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략이나 음모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야. 오히려 저자보다 내가 한수 위이지. 하지만 말이야, 음모를 꾸미건 모략을 꾸미건 이간질을 하건 어쨌건 자기 살을 깎아먹는 짓거리를 하는 것은 그자의 눈이 이미 멀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 모략이나 음모가 치밀하고 정확할수록 그의 살은 치밀하고 정확하게 뜯겨져 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는 것을 그는 전혀 모르게 되지. 지금 저자가 그런 상태야.”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것이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저런 상태라면 저자가 추구하는 것만 계속 던져주면 저자를 우리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저런 자를 바라보고 이용하는 나의 마음은 편할 것 같나?”
“......”
“모략이나 음모를 세우는 데에 극에 달한 자는 그것의 성과를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 희열을 느끼기 보다는 착잡함을, 성취감 보다는 동정심을 느끼기 마련이지.”
“하지만 이것은......”
“블루 셰도우의 의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자네?”
“......”
“후후후후...... 흐흐흐......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경덕은 갑자기 하늘을 향해 광소를 터뜨렸다.
“그래...... 이것이 조직의 의지인가. 크크크크크...... 후하하하하!” 경덕은 거리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광소하는 듯 울부짖었다.
“나의 감정에는 별로 신경 쓰지 말도록 해라. 승자의 여유라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고 너는 내가 지시하는 일, 그리고 조직에서 지시하는 일들만 잘 처리하면 된다. 알았나?”
경덕의 광소에 어리둥절해 있다가 갑자기 경덕이 평소의 목소리로 말하자, 요한은 놀란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먼저 가보도록 해. 나는 만날 사람이 있으니 말이야.”
“그게 누구......” 요한은 자신이 잠깐 잊었던 사실을 상기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바로 경덕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 자체를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 말이다.
그랬기에 요한은 군소리 하지 않고 발걸음을 빠르게 해서 거리 반대쪽으로 사라졌다.
“큿크크크크...... 캬하하하하하...... 푸흐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 요한이 사라진 이후에도 경덕은 혼자서 계속 끝없는 광소를 터뜨렸다.
누구보다도 모략과 음모를 꾸미는 데에 익숙한 그였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가 말한 경지에 다다른 것일까.
지금 블루 셰도우가 꾸미고 있는 것에 대해서 이유 모를 죄책감이 자꾸 들어왔다.
‘나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궁극적으로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 확신하고 있고, 그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왜? 왜 이 일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별로 편하지 않지?’
경덕의 눈앞에 부유한 가정의 사람들로 보이는 한무리의 가족이 깔깔거리면서 거리를 지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런 사람들의 행복을 해하는 것이 걸려서인가? 후후후......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아. 저들은 저런 삶을 살기 위해서 그들의 수백배, 수만배나 되는 사람들의 행복을 앗았으니까. 하지만...... 그런가, 그런 것인가?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숱하게 희생되어야 하는 존재들 때문에? 그들의 삶을 우리가 앗는다는 것 때문에? 그것 때문에?’
우두커니 서있는 경덕의 주위를 숱한 사람들이 흘기면서 지나갔다.
‘그래...... 이런 쓸데없는 생각. 할 이유가 없어. 그래......’
“여기 계셨어요?” 경덕은 자신의 어깨를 살짝 친 그가 누구인지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홍성혁. 내가 그 ‘-요’ 하는 말투 좀 제발 쓰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나?” 경덕은 일부러 목소리를 날카롭게 하였다.
“아, 죄, 죄송합니다.”
“여기는 별로 이야기하기가 좋지 않군. 어디 다른 한적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
경덕은 길을 바라보지 않고 매연으로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 하늘이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라서야 경덕은 발걸음을 멈췄고, 그에 맞춰 뒤따르던 성혁의 발걸음 역시 멎었다.
“지금 함대를 준비해라.”
“네?” 성혁은 깜찍하게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조금 전에 P.A의 최고의원인 정영호를 만나고 왔다.”
“에? P.A가 뭐에요?”
경덕은 의외의 질문에 골이 띵해오는 것을 느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정영호를 만나서 어쨌냐는 정도의 질문이 나올 거라는 것은 예측했지만 이런 질문이 나올 줄은 전혀 예측하지를 못한 탓에 경덕은 기가 막힌 듯 연신 헛기침만 했다.
“태양계와 내행성계를 지배하는 정권이지. 행성 동맹의 영어 이니셜을 딴 것이야.”
“네...... 그런데, 최고의원은 또 뭔가요?”
경덕은 다시 한번 골이 띵해오는 것을 느끼고는 어이없다는 듯 성혁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P.A를 다스리는 최고의 기관인 최고회의의 일원이다. 참고로, 정영호는 P.A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자로서, 대단히 야심과 욕망이 넘치는 남자지.” 경덕은 그가 예상하는 질문을 답하지 않길 바라면서 그가 묻지 않은 말까지 해 주었다.
“네...... 그런데,”
“뭔가?” 경덕은 슬슬 다시 골이 띵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성혁의 말에 답했다.
“정영호가 누굽니까?” 경덕은 그대로 근처의 벽에 머리를 들이받았다.
벽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머리가 떨어질 뻔 했다.
“조금 전에 내가 말하지 않았나.”
“아~~ 태양과 내행성계를 지배하는 정권 말씀이신가요?”
“ㅡㅡ;;;;”
경덕은 성혁이 은영이나 철우의 휘하에 들어갔다면 벌써 엄청난 ESP세례를 받았으리라는 예상을 금방 할 수 있었다.
“자네...... 샤인 로스트 요원 훈련때 도대체 뭘 배운 건가? 자넨 분명히 정치공작과를 이수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어떻게 이정도인가?”
“그런게 제 적성에 맞질 않아서......”
“여하튼, 내가 말하는 대로 함대를 준비해두게. 워프와 (2세틀라이트 어택(Satellite Attack), (3에어 크래쉬 어택(Air Crash Attack)을 사용할 수 있는 전함을 중심으로 편성하게.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함대를 전부 우주해적처럼 보이도록 위장하고, 미스트 역시 그와 같이 변장하되, 별로 표가 나지 않도록 하게. 알겠나?”
“네. 그런데 왜 이런 명령을......”
“자네가 앞에 보여준 것으로 봐서는 내가 설명을 해도 알아들을 것 같지 않군. 보고 갈 사람이 있어서 약간 늦겠지만 그래도 그리로 가서 확인해 볼 테니, 그렇게 알게.”
“네.”
“그리고...... 홍미나의 처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성혁은 묵묵부답이었다.
정확히 말해서 손도 한번 대지를 않았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비교적 수하에게 관대한 편인 경덕의 휘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수하들의 일처리에 대해 특히 깐깐한 은영이나 철우의 밑, 그중에서도 철우의 밑에 있었다면 어떤 문책을 받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내가 감싸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죄송해요......”
“그 말투는 뭔가?”
“앗! 죄, 죄송합니다!”
“웬만하면 나나 다른 진인이 직접 나설 일이 없었으면 해.”
“아, 네. 네.”
“그럼 먼저 가보도록.”
경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혁은 골목의 반대쪽으로 서둘러 달려 나갔다.
(1영액(靈液) : 이것은 사람의 영혼이 가지고 있는 영력이 구체화된 것으로 끈끈한 액체의 형태로 존재하며 영액의 주인의 의지와 감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 영액은 영력 뿐 아니라 사람의 기억과 같은 정신과 관계된 부분의 상당량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영액에는 특히 윤회의 기록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미지의 분야나 다름없는 것이라서 숱한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실험대상이 될만한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 진전이 별로 없다.
(2세틀라이트 어택(Satellite Attack) : 위성포. 세틀라이트 빔과는 다르게 전함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성을 우주공간으로 보내서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강력한 공격을 가하는 것으로, 함대전과 같은 데에서는 쓸데가 없지만 행성이나 소행성 요새를 공격하는 데에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블루 셰도우 함대의 기본장비. 하지만 블루 셰도우의 함대는 자신들의 함대를 소진시키고 싶지 않아서 P.A의 기술로 만든 함대에 약간의 개조만 가해서 사용한다.
(3에어 크래쉬 어택(Air Crash Attack) : 대기의 압력을 극도로 증대시켰다가 한번에 해제함으로써 큰 폭발을 일으키는 무기. 강한 ESP를 필요로 할 뿐 아니라, 대기를 압축시키는 데에 긴 시간이 필요하고, 결정적으로 우주공간에는 대기가 존재하지 않으므로 역시 함대전에서는 쓸데가 없지만 대기가 존재하는 거대한 행성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만한 무기가 없다. 세틀라이트 어택과는 달리 블루 셰도우 함대의 기본장비는 아니지만 공성(攻星)함대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장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