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고수환, 계속되던 우연속에서.. - 그의 짧은 번외 이야기 >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처음 만나 지금까지 만나면서 이제 더이상 이렇게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없을꺼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었고, 그래서 더 잘하고 더 행복하고 싶었다.
오연수.
내 삶에 작은 빛을 비춰주는 사람이었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어렵게 농사를 지으시며 생계를 꾸리셨고, 그런 부모님께 짐만 되는것 같아 서울로 올라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의상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난, 대학은 꿈도 꾸지 못했고
대신 옷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틈틈히 돈을 모아 내 가게를 차리는데까지 성공했다.
작았지만 기뻤고, 내 인생에 전부였다.
내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던건, 연수가 내 옆에서 내게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연수의 말 한마디 손길 한번에 힘을 얻고 희망을 얻었다.
연수도 그닥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다. 나처럼 고등학교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대학교에는 들어갔지만 역시나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어 쓰곤 했다.
그래도 밝은 아이였고, 자신도 힘이 들지만 내게 힘을 주는 그런 따뜻한 아이었다.
그렇게 권태기도 없이 우린 함께 잘 지냈고, 서로를 사랑했고, 배려했고..
그녀는 내 못난 성격도 감싸안으며 나를 사랑해줬다.
그런데,
올해 들어 연수는 나를 만나는 일이 줄어 들었고, 만나도 전혀 즐거워보이지 않고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참고 참았지만, 결국 난 터트리고 말았다.
"너 뭐야. 할말 있으면 해! 사람 답답하게 병신 만들지 말고!"
"수환아..."
한번도 이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낸적이 없었다.
싸워도 심하게 싸운적도 없었고, 그저 잠시 토라지는 정도의 싸움이 전부 였던 우리였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게 처음이니 놀라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연수의 반응은 당연한거였다.
"내가 바본줄 알아?! 너 지금 몇 달째 이 상태야. 뭐야 도대체, 뭐냐고!"
"...뭐,뭐가..."
"뭐가?! 뭐가라는 말이 나와?! 하... 진짜 돌아버리겠다. 참는것도 한계야. 더이상은 못참겠어.
말해. 도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말도 줄고, 표정도 매일 어둡고, 만나자고 해도 잘 만나지도 않고.
얼굴은 매일 죄지은 사람처럼 울상이고, 툭하면 멍하고.. 이 모든게 아무것도 아니냐 넌?"
"......"
"아무것도 아니어서! 너무 당연한거라서 뭐가라는 말이 나오냐?!"
"......."
답답해 죽을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화를 내는데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연수가 너무 미웠다.
"권태기야? 그래? 나한테 마음이 식어서 이랬던거였어?"
"..그,그게 아냐!"
내가 생각해도 참 유치한 질문이었다.
그런게 아니라는 것 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감정표현 확실한 연수가 권태기였다면 표가 확실히 났을꺼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냥 차라리 권태기여서 그런거였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진실은 더 어마어마한 일일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런거라면 우리 시간을 좀 갖.."
"헤어지자 수환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할말이 없었다.
아니아니, 말이 나오질 않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반응할수가 없었다.
날벼락같은 연수의 말에 얼어버린 내 몸과 생각과 마음.
얼어 있는 내게 연수가 슬픈 눈을 하고 애원하듯 말했다.
"헤어지자.. 우리.. 헤어져... 응..?"
헤어지자고 말하는 여자의 얼굴이 이런건가,
연인이 헤어지는건 누구 한사람의 마음이 변했거나, 아님 둘다 변했거나, 싸웠거나, 맞지 않음을 깨달았을때.
대부분 서로에게 마음이 다했을때 인데.. 분명 지금 이여자.. 오연수의 얼굴은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았다.
내가 싫어서도 아닌것 같갔고, 내게 마음이 다한것 같지도 않았다.
우린 싸우지도 않았고 그동안 잘 지냈다. 서로에게 너무 잘 맞아서 탈인 우리 둘인데..
그 어느쪽도 아닌 연수의 얼굴에서 난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유가.. 뭐야.."
"........"
힘겹게 말을 내뱉은 내게 돌아오는건 대답이 아닌 침묵이었다.
고개를 떨구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어깨를 들썩이는 연수, 울고 있었다.
뭐야,
헤어지자고 말한건 넌데.. 왜 니가.... 왜 울고 있어..?
연수가 울고 있는 모습에 난 더 화가 났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잖아!!!"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여전히 고개를 떨군체 울고만 있었다.
난 연수의 두깨를 꽉 잡고 흔들며 다시 한번 소리쳤다.
"말해. 이유가 뭐냐고!! 왜, 내가 싫어졌어? 정말 권태기라 그래? 어?!"
"...흑.. 수환아..."
"울지말고 말하란말이야!!!"
"...제발..... 제발.. 묻지 말아줘..."
끝내 연수는 이유를 말하지 않고 뛰쳐나갔다.
집에서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평소때 처럼 재미있는 티비프로그램 없나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연수는 말이 없었고, 티비프로그램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나만 웃고 나만 말하고 연수는 그저 듣고 맞아,그래 등으로 대답만 할 뿐이었다.
참을성이 부족한 내가 터트려버렸다.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린 헤어지지않았을까..?
연수가 우리집을 뛰쳐나간 그날밤을 난 이런 생각들로 꼬박 지새웠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때는 아침 7시 35분이었다. 씻지도 않고 아직은 쌀쌀한 봄이었지만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달렸다. 연수가 아직 자고 있을 연수의 집으로..
바보같이 버스도 있고 택시도 있는데 왜 뛰었을까?
그렇게 죽어라 바보같이 뛰었다. 그래서 결국 30분 좀 넘게 시간이 걸렸고, 금방이라도 끊어질것 같은 숨을
헐떡거리며 연수네 집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띵동 -
쉴새없이 눌렀다. 짧은 틈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눌렀다. 하지만 대답이 없었다.
이렇게 계속 누르고 있는데, 옆집 사람이 시끄러워서 나와볼 정도로 시끄럽게 눌렀는데, 연수는 나오지 않았다.
"아후, 그집 어제 나갔어요!"
옆집 아줌마였다.
내가 초인종을 너무 눌러덴탓에 시끄러웠던 모양인지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잠에서 막 깬 모습으로 나왔다.
그리고 초인종을 누르고 있는 나를 보며 짜증스런 얼굴로 말했다.
초인종은 멈췄지만 당황해버린 내가 얼어 있자, 아줌마는 그냥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 저기 아주머니!"
나는 들어가려는 아줌마를 급하게 불러 새웠고,
아줌마는 추운지 걸치고 나온 가디건을 다시 여매며 다급한 나를 돌아보았다.
"나,나가..다뇨? 누가요?"
"지금 옆집 찾아온거잖아요. 903호"
"..네.. 저 903호 찾아온거 맞아요"
"총각, 정신 차려요. 내말 못알아 듣겠어요? 903호 아가씨 어제 짐 싸들고 나갔다구요.
어제 나한테 이사간다고 인사까지 하고 갔어요. 이제 이해했어요?"
너무너무 친절하고 또 친절한 아주머니의 말에 대답을 해드릴수가 없었다.
이해... 했다. 분명 지금 이해했다. 그치만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이사라니, 나갔다니..
도대체 어딜? 분명 어제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고 나갔는데.. 어딜가? 이유도 말 안했는데.. 어딜?
대답 없는 나를 뒤로 하고 아주머니는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가셨고,
쥐죽은 듯이 조용한 연수네 아파트 복도에 나 혼자 덩그러니 서있었다.
3,4분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나 뒤쪽에서 사람이 지나가는 바람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릴수가 있었다.
번뜩 정신이 든 나는 연수네 옆집, 그러니까 방금 친절하게 말씀해주시던 904호 아주머니가 들어간 집 초인종을 눌렀다.
이번에는 여러번이 아니라 딱 한번만 눌렀다.
아까 걸친 그 가디건을 걸치고, 이번에는 더 짜증스런 얼굴로 문을 여시는 아주머니.
"아 죄,죄송합니다"
나는 일단 꾸벅 인사를 했고, 아주머니는 됐다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저.. 혹시 어디로 갔는지.. 모르..십니까?"
"우리가 서로 인사하는 사이이기는 했어도, 어디로 이사갑니다라고 말할정도는 아니었어요.
워낙 옆집 아가씨가 일로 바쁘니까 만나서 얘기할 시간도 없었고, 어제 만났것도 몇주만에 본거예요"
"..아...네... 그,그럼... 혹시 쪽지나.. 뭐 그런건.."
"...흠..."
아주머니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시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시는것 같았다.
급 당황한 내가 흠칫 놀라자 그제서야 의심의 눈초리를 치워버리고 물으셨다.
"혹시... 이름이.."
"네? 아.. 고수환이라고 합니다"
"맞고만 맞아. 잠깐 기다려봐요"
내 이름을 들은 아주머니는 번뜩! 하는 표정으로 손뼉까지 치시며 말하셨고,
잠깐 기다리라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한 30초쯤 지난 후 다시 나오셨다.
"자 이거"
"네..?"
아주머니가 내게 건낸건, 열쇠였다.
일단 주시기에 받아들었지만 영문을 모르는 얼굴을 하자 아주머니는 다시 가디건을 여매며 말씀하셨다.
"903호 아가씨가 고수환이라는 남자가 아마 찾아올꺼니까 오게 되면 전해주라 부탁하고 갔어요.
아마 903호 키같은데, 이삿짐은 다 빼서 없을껀데 뭐하러 주는지는 모르겠네.."
"...903호..키요..? 이걸.. 왜..."
"나도 더 말해주고 싶은데 더이상 아는게 없어요 총각. 이 열쇠 주면서도 그냥 꾸벅꾸벅 부탁만 했으니까,
그 열쇠만 주면 다 해결될테니까 그냥 전해주기만 하라고 했어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녜요 아녜요. 그럼.. 나 들어가도 되죠?"
"아 네,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나는 다시한번 허리숙여 인사를 해보였고, 아주머니는 별걸 이라는 미소를 지으시며 다시 집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다시 텅빈 복도에 홀로 남겨진 나는, 아주머니가 건내주신 열쇠만 만지작 거렸다.
그리고 잠시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903호 앞에 섰다.
들고 있던 키를 또 천천히 열쇠구멍에 넣었다. 드르륵 하며 열쇠가 순식간에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고,
순식간에 빨려들어간 열쇠와는 달리 나는 천천히 오른쪽으로 열쇠를 돌렸다.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채워져있떤 열쇠가 풀어졌고, 다시 열쇠를 빼고 손잡이를 돌렸다.
작게 끼익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리고, 불이 하나도 켜지지 않은 컴컴한 연수네 집이 보였다.
어색했다. 매일매일 거의 우리집 드나들듯이 했던 이곳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이상했다.
정말 처음 와보는 곳에 발을 디디는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리며 긴장됐고, 낯선환경에 기분이 나빠졌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자, 창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햇살이 보였고, 텅빈 거실이 보였다.
원래 티비도 있었고, 서랍도 있었다. 장식장도 있었고 쇼파도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기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사준 화분도 여러개 놓여있었다. 그랬는데... 그런 공간이었는데...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 아니.. 저거....
가구들이 사라지고 텅비어버린 거실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상자가 하나가 보였다.
나는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상자 가까이에 갔고, 햇살은 상자를 환하게 비추고 있어 가까이 가자
상자가 또렷이 보였다. 그리고 뚜껑이 닫혀져 있는 상자 위에는 노란색 봉투가 놓여져있었다.
봉투를 들어보니 '수환'이라고 적혀있었다. 봉투를 열어 안에 들어있는 하얀 편지봉투를 꺼내었다.
드디어 익숙한걸 발견했다.
이렇게 어색한 이 곳에서 익숙한 연수의 글씨체를 드디어 발견했다.
둥굴둥굴 귀여운 연수의 글씨체가 오늘은 왜이렇게 밉고.. 날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To.수환
많이.. 놀랐을꺼야. 많이 힘들꺼고.. 많이 혼란스러울꺼야. 또.. 내가 많이 밉겠지..
수환아. 후회할꺼야 나. 분명 무진장 후회할꺼야. 아니, 이 편지를 쓰면서도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우리 인연이 여기가 마지막인걸 알기때문에 더이상 니 옆에 있을 수가 없을것 같아..
날 미워해도 좋고, 평생 악연이라고 생각하고 살아도 좋아. 너 편한데로 니가 편한데로 해..
난.. 평생 너에게 미안해할께. 너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께. 그렇게 벌 받을께..
행복했어. 지난 4년이 넘는 시간.. 내게는 꿈만 같은 시간이었어. 사랑했어 많이..
꼭.. 행복해야되? .... 안녕.. - 연수 -'
내가 그렇게 궁금해하는 이유 따윈 적혀 있지 않았다.
날 떠나는 이유따위는 없었고, 그저 자기 얘기만 자기 생각만 적혀 있었다.
이기적인 여자, 이게.. 도대체 무슨짓이야?!
나는 연수의 둥굴둥굴한 글씨로 마지막 편지가 적힌 하얀편지지를 땅에 떨어뜨렸다. 노란 봉투와 함께,
그리고 떨어뜨리자마자 햇살에 비춰진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원래 티비 옆에 있어야 할 내가 준 화분들이 들어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게임기와 게임CD가 들어있었다.
내 칫솔이 놓여져있었고, 내가 몇개 놓고 갔던 티셔츠들이 들어있었다. 또 커플로 함께산 거실 실내화가 들어있었고,
내가 2년되던 날, 사랑한다며 영원하자며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며 연수의 왼손 네번째 손가락에 끼워준 반지까지
케이스에 가지런히 놓여 들어있었다.
..
....
그게 연수와 나의 마지막이었다.
연수가 파리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무작정 파리로 왔을때까지, 그리고 지금 몇번이나 연수를 만나지 못하고
계속 엇갈리고 있을때까지, 또 지금까지.. 우리가 헤어져야 하는 이유, 그렇게 연수가 떠나야했던 이유따위는...
알지 못한다.
다섯번째로 연수의 지인이 있다는 어느 학교의 기숙사 주소를 찾아냈다.
머리가 복잡할때면 호텔을 나와 공항 벤치에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머리를 식히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주소는 찾았지만, 그 지인이 연수를 정말 잘 알고 있을까, 연수가 어디있는지 알고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멍하니 주소가 적힌 종이를 들고 앉아있었다.
그때였다. 이지연이라는 여자가 내 눈에 들어온것이, 바로 그때였다.
위로를 받고 싶었던건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이라 반가워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연수를 찾아다닌 이후로 남생각이라고는 전혀, 배려라고는 전혀 하지 않던 내가 뜬금없이 지나칠수도 있는
이지연이라는 여자를 도와주고 그여자가 찾아가는 곳까지 안내를 했다.
아니, 안내라고 하기에는 좀.. 아니었다. 나도 그 기숙사를 가려던 참이었으니까,
우연히 가는 길이 같았고, 짐이 무거워보이길래 들어줬다. 내가 왜그랬냐고? 나도 모르겠다.
기숙사에 그 여자를 데려다줄때까지만 해도 아무생각이 없었다. 그냥 잘 돌아갔으면, 내가 구해줬으니까
또 그런일 없이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그여자를 데려다주고 내가 연수를 아는 지인을 찾아갔을때,
그 지인은 역시 연수의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정말.. 모르는걸까, 아님 아는데도.. 모르는척 하는걸까..
미안하다며 모른다고 말하는 연수의 지인에게 나는 연락처를 남기고 꼭 부탁하는 말도 남기고 나왔다.
힘이 쭉 빠져버린 내가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정원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또다시 멍해졌다. 갈길이 막막했다. 정말 어렵게 알아낸 지인인데.. 모른다니.....
그때였다.
울면서 뛰어가는 그 여자.
내가 공항에서 구해준, 여기까지 길을 안내해준. 아니아니 같이 온.
그 여자다.
왜.. 울면서 뛰어가는거지? 길도 모르는데, 어딜.. 뛰어가는거야?
복잡했던 머리는 궁금증으로 가득찼고, 무작정 나도 모르게 그 여자 뒤를 따라 뛰었다.
여자는 한참을 뛰었다. 뛰는 동안 내내 울었다. 연신 두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달렸다.
도대체 어딜 가는건지, 골목골목을 휘저으며 뛰고 있었다.
금방이라고 픽 쓰러질것 같이 흐늘흐늘한 모습으로 말이다.
안되겠다 싶은 그때, 주저앉아 우는 그 여자의 모습을 보았다. 아니 하나 더 보았다. 팅팅 빨갛게 부어올라있는 그여자의 손을.
안쓰러웠다. 울고 있는 모습도 안쓰러웠고, 빨갛게 부어오른 손도 안쓰러웠다.
꼭, 나를 보는것 같았다.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고 나도 이렇게 마구 뛰어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부러웠을지도 모른다.
이름도 모르는 그여자를 데리고 편의점을 돌아다녔다. 편의점에 얼음이 있을리가 없었다.
결국 마지막이다 싶어서 도착한 곳에서 친절한 편의점 주인이 얼음을 꺼내다 주었다.
고맙다고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나를 따라다니느라 지쳐있는 그여자의 손에 얼음을 대주었다.
붓기가 금방 가라앉을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얼음으로 찜질을 해주면 좀 나아질것 같았다.
그리고 그 여자를 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안내했다.
한국어 공부를 하는 재미있는 주인아저씨가 있는 호텔이고, 방도 깔끔하고 좋은편이었다.
그래서 안내한걸까? 솔직히, 알고 싶었다. 왜 울었는지 손은 왜이렇게 부어 오른건지, 여기까지는 어떻게 온건지 등등
모두 다 알고 싶었다. 궁금했다. 오랫동안 한국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인지 자꾸마음이 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저녁식사를 하며 들을 수 있었다.
나 또한 한번도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내 속내를 털어놓았다.
연수를 찾고 있다고, 벌써 몇달째 연수만 찾아다니고 있다고, 오늘도 헛탕이었다고 말이다.
이지연이라는 이 여자도 나처럼 사랑때문에 파리로 온거였고, 나를 보는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너무 고맙다며 휴지조각에 핸드폰 번호를 써서 건내주는 이지연이라는 여자의 모습은 참.. 순수해보였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휴지조각을 가방속에 깊숙한 곳에 넣었다.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한국을 가게 된다면. 꼭 연락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여자를 공항까지 바래다주기로 했기 때문에 일찌감치 서둘렀다.
밤새 생각해봤는데, 이 여자도 나처럼 파리를 아픈 곳으로 생각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정말 아름답고 볼거리가 많은 이 도시를 나처럼 기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길 너무나 아름다운 길이 있기에 그 곳으로 안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늘어지게 잠든 여자를 깨워 일찌감치 호텔을 나왔고 길을 거닐었다.
역시, 이지연이라는 여자는 해맑게 웃으며 파리라는 도시의 풍경을 감상했다.
그리고 그녀는 공항에서 헤어지며 말했다.
고맙다고, 내가 아니었다면 파리가 정말 아프고 힘든 도시로 기억됐을꺼라고..
그러면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나도,
파리가 그런 도시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녀를 보내고, 난 다시 공항 벤치에 앉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난.. 얕게 미소짓고 있었다.
웃어본게 얼마만일까, 기분이 좋아서 웃어본게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웃고 있었다.
기분이 괜찮았다.
매일 힘들고 아프고 지친 나날들이었는데,
웃고 있었다. 기분이.. 괜찮았다.
이건... 이지연.... 그 여자때문인걸까..?
그후,
지연과 함께갔던 숙소에 있던 연수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수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너무 간절히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꼭 말하지 않는게 좋은건 아닌것 같다며
연수가 살고 있다는 집주소를 알려주었다. 대신 자신이 알려줬다고는 절대 말하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나는 알겠다며 지인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여러차례한 후,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난 지금 연수의 집 앞 모퉁이에 몸을 숨긴체 서있다.
저멀리 초록색 잔디가 넓게 펼쳐진 전원주택 정원에 허리를 구부린체 서있는 연수가 보였다.
금새 머리가 많이 길어져 있었고 몸은 더 야윈것 같았다.
다가가지 못하고 서있는 이유는, 그녀의 앞에 막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가 보였다.
뚜벅뚜벅 자꾸 넘어지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연수는 그런 아이를 보며 안타까운듯 너무나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기..... 연수...
그렇게도 듣고 싶던 나와 헤어진 이유, 내가 이렇게까지 연수를 찾아가며 듣고 싶던 그 이유.
이젠... 더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연수의 얼굴, 그리고 아이... 더이상 이유따위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난 그렇게 모퉁이에 몸을 숨긴체 연수가 집안으로 아이와 함께 들어갈때까지 한참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지연의 말처럼, 나도 슬프고 아픈 파리가 되지 말아야겠다고,
저여자.. 나 없이도 행복하니까, 나도 이제 저 여자 없이 행복하자고... 그렇게 다짐했다.
--
안녕하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글을 올리게 되네요ㅜㅜ..
또 이렇게 늦게 찾아오게 되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연재중단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소설을 더이상 쓰지 않다가,
남겨주신 댓글 때문에 다시 힘입어 이렇게 소설을 올립니다.
정말 일도 바쁘고 슬럼프에 빠져 더이상 연재를 하지 못하겠다는 글까지 작성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올리게되었네요ㅜㅜ
힘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번외편이었는데, 좀 짧았죠?
이번주 주말에 다시 한번 업뎃 예정입니다. 이번에는 꼭 지킬께요!
기다려주시구요~ 업데이트 댓글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루!!많이 기다렸어여ㅠㅠ계속 연재해주셔용 ㅠㅠ재미있는뎅 ㅠㅠ
엇 못보시던분! 많이 기다리셨다니.. 정말 죄송합니다ㅜㅜ 계속 연재할께요!! 재미있게봐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아~~많이기다렸는데~~드디어..!!힘내세염~~
ㅜㅜ다들 많이 기다리셨군요 죄송합니다..흑흑 힘낼께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기다리겠습니다 ㅠㅠ 그니까 중단은 하지 말아주셔요 ㅠㅠ 기다릴께요 ㅠㅠ 다음편도 업데이트쪽지 부탁할께요 ^^ 화이팅입니다!!!!!
흑흑 이렇게 다들 힘을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ㅜㅜ 힘이 나요!!!!!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업데이트쪽지해드릴께요~ 화이팅!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