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안재성은 나와 강원대 축산과 동문이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다가 고향 이천에서 포크레인 기사를 하면서 생업을 영위하고 있다.
내 친구 강릉고 동기와 학생운동을 같이 했고 술 자리도 가진 적이 있다.
이 책은 '파업'의 작가 안재성씨가 1930년대 조선 내 사회주의자들의 자취를 뒤쫓아가며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조선내 자생적 사회주의 그룹이었던 ‘경성트로이카’를 이끌던 이재유, 김삼룡, 이현상 그리고 그들의 수많은 동지들이다.
저자는 책의 첫부분 ‘사라진 시간을 찾아서’라는 章에서 자신이 왜 이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고 있다.
1990년대초 소장파 사학자 김경일 교수에 의해 발굴되어 비로소 활자로 기술된 ‘이재유연구’와 이효정 할머니(경성트로이카조직의 유일한 남한 내 생존자)의 아들 박진환씨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작가인 안재성씨는 이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도중 주인공들의 모습이 대단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비극적 죽음을 보고 허탈하기도 했다.
죽음을 각오하고서 활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들이었지만, 이재유는 해방을 1년 앞둔 채 감옥에서 죽음을 당했고, 해방정국과 6.25를 거치며 남로당 총책이었던 김삼룡과 빨치산 총대장으로 활동했던 이현상도 남한 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또한 항상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던 순박한 이상주의자 이관술의 죽음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일제의 모진 핍박을 받으면서도 그 고통을 온몸으로 이겨냈던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한과 북한 모두에게 버림받고서 설자리를 잃고 죽어갔다.
박헌영 또한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북한에서 총살당했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수많은 혁명적 좌익세력이 생각났다.
인류의 이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스페인의 혁명적 좌익을 탄압하고 심지어 사살했던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생적이고 현장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인 경성트로이카를 견제했던 국제파의 모습은 같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삶의 숭고한 의미를 더욱 기억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따라서 이후에도 일제하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역사학계의 연구와 그들의 삶을 재조명할 수 있는 이러한 책들이 더욱 많이 나와야 한다.
경성 트로이카는 1933년 결성된 일제강점기의 항일 독립운동 단체이자 노동운동 단체이다. 이 단체의 운동은 ‘경성트로이카’(1933) ‘경성재건그룹’(1934.), ‘조선공산당재건 경성준비그룹’(1936)의 세 시기로 나눌 수 있으며 이 구분은 이재유가 직접 제시한 것이다.
이 단체의 활동가들은 이재유 그룹이라고 불렸다.
1936년에 이재유가 검거되고 이어서 김희성이 주도한 조직도 검거되어 경성의 양대 조직이 모두 와해되었다.
그 후 1937년에 이관술, 박진홍, 공성회, 김순진, 이순금, 안병춘, 김재선, 이성학, 남남덕, 조병목이 그룹을 형성했는데, 이 그룹은 2년 후인 1939년에 경성콤그룹이 만들어지는 단초를 제공한 조직이다.
참고로 이관술만 지하운동하는 수배자이고 다른 사람은 겉으로는 합법 생활을 하면서 이면에서 운동을 모색하는 중이며, 같은 조직이라도 한데 모인 일은 없었다. 그래서 박진홍 등 다른 사람들은 겉으로는 합법 생활 중이니까 자주 접촉에 성공하는 것이고, 이관술은 따로 행동하는 것이다.
2004년 6월의 어느 초여름밤 경성트로이카 조직의 일원이었던 남한 내 유일한 생존자 이효정 할머니가 숨을 거뒀다. 그녀의 삶은 빨갱이라는 낙인 때문에 모진 핍박만 받았던 한 많은 생이었다.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등진 것일까? 세월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수 있을까?
그건 결단코 아니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