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있는 이충무공 학술회의에 참석했습니다.아래 자료들은 해군사관학교에 가기전 답사한 내용입니다.용지공원에 간 이유는 난중일기에 기록된(등장하는) 윤우신 선생에 대한 유물이 하나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보물 362호인 진경대사 보월능공탑(眞鏡大師 寶月凌空塔)과 보물 363호인 부도비는 진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고 여기 용지공원에는 실물모형이 전시되있다. 두장밑에 사진내용은 그 복제기이다.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의 하나로 이름을 날리던 봉림산파의 중심 사찰 봉림사(鳳林寺)의 남은 유물이다.봉림사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은 답사여행의 길잡이 경남편을 참고하시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056802&cid=42840&categoryId=42844
<부사김공청직유애비>
김복일은 자 계순(季純), 호 남악(南嶽)이다.1541년(중종 36) ~ 1591년(선조 24).경북 예천 용문면에 남악종택이 있다.퇴계 이황의 제자로서 학봉 김성일의 아우이다.
예천 의성김씨 남악종택: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0956&cid=46673&categoryId=46673
남악 김복일: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52241&cid=46622&categoryId=46622
답사의 묘미와 재미
사실 용지공원에 가기전에 남야 김복일의 유애비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모랐었다.인터넷에 잘안나오니...그런데 가서 보니 대뜸 이름을 아는 분의 비가 있기에 반가움이 더한다.이런 것이 답사의 묘미가 아닐까?
★ 윤우신의 은택을 기리는 부사윤공유애비(府使尹公遺愛碑)=1581년 3월 17일에 세움(창원시 자료)
★윤우신(尹又新,윤지사.본관은 남원.난중일기 백의종군 옥문을 나설 때 등장하는 윤자신(尹自新,지사,아들은 호가 장빈자인 윤기헌이 있다)의 從兄인데, 족보상으로는 윤자신의 부친이 숙부에게 양자로 들어갔기에 6촌(재종형)형님이다.순변사 이일의 종사관으로 경북 상주 북천전투에서 순절한 윤섬의 부친,창원시 용호동 용지공원에 부사윤공유애비(府使尹公遺愛碑)가 있다.이귀와 이덕형은 십대때 윤우신의 제자이다.증손자가 병자호란때 청나라에 끌려가서 충절을 지키다가 순절한,유명한 삼학사중 1人인 윤집이다. 윤우신의 8대손이 정조때 이충무공전서를 편찬할때 힘을 쏟은 윤행임이다.남원 윤씨 문중은 이순신 장군을 돕고 후원한 문중이다.난중일기에 3회등장한다.):1593-6/12(142)~1594-6/14(217),
남원로터리에는 이순신 장군이 남긴 '서해어룡동 맹산초목지'(誓海魚龍動 盟山草木知·바다에 서약하니 물고기와 용이 감동하고 산에 맹세하니 초목이 아는구나)란 한시를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친필로 새긴 시비가 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 교육관 앞에 새운 이충무공 동상.전국 최초로 활을 들고 서있는 동상이다.천안의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 임원빈 소장께서 해군에 강력히(?) 의견을 피력하여 관철시켰다고 한다.
난중일기에 활이 등장하는 기록은 대략 270회나 된다.
이순신 장군은 부하 장졸들과 함께 틈만 나면 활을 쏘았다.칼을 쓴 무장이 아니란 뜻이다.광화문사거리에 있는 동상은 칼을 잡고 있는데,난중일기를 모르는 조각가들이 예술성만 따졌고,역사성은 제외하고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예천에서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맞이 해주신 해사 교장 정안호 제독(소장)님은 안동 풍산면 소산마을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이순신 장군이 모함으로 의금부 옥에 갇혔을 때 신구하는 의견(신구차사)을 올려서 목숨을 구하는 변론을 펴서 백의종군케한 예천출신 명재상 약포 정탁(藥圃 鄭琢)의 후손이시다.
안동 소산마을 대단한 마을입니다.하회마을에 버금가는 마을입니다.근세 독립투쟁을 대단하게 한 마을이죠.
서애 류성룡 선생이 이순신 장군이 하옥되었을 때 적극적으로 변론하지 못한 것은 잘못하면 선조의 심기를 더 크게 건드릴까봐 조심한 것이고,약포 정탁의 신구의견 이후에 이순신 장군이 옥에서 풀려난 것이죠.옥에서 풀려난 이순신 장군은 다음날 남대문 안으로 들어가 영의정 서애 류성룡과 초저녁부터 닭이 울때까지 독대를 합니다.전략,전술,아쉬웠던 점...수군을 ...전란을 어떻게 극복할 것등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진솔한 토론이 있었을 겁니다.
첫댓글 김복일 선생, 기억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