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첫눈 / 허은실 『서울신문/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운주사]

사진 〈Pinterest〉

첫 눈

허 은 실

곡기를 끊고
누운 사람처럼
대지는 속을 비워 가고
바람이
그 꺼칠한 얼굴을
쓸어 본다
돌아누운 등 뒤에
오래 앉았는 이가 있었다
아-해봐요 응?
마른 입술에
떠넣어 주던
흰죽
세상에는 이런 것이 아직 있다

-『서울신문/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2022.12.23. -

첫눈은 허공에 발자국도 내지 않고 옵니다. 구겨진 약봉지처럼 꺼칠한 얼굴로 옵니다. 오래 아파서 돌아누운 이 곁에서 미음이라도 한술 뜨게 하려는 마음으로 옵니다. 오는 듯 마는 듯 하다가 쌓이지는 않고 눈썹을 스치며 옵니다. 흰죽의 순정한 표정으로 식어 가며 옵니다. 마른 입술을 적시는 물기로 스며듭니다. 첫눈이 옵니다. 조금 울고 마는 사람처럼 왔다가 그칩니다.

〈신미나 시인〉

  Prelude -George Winston

회복기 - YES24

허은실 시집 〈회복기〉  문학동네 | 2022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Cotton-강강훈 · 첫눈-허은실

첫눈 / 허은실 『서울신문/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원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