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7일, 그 어느 해보다 맑고 유난히 푸르렀던 가을 하늘은
우리 대 수도여고인들을 위한 축복의 선물인 듯 쾌청 그 자체였다.
덕분에 어느 멋진 하루를 선물 받을 수 있었던 그 하루는 이 세상살이 70년, 여고 졸업 50주년을 맞는
27기 수도여고생들을 위한 삶의 멋진 식탁이자 온전한 자축연으로 기억 될 수 있겠다.
사실 시간을 건너 다시 모여 "함께" 가 된 그날, 우리가 누구보다 진지하고 유쾌하며 행복하게
2025년 가을날 하루를 완벽하게 보낼 수 있었던 까닭은 아마도 각자 일궈내고 다듬어 오며 흘러갔을
삶의 무게 70년의 과거로부터 또다른 출발을 위한 버라이어티 쇼였음이요
졸업 후에도 여전한 삶의 매무새를 잘 매만져온 우리들의 잔치이자 축제로서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축복 속에서
호텔 "롯데월드 에메랄드" 홀에서 "함께' 라는 이름 아래 조촐한 듯 성대하게 스스로를 빛내며 치뤄낸 덕분이기도 하겠다.
약속과 행사의 장소인 에메랄드홀의 문이 열리기 전에 이미 로비에서 만나진 우리는 반가운 얼굴들,
오랜 세월을 건너온 얼굴들을 만나며 우리의 행복지수가 저절로 오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한 에메랄드홀에 들어서는 순간 무한 감동이 밀려왔으며 공간 속에 잠식당하는 듯 했다.
행사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자 친구들이 하나둘 들어섰다.
아는 얼굴도 있었고 낯선 얼굴인 듯 하였어도 생면부지는 아닌 듯한 얼굴들이 가까이 다가와 아는 척을 한다.
50년이라는 세월의 숫자가 믿기지 않을 만큼 반가운 미소와 따듯한 인사가 가득했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아는 척을 하며 어깨를 내주었어도 그 인사가 얼마나 반갑던지 울컥,
인사법이 역시나 수도여고 출신다웠다.
역시나 여기저기서 들리는 " 야, 너 그대로다" 라는 말은 세월의 흔적은 있었어도
기본 얼굴 모양새는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될 터, 누군가는 호탕하게 웃었고
또 누군가는 손을 잡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히며 새삼스럽다는 몸짓을 보였다.
에메랄드홀, 역시 이름값을 하는 듯 했다....이 빛나는 원석같았던 소녀들이 갈고 닦인 채 보석이 되어 나타났으니 말이다.
여하튼 일단은 그 세월을 무난하고도 꿋꿋하게 버텨 함께 마련하는 잔치의 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과
만났다는 단순한 의미를 떠나 잘 살아있었다는 안도감을 동반하면서도 여전히 그 시절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었던지 싶었던 그 하루는 그래서 감동 그 자체 이기도 했다.
우리의 단발 청춘이 잠시 머물렀던 수도여고, 그리고 지금도 함께 하는 우리는 어느덧 시간을 건너와
다시 헤쳐 모여를 하면서 "함께"라는 울타리를 지키며 우리들의 청춘을 회상하는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
새삼스럽다는 말보다는 감동이라는 말이 어울렸던...
게다가 그 시절의 선생님을 맞는 우리는 두배의 감동을 맛보게 되었다.
설마 오시겠어는 탄성으로 변했고 여전히 정정하시거나 세월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어도
기꺼이 찾아주신 선생님들의 발걸음에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는 그 순간은 경이롭다 였다.
이후 수다스러움과 시끌함으로 가득찼던 공간이 잠시 호흡을 멈추고 우리가 마주한 영상 속에서
그 시절 수도여고 교정이, 그때의 교복과 친구들의 표정에서는 나뭇잎이 굴러만 가도 숨이 넘어지도록 웃었던
웃음소리가 조용히 살아나는 추억의 공간으로 변모되어 우리의 눈을 잠식하게 되었다.
영상이 시작됨과 동시에 저런 날이 있었지 싶은 빛바랜 추억들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그 옛날소녀들의 얼굴들이 화면 속에서 뛰쳐나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선연한 기억들이 영상과 함께 등장하는 순간, 헉....눈물도 그렁그렁,
저렇게 빛나던 시절이 있었음을 실감하면서 미처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친구들이 아쉬웠다.
그 시절 우리는 그 어떤 세상에서든 주인공이었고 겁날 것 없는 용기로 대면하게 될 미래 사회 속에서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며 단정한 교복 속에서 거침 없는 제 세상을 구현하던 어린 소녀들이었다.
그리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그 공간 속에서의 마음은 여전히 함께 하는 친구가 있어 행복하다 였다.
반면 본행사를 이어 진행되던 2부 순서에서 우리에게 고품격의 눈과 귀를 선사했던 피아니스트 최은주, 첼리스트 김수정.
조금 아쉬운 면이 있었다면 무대 위 친구들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 준비한 고품격 연주가 진행되었지만
아쉽게도 피아노가 연주자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최은주의 연주를 방해하는 쟁쟁쟁거리는 피아노 건반이 귀에 거슬렸고
음을 잡아 먹는 건반의 불협화음이 귀에 들리자마자 연주하기가 남사스럽고 미칠 것 같았을 최은주의 표정이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해준 최은주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이어서 첼리스트....의 연주는 역시나 두말하면 잔소리였고 시간이 멈춘듯한 이 자리,
어렵기 짝이 없을, 한때 빛났음을 기꺼워하는 시어머님의 동창들 자리에서 부담감과 함께
우아한 연주를 해내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 김수정 첼리스트, 오 역시 프로들은 다르다니까 였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두 연주자들의 마력적인 연주를 들으며 감동을 느끼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멈춘듯 했다.
앞서 화면을 통해 전달된 우재선 선생님의 영상편지 또한 그 시절을 기억하는 미세하게 떨리는 감동이었고
현직 교장 선생님과 선배님의 격려는 우리에게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물론 친구들의 가족과 지인이 보내온 축하 메세지는 각자의 상황에 맞게 전달되어 또다른 감동을 주었고
그 순간 우리는 잘 살아왔음과 잘 살아낸 자식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냈다.
이후 레크레이션 시간, 그날 광란까지는 아니었어도 비스무레한 광기 속에서 온 힘을 다해 시간을 붙잡으며
아니 저 친구들은 저렇게 넘치는 끼를 어찌 방치하고 살았다니 싶을 정도로 에너제틱했다.
가수 박성현의 노련한 진행과 출중한 노래가 아마도 우리의 에너지와 열기를 끌어내었음은 물론
더더욱 그 순간을 누리고 즐기고 싶었을지도 모를 일이겠다.
그렇게 온힘을 다해 마치 그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공간을 지배하고 시간을 잡았지만
이미 약속된 시간은 어느덧 흘러흘러 함께 나누고 즐기던 시간을 뒤로하고 헤어짐을 예견하는 순간
마지막 피날레로 그때 그 시절을 그리워 하며 등장한 교복소녀 "김경림"의 자작시어로 빛을 내며 마무리 되었다.
*********************************우리 하나의 물길로 / 김경림
반가운 친구들이여....
우리 다시 이렇게 한 자리에 둘러앉았습니다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맑은 물방울로 흩어지던 백합분숫가,
소녀들의 목소리가
노오란 은행잎으로 내려앉던
은행나무 아래 벤치,
그리고 상아당이 떠오르는 후암동 교정.
그 백합동산을 떠나온 후,
30년 만의 만남으로 우리 하나의 우리 하나의 물길을 이루어,
10년 또 10년 흐르고 흘러
50주년에 닿았습니다.
긴 세월의 강을 건너,
이 자리에 함께 한 친구들의 얼굴이 모두 빛나 보입니다.
하루하루 스스로 갈고 닦아 빛을 낸,
70개의 보석을
저마다의 품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친구들이여!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이
마음에 걸려있던
무거운,
삶의 빗장 하나 풀어주고,
기도해 준다는 친구의 말이
무너졌던 마음조차
평안하게 해주니,
언제나 한 줄기
다정한 말을 건네
한 송이 기쁨으로 피어나게 합시다.
아팠던 일, 슬펐던 일, 떠나보냈던 일,
눈물나는일을 다 잊으라고
꽃이 피는 거라 하니
우리가 꽃으로 피어납시다.
수도 27기 여러분!
시들지 않는 백합 한 송이 가슴에 품고,
언제나 향기 그윽한 백합꽃이 됩시다.
*****************************************************김경림의 시어
흘러간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잠시 멈추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1975년의 단발머리 소녀의 청춘이 2025년의 노년으로 변모하였어도
"함께" 라는 이름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다함께 웃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진 우리는 반세기 시간동안 변한 것은 세월 뿐이라고 말하면서 마음은 여전히 수도여고 시절 그대로였으며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여전히 함께 할 것이라면서도 아쉬운 표정의 얼굴로 돌아서며 뒷모습을 보이던,
헤어짐 속으로 멀어져간 친구들의 발걸음이 아직도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함께한 50년, 감사와 축복을 나누는 날" 을 부제로 달았던
수도여고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는 뿌듯하고도 준비한 것보다도 더 멋있고 근사했으며 미련 없이 마무리 되었다.
와중에 아낌없는 나무가 되어 후원회비를 흔쾌히 쾌척해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한은희를 비롯하여 지면에는 일일이 이름을 죄다 밝힐 수는 없어도 키다리 아저씨같은 그녀들의 너른 마음씨에 감동하였다.
혹시나 원하는 만큼 혹은 타학교 졸업생들보다 부족하면 어쩌나 싶었지만 괜한 염려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 "9천5백만원 이상"을 나눔해준 친구들 덕분에
다양한 행사는 물론 뒷전에서 힘을 보탠 친구들까지 상승기분까지 맛볼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했다.
사실 감동이라는 말로 포장하기에는 부족한 친구들의 넉넉한 마음자락에 박수를 보낸다.
더불어 이 모든 행사를 무탈하게 치뤄낼 수 있도록 진두지휘 해준 27기 "한은희"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물심양면의 수고로움을 자청해준 반대표들, 참여해준 국내외 친구들과 비록 각자의 상황이 맞물려
마음으로나마 응원하고 지지하였을 미참석친구들, 소녀시절을 빛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그 시절 선생님과
선후배를 비롯한 현 수도여고 교장선생님의 축하와 격려는 물론 가족과 지인들의 진심어린 50주년 환영인사까지....
이 모든 것을 아우른 마음을 담아 지면을 통해 함께 한 모두에게 27기 친구들을 대신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라는 말 속에는 어쩌면 인연이 되어 만나진 모두를 말하는 것 일지도 모를 일이겠다.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내왔음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잘해왔다고 믿는다.
더불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원하는 걸 이뤄내며 이자리까지 온 우리들을
스스로 잘했다고 다독이며 끝낸 이 잔치가 두말 할 나위 없이 더욱더 소중했다.
오롯이 꿋꿋하게 지내온 각자 삶의 흔적과 부단한 세월의 부대낌을 무사히 견뎌와 이 자리에 선 삶의 동반자로서,
순수하고 해맑은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온 친구로서 개개인 모두 자신의 자리에서 주인공이 되어 만나진다는 것은
또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던가를 절실히 느끼게 했던 수도여고 50주년의 그 하루의 행사는
그래서 더더욱 남겨진 삶의 몫으로서 살아가는 내내 더 빛날 일이 없을지도 모를,
우리 삶의 귀한 보석으로 남겨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함께 / 황청원
나무가 홀로 서서 나를 바라본다
나도 홀로 서서 나무를 바라본다
홀로 서서 바라보고 산 지 오래다
그래 멀리 떨어져 얼굴 희미해도
세월 속 지나 이 길 끝날 때까지
서로 바라보며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 50주년 기념을 상징해 주었던 황청원 시인의 시어
첫댓글 이제는 후암동 교정이 서울 교육청으로 외관 공사는 거의 끝났더라고요,,, 50주년 축하드립니다.
넵, 고맙습니다.
언제 한 번, 친구들과 함께 가봐야겠네요.
후암동의 변모된 모습도 보고....
덕분에 소녀시절로 갔다가 그날로 갔다가 오락가락 즐거웠네요. 그날의 샛노랬던 은행잎 가득 떨어져 낭만 충만했던 백합 분수가에서
추억이 머므르니 행복한 기억들이 스멀스멀 몰려옵니다 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