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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차갑다. 반쯤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허공을 달리는 바람이 살결을 스칠때마다 미치도록 시리다.
침대 맡에 앉아 하릴없이 창가너머 싸하게 가라앉은 밤 하늘을 구경하고 있자니 가슴도 시리다.
그리곤 생각한다.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생각이 난다.
그 애는 언제 오려나……
2년 3개월째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귀는 애인의 집이니 어쩌면 동거인 셈이다.
서울의 모 오피스텔. 거실은 넓게 개조시켰고 방은 혼자 사는 그애에게 쓸모없이 두개가 있다.
그리고 아늑한 2층 다락방이 있는데 3개월 전부터 그곳은 내 차지가 되었다.
3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아마 난 그 애와 한방을 쓰고 있겠지.
넓직한 침대안 정 가운데에 네가 누우면 그 옆에 내가 눕고 너는 그런 내 머리를 들어올려 팔베개를 해준다.
달콤한 입맞춤, 짧지만 짙은 너의 키스, 그리고 나를 어루만지는 손길.
2년 째 우린 열렬한 사랑을 했다. 누구보다 가슴 뜨겁게 그리고 가슴 벅차게.
그러던 어느 날 너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늘 이 공간에서 너를 바라보며 너만 기다리는 나는 너에 대한 소소하고 아주 작은것들까지도
지나치게 잘 알고있다.
눈에띄게 변한건 단 하나 였다. 너는 여전히 나를 품에 안고 나를 어루만지며 진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더이상 나와 어떤 말도 나누지 않는다는 것.
이것저것 까탈스럽고 다소 거칠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따듯함이 세어 나오던 너.
종일 밥을 먹지 않고 있던 나를 위해 하지도 못하는 요리를 하던 너.
밤새 고열에 끙끙 앓을때면 직접 해열제를 먹여주고 날이 밝을때까지 내 볼을 어루만지던 너.
아침에 눈을 뜨면 늘 하루인사처럼 가볍게 이마에서 볼을 타고 입술까지 입맞춤을 해주던 너.
일일이 나열할수 없을 정도로 내 온몸 이곳저곳을 누비며, 온 신경 세포 하나까지 곤두서게 만들던 네가
점점 더 내게 무신경해지고 있다는 걸 알았고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네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것도 알게 됬다.
심장이 타들어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할정도로 감각을 잃어가고 있을 정도였다.
이를 악문다. 잘 안되면 눈을 질끈 감는다. 그래도 안되면 귀를 틀어 막는다.
그렇게 네가 변하는걸 멀리했다. 조금 더 멀리 보고. 멀리 듣고. 멀리 느껴서
너와의 이별이 조금 더 늦게 오길 바라면서.
잠자코 너에게 물었던 3개월 전 그때가 생각난다. 그때 나는 사흘째 거의 잠도 자지 못해 잘은 모르겠지만
푸석푸석 윤기없는 얼굴에 퀭한 눈으로 너에게 못나보였을수도 있다.
네가 내게 표정같은건 지을줄도 모르는 바보라며 장난을 치던 때를 간신히 떠올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 흔들림없는 목소리로 말하려 노력했다.
여자 생겼냐는 내 물음에 너는 한참의 침묵을 유지하다 이내 곧 수긍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네가 나는 너무 야속하지만, 늘 내 눈을 맞추며 가끔씩 웃어보이던 네가
몇초도 안돼 등을 돌려 너무 속상하지만, 그래도.
너는 나한테 늘 '그래도' 라는 이유가 붙는 사람이였다.
너는 그러면 안돼. 그건 너무 나빠. 그건 네 잘못이야. 정말 그러는거 아니야.
그래도… 애초에 너를 처음 만났을때부터 네가 이럴줄 몰랐다거나 상상하지 못한 일도 아니였다.
나는 그런 너인줄 알면서도 사랑했고 늘 각오했던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대체 네가 어떻게 그럴수가 있어.
그래도… 네가 내게 그러지 않으면 안될 마땅한 이유조차도 없다. 사랑이란 원래 변하는게 당연할테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버텨보려 했지만 잘 안됬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여겨야하는건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숙인 고개 너머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릴까 가슴 졸였던걸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 한켠이 먹먹하다.
너는 그런 나를 보며 말했지. ‘나랑 헤어질거야?’ 다시 생각해봐도 참 이상한 말이였다.
그건 내가 해야할 말 아닌가. 다른 여자가 생겼으니 이젠 나랑 끝인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나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고 너는 내 머리를 흩트리며 여느때처럼 말했다.
‘그럼 그대로 있어.’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앞이 훤히 비치는 끝이였다.
새벽 늦게 들어오더라도 외박을 하는 일은 거의 없던 너는 내게 새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얼마안가 외박을 일삼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길면 며칠째 너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보지만 평소처럼 네게 전화를 걸지 못하는 나를 발견하곤
어느덧 이 사랑의 결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늘 나를 환상의 나락에 서게했던 달콤한 너만의 냄새는 낯선 냄새가 겹쳐져 나를 혼동시켰다.
그건 또 다른 지옥의 고통이였다.
드디어 머리가 돌았는지 이제야 정신이 미쳤는지 나는 기어코 해서는 안될 말을 했었지.
그 여자랑 잤냐는 뻔한 물음을 대신해 몇번이나 잤냐며 물었다.
너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 이내 내게서 시선을 거두고 ‘그런건 세지 않아.’ 라고 말했다.
거기서 말없이 뒤돌아서면 그만인것을, 나는 왜 그랬을까.
‘어디서 자? 그 여자 집? 아니면 호텔?’
‘차유주.’
‘데리고 와. 원래 그런데서 하지 않잖아. 여기가 네 집이잖아. 나는 신경쓰지마.’
비겁한 변명이였다.
나는 네가 하루라도 내곁에서 멀어져 있는게 못내 서글프고 두렵다.
이렇게나 고통스러운데 더 아플게 있을까. 어차피 고통의 깊이는 별반 차이가 없다.
너를 눈에 담지 못해 미칠듯 아파하는 고통이나
네가 내가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걸 느끼는 고통도
아마 같을테니까.
그 때 그 눈빛은 나를 처음으로 낯설게 바라보았었지. 너는 나를 그렇게 보았다.
충분히 이상했으리라. 그렇지만 내게서 질렸다는듯한 그 눈빛은 감춰주길 바랬다.
그리고 마치 너는 버티려고 발악하는 나를 도발하듯
기어코 여자를 집에 들였고 보란듯 우리 둘의 공간으로 모습을 감췄다.
그녀의 애절한 신음소리에 두통이 밤새 나를 괴롭혔다.
철커덕. 네가 들어왔음을 알리는 반가운 문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넘기면 삼일째가 될뻔 했지만
이렇게 들어왔으니 이틀이다.
내려가 볼까. 그렇지만 나는 너에게 환영받지 못할것이다.
여자의 목소리나 인기척은 들리지 않는다.
이틀 내내 네 사진으로 고달픔을 달래며 시간을 죽였는데 드디어 보는구나.
네가 잠이 들면 마음 놓고 봐도 되겠지.
침대 맡에 앉아 머리로 너를 그려본다. 여전히 참 멋진 너 일뿐이다.
쿵쿵쿵, 조금씩 가까이 발소리가 들리고 심장도 그 템포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네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다.
오랫동안 한곳에 한자세로 앉아있어서 지금 몸이 딱딱하게 굳은걸까.
고개조차 돌릴수가 없다.
고맙게도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나를 지나쳐 반쯤 열려있는 창문을 닫는 그 뒷모습이 보인다.
“감기에도 죽을것처럼 아파하는 주제에.”
……
“밥은 먹은거냐.”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너는 기가찬듯 웃어보인다.
그 웃음엔 예전의 진실도 깊이도 의미도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
“일주일전부터 냉장고에 제대로 먹을거라곤 하나도 없던걸로 아는데?”
“아니야. 먹었어.”
“그럼 청소를 완벽히 해놨나보네. 아무런 흔적도 없는거보니.”
“설겆이거리도 얼마 안되니까.”
“아니. 넌 여기서 움직이지도 않고 내내 이러고 있었겠지.”
“그럼 죽어, 바보야.”
“지금도 넌 죽을거같아.”
그 음색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이미 내게 한참 질려버렸고 진저리가 난 듯 하다.
나는 별 다른 할말이 없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지만 마땅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조차도 고민하는 내 모습에 그런 이 현실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내게 조금 더 좋은 말재주가 있었다면 이정도로 고민하진 않았을텐데 아쉽다.
네가 그런 말을 할줄 미리 예상이라도 했었다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
“밥이라도 좀 먹어.”
책상위에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을 마주하고 언뜻 나를 걱정하는듯한 그 목소리에 그 말에
가슴에 저릿한 아픔이 전해온다.
입맛이 없다.
헤어진 연인들중 간혹보면 이별후유증에 식음전폐를하며 단식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나는 아직 완전한 이별도 하지 않았는데 왜 이러는걸까.
나중에 더이상 너를 보지 못하게되는 날엔 그땐 얼마나 더 하려고 이러는걸까.
“내 말 안들려? 넋나간 사람처럼 그러고 있지말라고.”
……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내 목 조르지마.”
……
“널 보면 숨이 막혀.”
……
“답답해서 이러다 내가 먼저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달콤하기만 하던 그 입술로 잔인한 말이 거침없이 뱉어진다.
이럴때면 그 나지막한 소리에 기울어지는 귀가 참 싫다. 지금이라면 앞으로도 지금같다면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괜찮으니 귀가 먹어버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째서 그런 나쁜 말을 하는걸까.
어째서 너는 그런 지독히도 잔인한 말을 해.
날 보면 숨이 막힌다고- 내가 그 숨통을 조인다고
왜 자꾸 나쁘게 변해가.
“배고프다. 밥 먹을건데 너도 먹을래?”
“됬어.”
“그래, 그럼. 지금 내려 갈건데 거기 계속 그러고 있을거야?”
“차유주.”
“응응.”
“너는 계속 그러고 있을거냐.”
“…뭘.”
“그 애 오기로 했어. 굳이 보지 않아도 너도 다 느꼈던것들이 반복될거야.
그리고 한동안 함께 지낼거같아.”
숨이 막힌다. 나중에 이 집을 나가게되면 병원부터 가봐야 겠다.
요즘들어 호흡하기가 곤란하다.
큰 움직임도 없는데 숨쉬기가 참 어려워졌다.
“그래?”
“계속 그러고 있을거냐고 물었어.”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
“얼마나 버틸수 있는데.”
“……”
“그렇게 얼마나 더 견딜수 있는데?”
없어. 네가 그렇게 말하기전까지는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
네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지는 견딜수 있었고 버틸수 있었고 그렇게 하고 있었어.
간신히 벼랑끝에 매달려있는것과 같지만 참을만 하다고.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렇다고, 버틸수 있다고, 더 견딜수 있다고? 얼마나 견딜수 있는지 날짜라도 말해줘야
조금 더 함께 할수 있을까?
“그 여자 언제 온대?”
“뭐?”
“이제 열시가 다 되가. 몇시쯤 오는지 알수 있을까?”
“길어봤자 한시간이야.”
“너무 짧다.”
“뭐라고?”
“한시간이면 짐 정리하는것도 빠듯할텐데. 시간을 좀 더 늦추는건 어렵겠지?”
그런 얼굴 하지마, 단아. 네가 바라던 거 였잖아. 네가 그토록 원하던 거 였잖아.
한시간은 너무 짧고도 짧지만 서두른다면 해볼만 할거야.
생각해보니까 말야. 나 괜찮을지도 몰라.
지난 삼개월동안 이별했잖아.
그때부터가 우리의 이별이였고 나는 조금은 잔인한 그 이별을 배웠어.
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내 집이 낯설다는 그 느낌 말고는 한동안 괜찮을거야.
적어도 함께한 삼개월동안만큼은 덜 아플거야.
“차유주!”
“사실은 나도 너만큼이나 너한테 질려가고 있던 중이였어.”
“…….”
“지독한 생활이였어.”
“…….”
“전처럼 너를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것 말고는 다 괜찮을거야. 적어도 여기서의 생활 보다는.”
“…언제 갈건데.”
“한시간. 짐 챙기는것 좀 도와줄래? 아니면 나중에 택배로 보내줘도 돼.”
“그걸 장난이라고 치냐?”
나쁜놈. 못난놈. 미운놈. 모진놈.
“장난 아니야.”
……
“너도 장난 아니였잖아.”
나한테 이별을 말한거 너도 장난 아니였잖아.
화가 났는지 언성을 높이고 차갑게 식은듯이 굳어진 그 얼굴도 참 다행이다.
끝까지 괜찮은 너라면 조금 더 미룰뻔 했어.
너와의 이별을 조금 더 멀리할뻔 했어.
네가 성큼성큼 다가와 내 팔목을 잡는다. 오랜만에 니 살결이 내 피부에 닿았다.
시간이 흘러 너를 다 지우고나도 이 느낌만은 잊어내지 못할것이다.
절대로 그 손길만은 떨쳐낼수 없겠지.
“아파. 너무 세게 잡지마.”
“끝까지 나를 병신으로 만들겠다고?”
“그렇게 생각하지마.”
“좋아. 좋은데 그래 다 좋은데. 잠깐만. 잠시만.”
“……놔줘.”
“차유주!”
“알잖아 넌. 나는 네가 흔드는데로 흔들려.”
“…….”
“나는 너한테 아무런 힘도 없어.”
언제까지나 사랑하리라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했고 그래도 괜찮아지리라 생각했지만 모순이였다.
더이상 사랑할 힘 같은건 사라져 버렸는지도 모른다.
다시는 사랑하지도 못할만큼 남은 사랑이 바닥난건지도.
내가 가장 슬픈건
너에게서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그 말을 들은것보다
보란듯이 다른 여자와 내게 했던것만큼의 사랑을 나눌때보다
내가 네 숨통을 조인다는 그 슬픈 말보다
이제는 너에게서 완전히 멀어져야 할 때를 맞이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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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를 죽여.
할수 있다면 차라리 죽여줘.
그 몇마디에 찔려 고통스러워할바엔 그 손아귀에서 눈감는편이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고.
첫댓글 남주 너무 하네요.. 사랑을 하는 건지 안하는건지 하고 있다면 왜 여주를 그렇게 멀리하고 있는건지 무슨 뒷이야기가 있는건지 모든게 궁금해요.... 번외 써 주실거죠?(웃음) 번외 꼭 부탁드려요~~~~~~~~~~
남자가후회하는 번외요 ~~
아-ㅠㅠ 너무잘읽엇어요ㅠㅠ번외가 너무 간절해지는소설이네요 ㅜㅜ 이별후에 여주나 남주의 심정같은번외도 좋고, 후의 이야기를 번외로 써주셧으면 좋겟어요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와진짜번외진짜찐짜니찌찌찌찐짜궁금해요!!!!!!!!!!!!!!소설이참부드럽게이어지는거가타요!
우와 가슴이 찡해져요 ㅠㅠ 번외 꼭꼭 써주세요!!
그냥마음이따뜻해지는거같아요...번외제발써주세요!
ㅠㅠ잘읽었습니다 ㅠㅠ 번외부탁드려요 ㅠ! ㅎㅎ 번외가 너무 필요합니다!!악
ㅠㅠㅠ 너무 잼있어요... 남자번외 꼭옥 ㅆ ㅓ주세요 ㅠㅠ!! 궁금..!
아 남주한테도 뭔가가 있는게 아닐까요?번외 있엇으면 좋겟어요
뭔가.. 여주한테 문제가 있을거타여 느낌에...
아.......................
대박 슬퍼.....
역시 킬에로님. 근데 이전에 보았던 소설의 독백과는 사뭇 다르지만 참 좋네요! 잔잔하고 따듯하지만 차갑고 시리구 뭐이래저래 겨울느낌과 딱이라는...ㅋㅋ 저도 번외 손꼽아 기다릴듯
유주 과거이야기인가요?
번외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