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공히 군 미필,운동꿘 출신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및 국보법의 엑기스 조항인 참칭조항도 삭제하려 했던 자들의 공직진출을 결사 반대한다.운동꿘의 사기협잡과 국보법 폐지주장자들의 교언영색에 속지말고 안보중시의 정통보수를 뽑아 나라를 살리자~!]**
[사극으로 북한 읽기]
올해 초 터진 김정은발 수소폭탄 실험과 인공위성을 가장한 미사일 발사, 이어진
북한의 대남도발 만행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보수정당은 총선에서 패했다. 그리고 언론은 김정은의 핵과 미사일 도발과 얼마전에 보도된 해외파견
북한 근로자들의 집단 탈북이 총선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고 보도한다.
결국 경제민주화라는 사탕을 제시한 더불어인지, 다 같이인지 하는 이름도 요상한 당에게 원내 1당의 자리까지 내준
새누리당이다. 14년전 좌파정권이 재집권했을 때 어느 탈북 선배가 내게 했던 말이 다시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우리 짐 싸고 다시 이 나라를
떠나야 할까봐..."
그럴일은 없겠지만,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이 말의 뜻인즉 사람은 먹기위해 사는게 아니니, 좀 못먹고 부족해도
온전히 사는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이야기다. 북한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풍요를 말해도
북한의 독재자에 아부하는 정권과는 운명을 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때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머저리가 아니니 조금
더 참고 기다려보라는 말을 하곤 했다. 또 안보의 중요성 만큼은 너도 알고 나도 안다고 했다. 나아가 총명함을 뽐내던 또 다른 무리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그 특수성을 무시한체 보편적 안보관과 내재적 (대북)접근법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엔 경제를 들먹였다. 과연 경제가 국가의
안보보다 더 중요한가라는 상식을 외면한채 여, 야를 불문하고 경제살리기만 외치고 또 외쳐댔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발사에
따른 유엔과 국제사회의 강도높은 대북제재가 선포된 마당에서조차 당사국으로서, 응분의 조치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북한은, 도발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고 이른바 대량살상무기의 첨단화, 개량화, 과학화를
실현했다고 허세를 부렸다. 반면 우리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이같은 북한발 도발이 선거에 영향을 끼치면 안된다는 안이한 대처방식을 택했고 스스로
'북풍'을 차단하는 웃지못할 희비극을 연출했다.
나아가 정부와 여당은 김정은의 도발에 대해 응징과 강경대응이라는 뻔한 열쇠가 있었음에도 국민적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국과 유엔·중국이라는 변수에 함몰되어 김정은으로 하여금, 허세만 돋구게 했다. 대한민국정부의 이러한 안이함을
틈타 김정은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또다시 준비하고 있다는 뉴스조차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김정은은 저들이 범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덮어둔채 한·미 군사훈련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만을 강조하며 노동당 7차대회의 보고서 '깜'을 준비하는 꼴이다.
또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거듭되는 대북압살정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총궐기해 새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고 주민들을 독려중이다.
시계를 돌려 지난 8월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북한에 의한 DMZ지역의 지뢰도발사태 때 대한민국 국민은
안보라는 이슈에 일치 단결했고 여당은 물론 야당까지도 북한의 만행을 단죄했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개혁 성향의 젊은이들까지 김정은의 잔임함에 경악했고, 한반도의 미래를
걱정했다.
그런 8월이 있었음에도 작금의 4월은 북한의 도발에 왜
이리 안이했을까. 지뢰도발과 핵 실험이라는 어마어마한 '표면적, 질량적' 차이가 있었음에도 8월과 4월은 왜 이리 극명한 대조를 이루게 된
것일까. 필자의 기억이 옳다면 지난 8월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한 문제해결의 중심엔 대한민국정부와 국민이
있었다.
정부와 여당은 햇볕의 망령들이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방송
재개의 결단을 내림으로 절대다수 국민들의 박수갈채를 이끌어 냈고. 이로 인해 김정은이 이성을 잃고 당황망조해 하는 꼴을 국민은, 통쾌한 마음으로
바라볼수가 있었다. 이런 식의 여유작작은 이후 독재집단의 이른바 '최후통첩'마저 비웃으며 승리자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바로 그때, 지난해 8월에 총선이 있었다면 오늘날,
사탕발림의 경제민주화는 설 자리를 잃는다. 만일 그때처럼 국민이, 김정은독재집단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우리삶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일수 있도록 당과 정부가 저들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이번 선거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렇듯 올해 북한의 도발은 작년 8월의 지뢰도발과는 대비도 할 수 없을 수백 수천배의 안보위협을
몰고왔다. 그럼에도 이 모든 게 총선용 북풍정도로 치부되고 말았다.
만약 김정은의 군사적 도발에 대응해 전 전선에 걸쳐
대북확성기 방송이 전개되었더라면, 국방부차원의 대북전단 살포와 여기에 더해 탈북민들이 주역이 된 대북정보유입 등이 활기를 띠게
되었더라면...나아가 자주적 핵개발의지의 표명으로 북핵문제 해결의 중심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는 적극적인 대응책을 구사했다면 선거의 판세 또한 달라질 게 뻔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문제는 우리스스로가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식의 방향전환을 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힘을 믿고 문제를 풀어나갈때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통일을 이루어 낼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보면,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현실과 그대로 닮아 있는 나라도 있었다.
바로 삼국통일의주역 신라다. 기원 7세기에 문제가 된 것은 중앙아세아,
동북아세아, 동남아세아에 걸친 팍스시니카(Pax Sinica), 즉 중국 주도의 세계화였다.
오늘날의 세계화가 '미국'을 의식
하듯이, 당시의 세계화는 '중국화'를 의미했다. 유목민들이 중원에 대거 진입했던 기원 4세기, 오랜 혼란을 극복하고 중국을 재통일한 당나라가
국제사회를 도호부(都護府) 체제로 편제하려 함에 따라, 당시의 세계화도 강도높게 시도됐다.
세계화의 중심에 선 미국이라고 해도
"내 나라의 일개 주(州)로 들어오라"는 요구까지는 하지 않는 데 비해, 당시 당나라는 주변국들에 "중국의 일개 도호부로 들어오라"는 요구도
서슴지 않았다.
우리의 선덕여왕이 세계화에 편승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중국적 세계화' 즉 '팍스 시니카'
건설에 목숨을 건 당태종이 서기 641년부터 적극적인 동방정책을 개시함에 따라 동북아시아 정치지형이 급변하고 이 와중에 고구려, 백제가
대당투쟁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 신라를 강도 높게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그 같은 결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자칫 나라를 잃을
수도 있는 정세 속에서 여왕은 당나라의 '핵우산' 밑에 들어가 보호를 받고자 한 것이다. 당나라의 보호를 받자면 중국 주도의 세계화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같은 선덕여왕 시대의 세계화가 한국사에서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그것이 한국사에 독이 되었을까, 약이 되었을까? 이에 대한 정확한 대답을 학자들은 피해가고 있어, 선덕여왕 시대의 세계화가 신라에 미친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나열하는 선에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첫째, 선덕여왕 시대의 세계화가 신라에 미친 플러스 2가지.
첫째는, 신라가 세계화를
발판으로 당나라의 도움을 얻어 국권을 지키고, 나아가 대동강 이남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했다는 점이다. 의자왕과 연개소문의 압박에 시달리던 신라가
양국의 공세를 막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도리어 대동강 이남으로까지 북진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적으로 당나라 주도의 세계화에 동조해 그 힘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신라가 세계화를 발판으로 호한(胡漢) 합작의 첨단문명을 수용했다는 점이다. 호한이란 말은
유목민과 한족을 통칭하는 말로, 위진남북조(4~6세기)이래 유목민과 농경민의 공존속에 중국 대륙에서 생성된 최첨단 선진문명인 호한 합작문화가
나당동맹을 통해 신라에 유입된 것이다.
그런 선진문명이 신라에 보다 더 빨리 흡수된 것은 신라가 나당동맹을 통해 중국화에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신라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가야의 철기문명을 흡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면, 신라가 한강을 지나 대동강
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적 세계화를 발빠르게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선덕여왕 시대의 세계화가 신라에
미친 마이너스 2가지.
하나는, 신라가 이민족인 당나라와 제휴해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는데 가담함으로써 자기 동류(同類)들의
활동무대를 축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조선왕조라는 하나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가 해방
이후 분단된 오늘날의 남북한과 달리 고구려,백제,신라,가야는 하나의 정치적 울타리 속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현대적인 민족
관념이 존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상상의 공동체>에서 "민족은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an
imagined political community)"라며 "그것은 본래 제한적이고 주권적인 것으로 상상된다"고 규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족이란 본시 하나의 정치적 테두리를 전제로 한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 개념은 혈통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런 개념을 갖고 한국 고대왕국들을 하나로 묶으려 한 것은 지극히 억지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민족 관념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일종의 동류의식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점 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들
사이에 혈통의 유사성에 근거한 동류의식이 있었으리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인정할 수 있다.
이 점은 가야 멸망 이후에 그들 사이에서
삼한 일통에 대한 의지가 표출된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신라는 동류인 고구려,백제와 손잡고 당나라 주도의 팍스 시니카에 대항하기보다는
당나라와 손잡고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키는 데에 일조함으로써 동류들의 숫자를 줄였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입지까지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신라 이후의 한민족이 한반도에 갇힌 채 중국에 눌려 활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는 자기 혈육을 모조리
파멸시키고 출세한 사람이 결국에는 자신을 도와줄 우군이 없어 위축된 말년을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신라가 당나라의 힘에 의존함에 따라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는 점이다. 이는 자기 몸 안의 자연적 치유능력을
간과하고 약에만 의존하며 살다가 결국 약 없이는 간단한 몸살 하나도 이겨낼 수 없을 정도의 약골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덕여왕
말기에 전쟁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김유신이 백제를 상대로 일련의 승전을 거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신라는 고구려,백제를 멸망시킬 정도는
못 되더라도 적어도 양국의 공격을 막아낼 만큼의 힘은 갖고 있었다.
고구려,백제에게 두들겨 맞기만 하던 신라 군대가 김유신의 등장
이후 갑자기 승리를 거두고 때로는 백제로부터 한꺼번에 일곱 개의 성을 빼앗기도 한 사실은, 신라를 지킬 수 있는 궁극적인 원동력이 다름 아닌
신라 내부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똑같은 군대를 갖고 싸우는데도 사령관에 따라 성적이 달라졌다는 것은, 기존의 인적, 물적
자원을 어떻게 배합하느냐에 따라 신라 군대가 강해질 수도 있었고 약해질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라는 그 같은
내부의 힘을 살리기보다는 주로 외부의 힘을 끌어다 쓰는데 더 치중함으로써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말이다.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전제 위에서 나당동맹과 세계화에 참여했다면, 신라는 그로부터 훨씬 더 많은 것을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저자세로 나당동맹과 세계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랬기 때문에 신라가 거둘 수 있는
수확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선덕여왕 시대부터 본격 추진된 세계화 속에는 서로 상반되는
측면들이 담겨 있었다. 대동강 이남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호한 합작의 첨단문화를 수입할 수 있게 된 데 기여한 측면이 있는가 하면, 자기
동류들의 활동무대를 축소시켜 결국에는 자신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자기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한 측면도 있다.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선덕여왕 시대의 세계화를 어떻게 평가하든 간에, 우리는 그것의 잘못을 끊임없이 재조명하는 한편, 거기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들에 대한 전략과 전술을 생각해야 한다.
내부의 힘이 충분이 있음에도 오직 외부의 힘에 의거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지금까지도 오명을 쓰고 있는 신라와,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을 압도하는 정치적,
경제적 우위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일만 터지면 미국과 유엔만 바라보는 작금의 대북전략과 전술 때문에 국민의 눈과 귀는 흐려졌고, 그로인해
대한민국의 또 다른 위기가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전 자유북한 방송 국장 김국평
기사캡쳐 : http://www.fnkradio.com/board.php?board=newfnkb101&config=&command=body&no=14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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