수영복 사들고 와서 난리들이다.
"할머니, 옛날에도 수영복 있었어?"
"아냐, 그땐 빤스만 입고 바당에서 놀았지."
첫댓글 나도 노인이지만~
선배들이 하는 말이
듣기 싫어요 짧게 해도
될 말을 너무 길게 하니까요
그래서 나이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아요 좀 씁쓸하지만~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는 말씀이
정답입니다.
말씀을 간결하게 하시고
유머와 해학이 담긴 말씀을 잘 하시는
어르신도 많지요.
'순애야 순애야,김중배의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좋더냐,에이 더러운년 가거라
이 다떨어진 찌까다비로 너의 꽃같은 가슴을 탁 처버릴것이다!!"
맞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기억에 남아있는 김중배의 독백이었습니다 ㅎㅎㅎ
요즘 기계 만능주의에서
사람을 울리고 웃게 하는
신파극은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시골에 동화책 tv 없든시절 할머니 이야기 재미있게 드렀어요
귀신이야기 듣고나면 밤에 무서워 밖에도 잘 못나갔어요
전 가설극장 가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오일장터나 리사무소 마당에서
주로 했지요.
비가 내려도 보고. ㅎ
제 고향 마을 중간 쯤에는 상여집이 있었습니다.
유달리 겁 많았던 전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주위가 어두어지면 무서워 집으로 못가고 눈물바람 이었었던 아지랑이 같은 기억이 떠오릅니다. ^^~
ㅎㅎㅎ 빤스만 입고
그래요 어른들의 문화와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우리네 삶의
기초를 아는 것임에 귀하다고 할 수 있어요
여름이면 등가죽이 몇 번 벗겨지도록
바다에서만 놀았지요.
섬에서 갈 데가 없어서.
@아우라
아..네 아우라님은 섬에서 성장하셨군요
등가죽이 몇 번 벗겨지도록요? 아흑
갈 데가 없어서...라는 말씀이
제 가슴에 긴 여운을 드리웁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셔요 ^^♡
@빨강 감사합니다.
문어랑 해삼이랑
많이 잡아 먹었어요.ㅎ
@아우라 와~~저는 주홍색 해삼을 여고등교길 리어카 위에서 처음보고 붉게익은 열대과일인줄 알았어요
@솔솔솔 ㅋㅋㅋㅋㅋ ~
그럴 수 있어요.
육지 해삼은 黒海参인데
제주도 해삼은 붉은 紅海参입니다.
모래가 있는 바위틈 아래에 뿔을 세우고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동굴동굴 딴딴해집니다.
어릴때는 징그럽고 무서워
손으로 못 잡고
바당골갱이로 끄집어내 재빠리 구덕 속으로
밀어 넣었지요.
할머니는 늘
"우리 손지 손도 걸다."고 칭찬했어요.
남들보다 해산물을 더 많이 잡았죠.
어디에 가면 소라, 전복이 많다는 걸 아니까.
바다 것들도 지가 좋아하는 아파트가
따로 있어요.
바다를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죠
여름에는 바다에서 살았죠.
어린 시절 잠들기 전에 부모님들께서 이야기를
해주시고 이야기 들으며 잠을 잤던 기억들이
님의 글과 함께 떠오르네요
라떼ㅎㅎㅎ나때에는 말이야 하며 말하는 사람들 즉 꼰대를 비꼬는
은어로 사용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을 띠어봅니다.
우리때에는 상상 도 못하는 행동인데
어른들의 말씀에는 무조건 경청 하였으니까요.
좋은 글 담고 갑니다 ^^
우리 세대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안 밟았지요.
어르신들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고 '사람 되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요즘은 극성 학부모 때문에 선생 되려는 사람들이 급격히 감소했다고 합니다.
담배 피우는 학생에게 훈계도 겁나서 못 합니다.
인권이 이상하게 흐릅니다.
도덕의 잣대를 자신 위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보편적이고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한 번 생각해보고 입 밖으로 꺼내는
조심성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못 본 척 하는 일도 많아지고
점점 몸 사리게 되는 시대가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