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멍 외 2편
구지혜
농도 짙은 산영에 멍울을 적시고 앉아 아름답게 무너지는 색色을 만나고 싶다
바람을 잔뜩 들이고 노을에 길을 잃고 싶다
아가미 되었다가 허파 되었다가 흘러 다니다가 역류한다 저 문장 속엔 부레가 있다 아니 지느러미 없다 안개가 있다 떠다니는 검은 눈동자 보이지 않는다 구겨진 마음 펼 수 없어 한동안 애를 먹는다
깊을수록 외롭지 않은 사랑이 있나
속으로 흐르는 시간은 불안이 출렁일 때가 많다
여기 파랑波浪이 일고 있다 ‘안녕’을 고하는 당신의 늪
고요해질 때까지 물결의 울음은 그치질 않는다
하늘은 호수에게로 건너간다 호수는 파랑으로 온몸 물들인다 그들의 마주 보는 세월이 조용히 깊고 넓게 맑아진다는 사실 그때는 몰랐다
당신이 되는 계절을 넘기지 못해 죄를 앓는다
우리는 구름이 중요하고 간절하고 추억은 차갑고 결핍은 결핍을 먹고 자라고 부재는 가장 바깥쪽으로 기울고 숨은 희미해지고 해는 조용히 시들고 강은 평온을 준비하고 저녁은 최선을 다해 헐렁해지고
떠발이
장기의 안과 밖을 떼었다 붙였다
한생 벽관 수행해 온 타일 시공자
타일 등뼈에 망치를 두드리며
피침을 한 손에
들고
물고기의 가시와 녹슨 장미가 허물지 못하도록
속 깊은 데까지 말갛게 드러내지 못하도록
꽃다운 노모 속으로 바닥의 내장을 밀어 넣는다
망치의 두개골에 타일을 두드리며
한 손에 피침을
들고
늙은 청춘 속으로 벽의 허파를 밀어 넣는다
암 덩어리를 해부한다
하수구 도랑의 하얀 물 알갱이가
화장실 물관을 빠져나가는 극야
이제 그는 새로운 암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핀란드의 친구들은
자작나무의 구명을 호소하기 위해 그를 여행 중이다
― 구지혜 시집, 『안녕, 나의 創世 편의점』 (시와정신 / 2022)
구지혜
본명 구명숙. 경북 영양 출생. 한남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2011년『시와정신』 가을호 신인상. 2017년 대전문학관 시뿌리기 확산 선정작가. 2018년 제5회 전국계간문예지 우수작품상 수상. 2019, 2022년 대전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집『그늘을 꽃피우는 시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