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교리가 그레서 무서운 겁니다
성경은 논하지 않아요
교리로 가르치기 때문에
이신칭의 어쩌고 이중 은혜가 어쩌고 이런 것들을 가르치죠
칼빈이 어떻게 보든 . 루터가 어떻게 보든
이들도 구원을 받아야 하는 당사자들이죠
즁요한 것은 내가 구원을 받았냐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대한예수교 장로회가 칼빈주의
그래서 성화구원을 따르고 . 그래서 이들은 믿음 + 행위 = 구원
이들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지 않아요
왜 성화 구원이 최종 단계
예수님을 믿더라고 성화 되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아요
칼빈의 그리스도 중심관점은 그의 구원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예수님의 구원론이 아니고
칼빈의 구원론이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하네요
2) 칼빈의 신학
칼빈은 루터처럼 구약과 신약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반립적 관계로 보지 않았다.
그것은 성경의 계시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하나의 구속사로 보는 유기적 이해애서
가능했다. 칼빈에게 구약에서 신약으로 진행하는 구속의 역사는 하나의 역사이고,
그 역사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그래서 칼빈은 율법 안에 복음이 있고, 율법이 복음의 기능을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칼빈의 그리스도 중심관점은 그의 구원론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루터의 구원론이 이신칭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화가 약화되거나 없다고 비난을 받는 것에 반에 칼빈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이중은혜가 주어진다고 말한다. 즉 칭의와 성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없을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에서 이중은혜이다.
칭의만 강조하는 믿음이 성화를 약화시킨 루터와는 다르게 그리스도를 붙잡는 믿음이 칭의와
성화를 함께 강조하는 것이 칼빈이다.
이것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칭의와 성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만 있고
칭의는 하나님에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롭다고 해야. 칭의가 되는 것입니다.
성화는 성령님. 성화라는 것은 선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 받아요
칭의와 성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없을 수 없는 은혜라는 의미에서 이중은혜이다.
이중 은혜?
은혜 위에 은헤을 말하는 것 같은데
첫번째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은 은혜. 은혜로 구원을 받는 은혜
두번째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으로 쫒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면서 받는 은혜
그리스도 안에서는 구원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성령 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 구원은 이미 받았고
좋게 말하면 성화인데.
문제는 성화 될 수 없어요. 이 육신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징계를 받아요
성경에 성화 되어야 한다는 말이 없어요. 왜 없냐 될 수 없어요
새 계명을 준것도 죄를 짖지 때문에 죄를 짖지 말라고 준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짖게 되면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겁니다.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오은환이나 칼빈처럼 내가 성화되었다고 하면 하나님은 거짓말장이입니다 ㅋㅋ
칭의는 하나님의 의.
구원은 예수님의 공로 즉 은혜
칭의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의로 여겨주는 겁니다
성화는 없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