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현충일이네요.
다른 사람들이야 하루 더 생긴 휴일을 즐기려 산으로 바다로 놀기에 바쁜 날일 것입니다.
그러나 월남전에서 많은 전우를 잃은 나는 비통함과 우울함으로 이뤄지는 하루 아니 6월 한달입니다.
많은 전우가 머리에 맴돌며 기억에 새로운데 오늘은 유독 故 최돈환 중사가 더 생각이 나는군요.
故 최돈환 중사는 1972년 5월에 월남에서 전사하였습니다.
당시 우리중대는 월남전 사상 최대의 작전이었던 안케패스 작전에 투입하여, 소대장(故 임동춘 대위) 1명이
전사를 하고 중대장도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으며, 다른 소대장 1명도 또 중상을 입는 등 전사자만 18명에
달하는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시 150명이 주둔하는 기지를 겨우 30여명으로 지휘하며, 월남군울 격파하고 승승장구 쳐 내려오는
월맹 정규군 1개대대와 맞서고 있었습니다.
우리 앞에 있던 월남군 1개연대가 모두 도망을 가고 우리만 30여명이 죽어도 물러 설수 없다는 의지로 버티
며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단 수색중대가 증원 되었음)
이때 상급부대로부터 우리기지에서 약 1.5km 떨어진 띤탄이라는 마을에 '적 61mm 박격포가 거치되어 있으
니 가서 확인후 보고 하라' 는 지시가 하달 되었습니다. (거짓정보로 한국군을 지뢰밭으로 유인하기 위함)
그런데 그 마을은 평소에도 적성마을이어서 결코 우호적이지 못한 곳이었고 수색을 해도 소대급 이상의
병력규모라야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의 모든 지역이 적의 장악속에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을 찾아가 확인 하라니....... 곧 죽음을 각오하는 임무였습니다.
나는 30여명을 모아 놓고 작전지시 내용을 알린 후, 나와 함께 할 지원자를 뽑았습니다. 규모는 1개분대.....
의외로 빠르게 지원자가 나와서, 잔여 인원에게 만약 내가 혹시 잘못될 경우를 대비하여 지휘자를 임명하고
출발하려 하였습니다. 이 기지에 남아 있는 30여명이란....환자, 박격포 요원들, 취사병, 곧 귀국할 병사들 및
행정병들이어서 수색에는 적합치 못한 병사들이었지만 곧 귀국할 전투의 달인인 병사들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때 출발을 하려고 할때, 화기소대의 최돈환 하사가 갑자기 나서며 자기가 대신 병력을 인솔하여 확인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만약 내가 잘못 되면 이 넓은 기지에 장교가 한명도 없어 지휘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상급부대에 상황을 보고하자 '기지 지휘에 공백을 두어서는 안된다' 라며 최돈환 하사가 갔다 오라는
것입니다. 최돈환 하사가 출발하자 나는 모든 화기를 그 지역에 집중시키고 여차하면 화력지원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떠나서 수풀에 가려 보일듯 말듯 하며 한참을 간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빈터
라는 것입니다. 나는 즉각 되돌아 오라고 지시를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조금 후 폭음이 울려 바라보니.......
하늘로 치솟는 비산물을 보며 경악하고 말았습니다. 지뢰였습니다. 보통 포탄은 옆으로 비산물이 퍼지는데,
지뢰는 땅속에 묻어서 하늘로 치솟습니다. 나는 불안했습니다.
상황을 물으니..... 최돈환 하사가 지뢰와 접촉하여 폭사 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시체만 수습하여 곧 그 지역
을 떠나 빨리 귀대하라' 고 하였습니다. 돌아온 그들이 판쵸우의에 살점만 담아온 그 최하사를 보일때, 나는
얼마나 분노의 눈물을 흘렸던지...지금도 코끝이 찡합니다. 최하사는 임무 이외에 주변을 더 적극적으로 수색
한 것입니다. 오기 힘든 곳이니 온김에 확실히 수색을 해야 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최하사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여 중사로 추서 되었고, 지금은 서울 현충원 3묘역 4114번의 표지석
밑에 누워 있습니다. 더 애석한 것은 아무도 그를 찾아오는 가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찾아가는 우리
가 겨우 술 한잔과 담배 한개비로 그의 원혼을 달래주고 있습니다.
말이 별로 없고 시커먼 얼굴에 두툼한 그의 입술이 지금도 흰구름 속에서 웃고 있는듯 합니다.
영령들이시여 그대들은 임무를 충실히 하다 고인이 되셨으니, 고이 쉬시고 지하에서도 이 나라를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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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먼저가신 영혼님들이여-- 다시 현충일을 맞이하다.
호국보훈의달입니다. 늘 먼저가신님들 을 잊어서는안되죠...!
고맙습니다. 모든 분들이 큰산지기님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6월이면 항상 그 분이 생각날것 같습니다.
우리의 아픈 현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았던 그 정신앞에 머리 숙여집니다.
전사한 한분 한분이 제게 전부 영웅처럼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최돈환 중사님의 명복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십시요.
그 많은 세월이 흘러도 유월이 오면 우울해지고 가슴 멍멍한 그 심정 저두 너무 잘 압니다
저두 오월 그날이 오면
37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은
비통함으로 하루종일 석고처럼 되어버립니다
그날의 진실을 알기에
그리고
그 아깝고 젊고 순수했던 영혼들이 어떻게 갔는지를 알기에
삼십년 아니라 제가 살아 있는한은
그날이 오면 그렇게 우울해질겁니다
제 머리에선 잊혀져도
가슴은 영원히 기억할거기에...
37년이라면 1980년인데.... 그때의 어지러웠던 시절에 무슨일이 있으셨는지? 아픈 가슴을 지금까지 달고 계시는군요.
그러나 멈추려 하지 마시고 지나치려고 노력도 해보시며 지내보십시요. 감사합니다.
가신 분 들의 뜻을 기립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히 계시기 바랍니다.
찿아오는 가족이 안 계시다니 마음이 더 아프지만 천국에 좋은 분 들 많으니 외롭지 않으시겠지요.
눈시울 뜨거워집니다.
.
처음엔 조카인듯한 어린 남자 아이가 절을 할때 구멍난 양말을 신고 와서 간단하게 예식을 치뤘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이 아이마저도 보이지 않는다고 옆의 묘비석 유가족이 전해 주더군요. 저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좋은 저녁 되십시요. 감사합니다.
@들샘 저도 우리 오빠께서 동작동에 계시는 6 25 전상자 이십니다,
해군 병원에서 이 생명 다 하도록 영화 주인공 이셨던 분과 병상생활을 같이 하시다 작고 하셨습니다,
올 현충일에는 지난해 보다 더 많은 유가족들이 오신 것 같던데 그 아이가 내년에는 꼭 찿아 주었으면 합니다,
오빠 묘소에 가는 날 4114 묘비에 꽃 한송이 놓고 싶네요,
@가을이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지난해에는 현충원엘 갔었지만 올해는 다른 사정이 있어 못 갔습니다.
우리 중대원들도 이따금씩 몇명은 오지만 혹시나 올해는 아무도 오지 않아 위로를 못 받는 것은 아닌지? 하면서 염려가 되었습니다.
설사 묘비에 꽃을 놓아 주시지 않았다 해도 놓아 주신거나 다름 없습니다.
그 아이는 아마도 동생이나 조카 같다고 합니다.(결혼도 못하고 전사) 살기 어려워 생업에 종사하다 보니 못 오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장열하게 산화하신 영렬님들의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님은 진정한 자유수호의 영웅이십니다....
적들은 거짓정보로 소규모의 한국군을 지뢰밭으로 오도록 유도한 것이었습니다. 괜히 복수한다고 그곳에서 설쳤다가는 더 큰 피해를 볼뻔 했습니다.
속히 철수시키고 나중에 복수를 하였지요. 감사합니다.
무관심한 나를 돌아보도록
깨우침을 주신글 감사드리며
먼 타국에서
명을 달리하신
모든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운명을 달리 하면서도 먼 땅에서의 일은 더욱 슬프게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세계에서 우뚝선 우리의 현재가 있음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 하지요.
삼가 산화하신 '故 최돈환' 중사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고 최중사도 위로를 받고 흐뭇해 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제남편도 그보다 먼저 월남엘 가서
2년간 귀신잡는 해병으로 열심히 베트콩과 싸우다
돌아온 사람이라 남의 일 같지가 않네요.
그분들이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느냐 하는것도.
6월의 현충일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생각케합니다.
내 가족이 아니라도 나라를 위해 싸우다
가신님들의 묘소에 찾아 가 보는것도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그렇지요. 저는 산자의 도리를 다한다고 전사자를 찾아 하루종일 돌아다니며 위로하고, 또는 유가족과 당시의 상황등과 있었던 일들을 설명하며 그들과 함께 하다 돌아옵니다.
30여년전에만 해도 꽤 많은 인원들이 오셨는데, 지금은 1/3도 오지 않고 있어 더욱 쓸쓸합니다.
내일이 현충일이라 새 정부에서 어떤 멘트가 있을듯 한데 다른 이야기만 나오네요. 국가 유공자도 민주화 시민들이 외치는 정도로 대우를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이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거의 같은 시기에 퀴논인근 푸켓공항(미공군의 전투 비행단)에 통역요원으로 파견근무를 했었읍니다.
한국군 전사자들의 시신을 미군과 같이 신원을 확인하고 한국군은 화장을해서 유골을 한국으로 송환하여 현충원에 뭍히고.......
미군의 시신은 깨끝이 닦아 정복을 입히고 냉동 알루미늄 관에담아 미국으로 송환하여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보내 집니다.
월남전 참전 한국군의 모든대우는 미군과 동일하게 해주기로(먹는것 입는것 월급등...) 협약이 되었다는데....
그땐 그래도 "조국근대화에 보탬이 되었겠지"하며 위안을 했었는데
이제 이렇게 잘(?)살게 되었는데도 민주화 시민들의 대우 보다도 못하니....
@들샘 현충일을 맞아 먼저가신님들의 명복을 빌며 어설픈 푸념 늘어놓아 봅니다.
들샘님!
언제한번 만나 소주한잔 나누십시다.
@부밍런 고마우신 말씀입니다. 어떤이들은 파월장병을 평가절하하는 언동을 서슴 없이 내 뱉으며 자기들의 가치만 높히고 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로만 국가유공자를 위한다고 역대 정부에서 외쳤지만... 결국은 전사자가 한국에서 사고로 죽은 사람들 정도의 혜택 만큼도 못받는 처지를 보며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한 일로 조국근대화에 기여를 하였고 한국군 현대화에도 분명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니 우리는 보람을 느끼는 것이지요.
언제가 될런지 모르지만 만나면 속 시원한 소주 한잔 약속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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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수정님도 행복한 나날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귀한 생명을 내놓으신 님들께 감사한 마음 잊지 않겠습니다~~
부상당해서 평상 고통받으시는님들 어찌 보상 할수 있으려나요?
감사한 마음으로 살렵니다~~
고마우신 말씀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으나 님들과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3묘역 4114번 ~ 현충원 가는 날 , 들러 가겠습니다 ~^^
그 묘비석 주변엔 당시 안케패스 작전에 전사한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신다면 더 고마울수가 없지요.
가족들의 발길이 끊어진지 20여년이 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분들
대우가 부실하고 엉뚱한일에
집착하는 나라가 싫습니다
우리는 당사자로서 더 예민합니다. 이래서는 안될 일이지요.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건강한 나날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아~ 그러셨군요. 원통하고 한이 깃던 월남전이셨습니다. 그분들의 희생 덕분으로 지금 이나라가 이렇게 자유민주와 경제발전을 이루어
잘살고있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물론 아직도 공산주의에 매료되어잇는 어리석은 부뷰들이 있긴합니다만.
지나간일이지만 말할수없는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세계도처에서 공산주의 이론이 맞지 않다는것을 알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분단 국가인 우리는 앞서 공산주의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많으니 참혹한 일이지요.
이는 각종 부정부패와 불평등에서 그 돌파구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노크를 하는 모양인데, 이런 부조리도 사라져야 하고 퇴물로 내 던져진 공산주의 이론의 허구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라를 지키고 목숨을 바친 님들!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려지지 않는 억울하게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들
이름도 없이 전사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남아있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정부는 헤아릴 수 있을지??
님들의 희생으로 우리들은 잘 살아가고 있음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맞습니다. 자기의 고귀한 생명을 바쳤건만 이름도 채 남기지 못하고 잊혀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헌신한 것 보다는 민주화를 위한 것이 더 가치있는 일로 비쳐지는 현실앞에 영령들이 얼마나 애통해 하실까?
님의 깊은 생각에 고마움을 느끼며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