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7주간 목요일 강론>(2026. 10. 8. 목)(루카 11,5-13)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의 복음강론
『끊임없이 간청하여라.』
1) 여기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라는 말씀은, 루카복음 18장에 있는 다음 말씀과 합해서 읽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7-8ㄴ).”
하느님은 우리가 간청할 때, 응답하기를 미적거리지 않으시고, 지체 없이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따라서 앞의 말씀과 합해서 생각하면, “인간들끼리는 끈질기게 졸라 대야만 마지못해 들어 줄 때가 많지만, 하느님께서는 청하기만 하면 곧바로 들어 주신다.”가 됩니다.
그런데 루카복음 18장 1절을 보면,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적거리지 않으시고 지체 없이 응답하신다.” 라는 말과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라는 말을 표현만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모순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곧바로’는 ‘하느님께서 정하신 가장 좋은 때에’ 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대를 이을 아들이 태어나기를 간절하게 바랐지만 그의 나이가 백 살이 될 때까지 사라는 아들을 낳지 못했고, 그는 사실상 아들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그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창세 17장, 21장). 물론 경우에 따라서 청하자마자 곧바로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라도 ‘무조건 지금 당장’이 아니라, “당신이 정하신 가장 좋은 때”입니다.
2) “누구든지 간절하게 청하면 주님께서 들어 주신다.” 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하게 청해야 한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 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2코린 12,7ㄴ-9ㄴ).”
예수님께서는 바오로 사도의 간청을 거절하셨습니다. 그의 믿음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을 청한 것도 아니고, 간절함이 부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뜻과 그의 희망이 달랐을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순교할 때까지 평생 몸을 가시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게 하는 어떤 병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3) ‘어떤 가나안 여자’의 이야기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여자가 찾아와서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처음에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고(마태 15,22-23), 그 다음에는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셨고(마태 15,24), 다시 그 다음에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5,26).
예수님의 ‘침묵’과 말씀들은 분명히 ‘거절’인데, 단순한 거절이 아니라, 여자가 우상숭배를 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가르침들입니다. 특히 침묵은 ‘무언의 가르침’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주님께서 응답하실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의 결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이 우상을 숭배하는 강아지라는 것을 깨달았고, 인정했고, 그리고 아마도 분명히 하느님의 자녀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것입니다(마태 15,27). 그러고 나서야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마태 15,28).
기도는 떼쓰는 일도 아니고, 주님의 마음을 바꾸려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내가’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끈질기게 기도한다는 말은, “흔들림 없이 믿고, 주님의 뜻에 내 뜻을 맞추려고 꾸준히 노력한다.”입니다.
무턱대고 졸라 댄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