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수 없는 글씨(3)
(김대우 모세 신부)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려 남쪽의 한 수도원을 찾아갔다.
시골 언덕길을 지나자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이 환영 인사를 건네는 듯했다.
깔끔하게 성직자 정복을 입고 사제 서품 제의도 가져갔다.
그곳 원장 수녀님이 첫 미사를 봉헌하도록 초대해 주신 것이다.
그 수도원에는 글씨체가 못생긴 그분이 산다.
두근두근...이 긴장되는 유쾌한 설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마와 가슴에 십자성호를 그으며 수도원 성당에서 첫 미사를 시작했다.
수녀님들의 목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기도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분명 다른다.
특히 시편 성가를 부를 때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천상의 하모니가 따로 없다.
첫 미사 동안 이따금 봉쇄 구역 너머로 글씨체가 못생긴 그분을 찾았다.
본 적이 없으니 그분을 알 도리가 없다.
대부분의 수녀님들이 천사 같은 미소를 지녔고
기 수도복을 입고 엄숙하고 절제된 행동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있어 모두가 비슷해 보였다.
새 사제 안수예식 때는 한 분 한 분에게 기도를 해드리지만
더 알아보기 힘들었다.
모두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모으고 있으니 말이다.
그분은 도대체 어디 있을까? 어느 분일까?
드디어 면담실에서 원장 수녀님의 주도로 모든 수녀님을 만날 기회가 왔다.
나와 수녀님들 사이에는 창살이 놓여있었지만
서로 바라보며 대화하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창살 아래로 작은 문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원장 수녀님이 차와 직접 만든 쿠키를 건네주셨다.
열 명이 훨씬 넘는 수녀님들이 짙은 밤색 수도복에 베일을 쓰고 있어 얼굴만 드러날 뿐이었다.
수녀님들의 미소는 그야말로 곱고 천진난만했다.
내게로 향하는 많은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몰라 찻잔에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신부님이 이곳에 올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 수녀님 한 분을 통하여 섭리해 주셨어요.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아시나요?
그순간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없었다면 두근대는 내 심장 소리를 들킬 뻔했다.
면담실을 가득 채운 수녀님들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다가
한 분에게 시선이 멈추었다.
그분은 들판에 홀로 핀 수선화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글씨 못 쓰던 수녀님이 바로 그분이란 걸 알아보았다.
나를 바라보는 그분의 눈빛이 유독 사랑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수녀님의 눈은 다른 수녀님들보다 더 반짝였고
나를 향한 미소는 더 천진난만했다.
배경음악이 있었더라면 (반짝반짝 작은 별) 이었을 것이다.
바람은 곱고 햇살은 따사로운 날이었다.
그렇게 잠시 시간이 멈추었다.
만나지 않았어도 알 수 있다.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았어도 들을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 인연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