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천변을 걸어
성큼 여름이다. 올봄 거제로 근무지를 옮기고부터 주말 이틀 가운데 토요일은 온전한 하루를 보낸다만 일요일은 여유가 없어졌다. 거제로 가기 전엔 일요일도 창원 근교 산자락이나 들녘을 누비다가 귀로에 친구를 만나 가벼이 잔을 들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일요일은 가급적 집안에 머물다 늦지 않은 오후에 이른 저녁밥을 먹고 팔룡동으로 나가 고현행 시외버스를 탄다.
유월 첫째 일요일이다. 새벽녘 토요일 일과를 두 편으로 나누어 글을 남겼다. 전편은 ‘가덕 응봉에 올라’로 금요일 저녁 가덕도 형님 댁에 머물면서 이튿날 형님과 응봉에 올랐던 이야기였다. ‘강변 산책에서’는 토요일 아침 창원으로 복귀해 대산 강둑으로 나가 죽순을 채집한 얘기였다. 대산 들녘 송등마을에서 마을버스를 탔더니 감자 수확 일손을 팔고 가는 두 아낙을 만났다.
일요일 오전 아내는 평소 다니는 절 법회에 나가고 난 집안에 머물렀다. 점심나절 이후 아내가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었다. 그 전 반송시장에 잠시 다녀왔다. 전날 가덕도 형님 댁을 찾아 텃밭서 가꾼 싱싱한 상추를 가져왔다. 족발을 사 그 상추로 쌈을 싸 먹기 위함이었다. 가끔 들린 족발 가게에서 족발을 사서 돌아오다 노점 과일상이 수박을 팔고 있어 한 통을 사 왔다.
배낭에 시금치나물을 담고 내가 약차로 끓이는 재료 가운데 헛개나무와 두릅나무 조각을 조금 챙겼다. 세탁한 셔츠와 티도 넣어 집 앞에서 101번을 타고 팔룡동을 나가 고현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해가 길어진 때라 아직 날이 저물기 전인 오호 다섯 시였다. 몇 지기에게 ‘금래일귀’이지만 이번 주는 주중 현충일로 수요일 저녁 창원으로 돌아올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냈다.
버스가 창원터널을 지난 장유에서 승객을 더 태워 녹산터널을 지나니 신항이었다. 가덕도를 거쳐 거가대교 침매터널을 지나 저도 연육교를 거치니 거제 장목이었다. 좌우에 진해만과 거제 바깥 바다가 드러났다. 비로소 내가 오가는 곳이 섬임을 실감한다. 거기까지 교통 체증이 없으면 창원에서 한 시간 걸렸다. 덕포와 송정터널을 지나 연초삼거리고 금방 고현터미널이었다.
고현에 닿아도 아직 날은 어두워지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터미널에서 연초를 거쳐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연사마을까지는 십여 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나는 시내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전에도 몇 차례 걸은 적 있다만 일요일 고현으로 돌아와서는 처음이었다. 터미널에서 항만 개발로 매립을 끝낸 고현항 근처로 나갔다. 중곡지구 상가와 아파트를 지났다.
내가 사는 연사마을까지 걸으면 한 시간이면 족했다. 연초천이 흘러와 고현만으로 드는 천변에는 테크가 설치되어 시민들이 아침저녁 산책을 즐겨 다닌다. 일요일 오후여서인지 산책객은 그리 보이질 않았다. 고현만으로 드는 하천은 ‘기수역((汽水域)’으로 민물이 흘러와 바닷물에 겹쳐져 염도가 해수보다 낮다. 기수역에 자라는 게나 고둥이 서식해 철새들이 많이 찾는 데다.
연초천 하류 기수역은 마침 조수가 밀물 때라 수위가 점차 오르는 즈음이었다. 고현만은 매립되어 바다가 바깥으로 밀려나갔지만 해수는 연초천 하류까지 밀려왔다가 밀려나갔다. 썰물이면 하천 바닥이 일부 드러나 왜가리나 백로들이 날아와 먹이사냥을 하는데 밀물이라 철새들은 보이질 않았다. 아파트단지와 가까운 천변 들녘 논에는 모내기가 거의 끝나가는 즈음이었다.
데크와 우레탄이 깔린 산책로를 걸어 연초교에 이르렀다. 연초교는 내가 평일 아침마다 산책을 나와 둑길을 따라 학교로 향해 꺾어지는 지점이다. 다리와 붙어 설치된 테크를 지나 다시 들녘으로 걸었다. 거제대로 찻길과 나란히 트랙터나 차량이 다니도록 한 농로를 따라 걸어 연사삼거리에 닿았다. 골목을 지나 몇 동 다세대 주택 가운데 외관이 낯익은 한 원룸으로 들었다. 19.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